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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읽었던 어린왕자는 그저 동화책이었다. 왜 어른들은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을 모자로 생각할까? 왜 어른들은 숫자로 사람을 판단할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보아뱀이라고 말하고,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처럼 어린왕자도 순수한 동심을 심어주는 그런 존재로 생각했었다.


몇 년 후 다시 읽은 어린왕자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아마도 사랑이란 감정을 알아서 그랬을까? 어린왕자를 괴롭히는 사치스런 장미가 미웠고, 헤어짐을 먼저 생각해 길들어지기 싫어하는 여우의 애틋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더불어 아직은 어린 왕자 속 어른이 아님을 자랑스러워 했다.


또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첫장부터 읽을 수가 없었다. 모자로 보는 어른이,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가 귀찮아 그냥 박스만 그려주는 무미건조한 비행사가 바로 나였다. 그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에 또 다짐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어린왕자 속 어른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 장미가 왜 어린왕자를 귀찮게 했으며, 붉은여우는 길들어지기 싫다고 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다고 했는지. 내 나이테가 점점 많아지면서 어린왕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릴 적 놓쳤던 작은 에피소드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다양해졌고 복잡해졌지만, 더불어 슬퍼지기도 했다. 속으로는 아니라고 아직은 어린왕자를 이해하는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나의 모습은 책 속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10번 정도는 읽었고, 작은 에피소드까지 다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 그 하나가 기억이 안난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또 읽고 또 읽었는데, "어린왕자가 자기 별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이 부분만 이상하게 생각이 안난다. 작년 12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를 통해 드디어 알게됐다. 지금은 확실히 알았지만, 아마도 몇 년이 지나면 또 기억이 안날 듯 싶다. 그때가 오면, 나는 또 어린왕자를 읽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같은 책이지만, 전혀 다른 어린왕자를 만나고 있겠지.



작년 12월에 개봉한 프랑스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The Little Prince)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졌다. 새로 추가된 내용은 오리지널 어린왕자의 프리퀄 버전인 듯 싶다. 할아버지가 된 비행기 조종사와 옆집에 이사온 소녀, 이 둘의 만남으로 어린왕자는 깨어나게 된다. 그동안 할아버지 혼자서 간직했던 어린왕자를 소녀에게 보여주면서, 이 둘의 이야기와 오리지널 어린왕자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녀는 코끼리를 잡아먹고 있는 보아뱀을 어른들처럼 모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는 엄마가 만들어준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어른이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아이였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엄마는 너무나 가혹했다. "너의 인생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친구는 내년쯤 만들어 줄게. 자 시간표때로 내일도 열심히 공부하렴."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혹한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도 아이에게 동심을, 꿈과 희망을 만들어 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이 먼저다. 다른 집 누구는 국제중에 가고, 다른 집 누구는 특목고에 가고, 이런 세상에서 내 자식에게만 꿈과 희망을 찾게 놔둘 수는 없을 것이다. 소녀를 위한 엄마의 계획표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고서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까? 부모없이 살아가야 하는데 그 전에 1등 인간으로 만들어 놔야 안심이 될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소녀의 나이였다면 소녀가 참 불쌍하다고 했을텐데, 이젠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소녀는 비행사 할아버지를 통해 어린왕자를 만나면서 어른이 아닌 아이가 되어 간다.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살린, 오리지널 어린왕자는 우선 그림부터 다르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거처럼 투박하지만 애틋하고 애잔한 감동을 주는 그림이다. 어린왕자와 붉은여우 이야기는 사랑을 알기 전과 후에 읽으면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길들어진다. 그래서 눈물흘릴 각오쯤을 해야한다. 사랑도 알고, 이별도 아는 나이가 되니, 그 감동은 배가 되어 다가오는 거 같다.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어린왕자도 참 좋았다. 더구나 원작을 그대로 담아 왔기에, 어린왕자의 등장과 장미와의 만남, 소행성에서 만난 사람들, 지구 사막 도착, 뱀, 붉은여우와의 만남, 비행사 아저씨와의 만남 그리고 B-612로 돌아가는 마지막 모습까지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을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추가된 이야기 부분은 어린왕자를 너무 띄어주기 위해 과장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너무나 똑같은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기에 반박을 못할 거 같다. 



애니메이션 어린왕자에서 동심을 잃어버린 어린왕자를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 부분, 그낭 딱 봐도 꿈인 걸 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소녀일까? 엄마일까? 난 엄마라고 생각한다. 다시 동심을 찾은 어린왕자와 소녀가 손을 잡고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말을 한 뒤, 잠에서 깬 엄마를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의 엄마였다면 절대 비행사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안할텐데, 엄마의 태도가 너무 극과 극으로 변했다. 아니면 꿈 속 소녀는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기 전에 동심을 잃지 않았던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을테니깐.


잊어버렸던 어린왕자 결말을 다시 알게 해줘서 좋았던 애니메이션 어린왕자. 영상이 좋긴 했지만, 그래도 책으로 만나는 어린왕자가 더 좋다. 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좋은 구절이 있다면 다시 돌아가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맞는데, 아이와 함께 볼 애니는 아닌 거 같다. 영상 속에 나오는 어른 악당을 보고, 아이가 "울 엄마 같아, 울 아빠 같아"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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