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5단락으로 되어 있다. 제1장인 '답장은 우유 상자에'를 다 읽고, 제2장인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읽는데 뭐가 이상하다. 아까와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무대만 같을뿐, 등장인물은 다른 옴니버스 소설인가 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가느다란 실로 이어진 듯, 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대가 움직이고, 각기 다른 인물들은 모두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곳에서 만난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무대는 1970년대로 작은 시골마을에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구멍가게(?)가 있다. 그 곳의 주인인 나미야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고민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어쩌다 시작된 일이지만, 아이들의 지궂은 장난 질문에서 성심껏 답변을 해주는 할아버지의 정성에 점점 질문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부모님이 야반도주를 한다.", "임신을 했는데, 처와 자식이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등등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은 현재다. 폐가처럼 변해버린 나미야 잡화점에 좀도둑인 세남자가 몰래 들어온다. 아무도 없는 집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 있다. 호기심에 편지를 읽게 된, 그들은 과거에서 온 편지임을 알게 된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무시해버리자는 친구와 이런 경험은 다시 할 수 없으니 답장을 하자는 친구.
【"뭣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내가 굉장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아. 이런 기회는 웬만해서는 아니, 평생 다시는 오지 않아,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가고 싶다면 야쓰야 너는 가도 좋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이곳에 있겠어."
"너희들 좀 이상해졌어. 대체 어쩔 생각이야? 옛날 사람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 게 뭐가 재미있어? 제발 관둬라. 이상한 일에 휘말리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그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본문 중에서)】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서 온 2건의 편지에 담장을 해준다. 그중 한 건이 그들과 아주 밀첩한 관계가 있다는 건,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진다. 스포이니깐 여기까지. 현재에 살고 있는 나에게 과거에서 상담 편지가 온다면, 그가 누군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편지를 보낸 시기가 언제인지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답변은 2002년도에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갔어와 같은 앞으로의 일을 알려줄 수 있다. 세남자에게는 과거이지만, 그에게는 미래일테니깐.
그럼 나미야 할아버지는 어떨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숙고해서 답장을 보낸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 대부분이 그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편지를 보내는 건, 자기가 생각한 답에 동의를 구하는 거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고민 상담이에요. 공부하지 않고도 시험에서 배 점을 맞고 싶어요. 커닝도 안 되고 속임수도 안 돼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명백히 아이가 쓴 글씨였다. 그에 대한 답장이 아래서 붙어 있었다. 이건 늘 보던 아버지의 필체였다. '선생님께 부탁해서 당신에 대한 시험을 치게 해달라고 하세요. 당신에 관한 문제니까 당신이 쓴 답이 반드시 정답입니다.' (본문 중에서)】
올림픽 출전이냐? 사랑하는 남자의 병간호냐? / 가수를 계속 해야 하느냐? 생선가게를 이어 받아야 하느냐? / 아비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 부모님 뜻대로 야반도주를 해야 하느냐? 말려야 하느냐? / 돈을 많을 벌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호스티스에 집중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전혀 다른 이야기 같은데, 상담자의 질문과 나미야 할아버지와 세남자의 답변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이 시작점이라면, 그곳은 종착지다. 상담자들과 현재의 좀도둑인 3남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환광원이라는 보호시설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3남자는 나미야 잡화점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특별한 공간임을 알게 된다. 단지 이들만 알았을까? 나미야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야 잡화점의 기적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짜 기적은 마지막 상담자를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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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편식이 심하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작가인 줄 알았는데, 나미야 잡화점은 기존의 작품과는 완전 다르다. 그나마 비슷한 작품을 고른다면, 유성의 인연쯤 될까나. 아니다. 그것도 엄연히 다르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연상되지만, 사람이 아니라 편지다. 21세기에 손편지라니, 작정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담았구나 했다.
그리고 각각의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실타래에 감겨 있는 실을 풀어 처음과 끝을 연결하 듯 이야기는 나미야잡화점과 환광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고민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다. 나미야 할아버지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30년 후 모두다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저력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이제야 원작을 봤으니, 주말에는 영화를 봐야겠다. 블로그 타이틀이 까칠양파의 잡화점이 된 이유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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