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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왕팬답게 또 읽었다. 기린의 날개 전에 읽었던 천공의 벌은 원전을 다룬 소설로, 약한 미스터리에 강한 메시지라서 읽는 내내 답답하고 무거웠다. 의문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기린의 날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쫀쫀한 미스터리 장르겠구나 했다. 그래서 선택했고, 그런 줄 알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작가보다 먼저 밝혀내야지 하면서, 기를 쓰고 읽었다. 기린의 날개는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는 미스터리 장르 소설인데, 눈물 나는 반전으로 인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놀랍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부성애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방황하는 칼날'이 부성애를 다뤘다. 영화를 먼저 봐서 원작은 읽지 못했지만, 영화 내내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남성이라서 모성애보다는 부성애가 더 편했을 거 같다. 방황하는 칼날처럼 기린의 날개도 부성애를 다룬 소설이다. 


한 남자가 의문의 살인을 당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범인의 존재도 곧 밝혀진다. 그런데 범인이 왠지 범인같지가 않다. 유능한 형사 가가는 범인보다는 죽은 남자의 행동을 역추적하면서 전혀 다른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죽은 남자는 아내와 딸, 아들이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다. 요즘 아버지처럼 그저 일만하는, 가족보다는 회사가 먼저인 그래서 가족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하는 아버지로 나온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으니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아내는 생활을 어떻게 하지? 사춘기 딸은 그저 울기만 한다. 


【의심 가는 인물이 트럭에 치였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은 어젯밤 마쓰미야를 비롯한 수사관들이 에도바시 일대에서 한창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때였다. 순찰 중이던 경찰을 보고 달아나 도로로 뛰어들었다가 트럭에 치였다고 했다. 갖고 있던 지갑에서 에도바시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된 아오야기의 운전면허증이 발견됨에 따라 용의자로 의심받게 된 것이다. 그 보고를 들은 순간 그곳에 있던 수사관들 사이에는 안도감이 흘렸다. 아마도 그 남자가 아오야기를 찌른 범인일 것이다.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하니 의식이 돌아와 본인 얘기만 들으면 사건은 종결되는 거나 다름 없다. 모두다 그렇게 생각했다.(본문중에서】


용의자가 밝혀졌다. 죽은 남자의 소지품을 갖고 있었고, 남자가 죽었던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 경찰을 피하다, 사고를 당하고 얼마 후 죽게 된다. 아버지와 용의자 사이에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빠는 정규직 관리자로, 용의자는 계약직 직원으로, 이로 인해 경찰은 용의자가 회사에서 다쳤는데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았고, 여기에 재계약까지 되지 않아서 벌어진 계획적인 살인사건으로 몰아간다.



아직 초반인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용의자를 밝혀냈는 걸, 이거 넘 쉽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설마 이렇게 쉽게 끝내지는 않겠지 했는데, 가가라는 형사의 뛰어난 통찰력으로 인해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용의자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밝혀지면서, 그럼 범인은 누구? 진짜 범인 찾기가 다시 시작됐다.


【“이건 개인의 기호나 사고방식의 문제라서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신에게 의지하면 정말로 원하는 걸 얻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신심이 두터운 노인들이라면 모를까. 아오야기 씨는 그런 세대로 아닌데 말이야.” (가가형사 왈)

“그런 선배가 섣불리 넘겨짚는 게 아닐까요? 젊은 사람들 중에도 신의 힘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제 동창 중에도 매주 교회에 나가는 녀석이 있고요.” (마쓰미야 형사 왈)

“교회에 다니는 것과 칠복신 순례는 뭔간 근본적으로 다를 것 같은데.”

“그럼 아오야기 씨는 뭘 위해서 순례를 했다는 거죠? 소원을 비는 것 외에 신사에 참배할 이유가 있을까요? (분문중에서)】


새롭게 등장한 키워드 '칠복신(시찌후쿠진은 일본의 7명의 행운의 신)'. 죽은 남자는 왜  집이나 회사 근처가 아니라 먼 니혼바시에 있는 신사까지 왔을까? 가가와 마쓰미야는 죽은 남자의 몇일 아니 몇달을 역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눈물 나는 반전과 만나게 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 전개에 읽으면서 맘이 아파왔다. 굳이 죽지 않아도 됐을텐데, 대화를 좀 더 했더라면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을 위해 했던 일이었는데,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해내는 바람에 결국 죽음을...


모성애도 그렇고 부성애도 그렇고 부모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거 같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살인이 일어난 곳이 아닌 다리 위 기린의 날개 조각상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 진실은 끝에 밝혀진다. 


【유토는 빈사의 상태로 니혼바시 다리를 향해 걸어간 아빠의 심정을 이해할 거 같았다. 아빠는 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용기를 내라. 진실로부터 도망치지 마라. 자신이 믿는 대로 하라, 라고. (분문중에서)】


때론 진실보다는 거짓이 쉬울때가 있다. 그러나 거짓은 또다른 거짓을 낳고, 더 큰 거짓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한번쯤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실수를 거짓으로 덮으면 안된다. 진실을 밝히는 게 힘들더라도, 밝혀내야 한다. 왜냐하면 거짓에는 용서가 없지만, 진실에는 용서가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거짓을 덮기 위해 계속 거짓을 만들어 내는 그네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 죽는다." 대신 죽어줄 아버지도 없으니, 이제는 가면을 벗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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