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8권의 책을 읽었고, 9번째는 히가시노 게이고 스스로 최고 걸작으로 손꼽은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이다. 2006년에 초판이 나오고, 2015년 55쇄까지 나왔다. 역시 거장답다. 일본과 한국에서 영화로 나올 만큼 유명한 작품인데, 이제서야 봤다. 언젠가는 보겠지 했는데,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읽고 싶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대신 구입한 책이다.
결론은 으이구~ 왜 이제서야 봤니? 쫓고 쫓기는 스펙터클은 없지만, 완전 범죄를 지키려는 자와 틈을 찾아내 밝히려는 자와의 대결이 쫄깃쫄깃하다. 내용을 알기 전에는 용의자는 아는데, X는 뭐고 또 헌신을 뭘까 했다. X가 나와서 수학공식같은 난해한 책이 아닐까 했는데, 단지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헌신은, 읽지 않는다면 영원히 몰랐을 거다.
헌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남의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스포가 제목이네 했다. 제목이 다 알려주고 있는데, 내용을 몰랐으니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거다.
어떤 이가 살인을 당한다. 그리고 살인 용의자로는 그 사람밖에 없다. 그런데 알리바이부터 하나씩 풀어가다 보니, 그사람은 점점 용의자에서 멀어져 간다. 심증은 그사람이 맞는데, 이렇다 할 물증이 없다. 그럼 다른 누군가가 등장해야 하는데, 이렇다 할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 용의자는 그사람인데...
이시가미는 눈을 감았다. 어려운 수학 문제에 직면했을때, 그는 늘 이렇게 눈을 감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막아버리면, 머릿속에서 수식이 형태를 바꾸어 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그의 뇌리에서는 수식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떴다. 먼저 책상 위의 자명종 시계를 보았다. 여덟시 삼십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야스코를 보았다. 그녀는 숨을 멈추고 몸을 뒤로 뺐다. "이 사람의 옷을 벗겨야 합니다. 점퍼, 스웨터, 바지 모두, 빨리하지 않으면 사후 경직이 일어나 힘들어질 겁니다." (본문 중에서)
살인자는 야스코, 그를 도와주는 이는 수학선생인 이시가미다. 처음부터 범인을 공개하고 시작하면 스릴러, 마지막에 공개를 하면 미스터리다. 초반에 살인자를 떡하니 공개했으니, 용의자 X의 헌신은 스릴러 소설이다. 살인자를 누군지 찾아내면서 읽어야 재미인데, 까발리고 시작을 하니 뭔 재미로 읽지 했다.
괜한 걱정을 했다. 유가와라는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시가미가 만든 완벽한 알리바이의 틈을 찾아 내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다. 이시가미는 수학천재, 유가와는 물리 천재다. 같은 대학 동창인 그들은 사건으로 오랜만에 재회를 하지만, 단순한 만남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걸 한마디로 하기는 어렵지만, 억지로 말하자면 위장 전술의 문제라고나 할까. 위장 공작이지. 수사진은 범인들의 위장전술에 말려들었어. 그들이 단서라고 생각한 것은 모두 엉터리야. 힌트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범인의 술술에 말려들고 마는 그런 장치가 되어 있어." (본문 중에서)
작가가 날짜 표시를 흐리멍덩하게 했던 건, 실수일까? 아니면 일부러 일까? 후자에 무게를 더 두는 이유는, 그래야 엄청난 진실에 소름을 돋기 때문이다. 감추기 위한 덧씌우기 그리고 위장전술, 이 모든 게 천재 수학자인 이시가미가 만든 덫이다.
아쉬움 점이라면, 결말이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느낌은 아주 비슷했다. 착한 사람인 야스코는 뜻하지 않게 살인을 한다. 역시 착한 사람인 이시가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덫을 만든다. 착한 이시가미가 나쁜 길로 가는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착한 유가와는 진실을 밝힌다. 그리고 야스코는 유가와를 통해 전말을 알게 된다. 나 몰라라 할 수 있었을 텐데, 착한 사람들이니 너 죽고, 나 살자는 선택할 수 없었을 거다.
감추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 완벽한 시나리오는 이시가미였을 것이다. 유가와는 진실을 밝히기 했지만, 치사하게 인정에 호소를 했다. 소설은 끝이 났지만, 벌을 다 받은 후 그들은 진짜 동화책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살았을 거 같다. 이시가미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딸과 함께 천재 수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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