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읽었던 동화를 성인이 된 후 다시 읽게 되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
신데렐라는 드디어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구나(어린 나). / 신분의 차이때문에 시어머니에게 엄청난 시집살이를 했을거야, 고부갈등에 힘든 왕자는 집에 안 들어오고 다른나라 공주를 만났을 거야(성인 나).
심청이의 지극한 효심에 용왕님이 감동해 아빠의 눈과, 청이에게는 새생명과 왕과 결혼하게 해줬구나(어린 나). / 미쳤어. 그게 말이 돼. 인당수에 빠지면 아버지 눈이 보인다는게 말이야 막걸리야(성인 나).
안돼요. 인어공주는 거품으로 변하면 안돼요(어린 나). / 웃겨. 착하면 다야. 왜 니가 구해줬다고 말을 못해(성인 나).
동심이 없어진 걸까? 아니면 인생의 쓴맛을 봐서 그런걸까? 첫사랑은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나면 안되는 거처럼, 동화책도 성인이 된 후에 다시 읽으면 안되나보다.
그런데 벼랑 위의 포뇨는 달랐다. 2008년에 개봉했을때 보다, 지금이 더 좋다. 살짝쿵 인어공주 느낌이 나지만, 포뇨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찾고, 자신의 실체를 공개했는데도 좋다는 남자는 만났으니 말이다. 사랑은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도 초월하듯이, 이제는 물고기 사람도 초월하는구나. 신발을 찾아주기 기다렸던 신데렐라, 연꽃에서 발견되길 기다렸던 심청, 비밀을 간직한채 사랑해주길 기다렸던 인어공주, 그녀들은 너무 수동적이다. 그녀들에게 당당한 포뇨를 소개해주고 싶다. 더불어 사랑은 기다리는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나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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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 봐도, 토토로가, 센과 치히로가, 마루밑 아리에티가, 원령공주가, 하울이 생각난다. 인공적인 느낌이 팍팍나는 3D애니메이션이 대세지만, 아직은 동화책같은 2D애니가 좋다. 8년만에 다시 보는 벼랑 위의 포뇨, 첫장면부터 새로웠다. 분명 본 애니메이션인데, 왜이리도 새롭게 다가오는지, 이게 바로 지브리 애니의 힘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새롭고,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금붕어라고 좋아하는 소스케, 만나자마자 포뇨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딱봐도 징그러운 인면어인데, 금붕어로 착각하다니 이게 바로 동심의 힘인가 했다.
"포뇨는 빵 싫어해요. 포뇨는 햄이 좋아요. 샌드위치를 먹을때도, 햄만 골라먹을 정도로 엄청 좋아해요."
"아빠가 숨겨놓은 마법을 사용했더니, 사람이 됐어요. 엄청난 파도를 일으켜서 소스케에게 가고 있어요. 제가 한 행동때문에 마을은 물에 잠겼지만, 저는 그런거 몰라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달려가면 되니깐요."
"물만 넣었더니, 엄청난 크기의 햄이 나왔어요. 이런 컵라면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저때문에 마을은 엉망이 됐고, 세상까지 엉망이 될 수 있지만, 저는 그냥 사람이 될래요. 아빠랑 엄청난 거인 엄마가 해결해 줄거에요. 그분들은 바다의 주인이니깐요. 그런데 진짜 사람이 됐어요. 물고기였던 저와 지금의 저를 다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바로 옆에 있으니깐요. 물고기였을때도, 사람으로 변했을때도, 제가 좋대요. 아주 오래전에 사람을 좋아했다가, 물거품으로 변한 선배가 있다고 해서 부모님이 걱정을 참 많이 하셨는데, 저는 물거품으로 변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선배는 어른이 된 후에야 남자를 만났고, 저는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어린 소년을 만났으니깐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애니메이션은 적어도 3번 이상은 봤는데, 벼량 위의 포뇨는 이번에 두번째다. 다른 작품들도 꿈과 환상의 나라지만, 포뇨는 그 농도가 진하다. 소스케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된다는게 문제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는 어른이 있었기에, 소스케와 포뇨는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지금 나에게 동심은 없지만, 아이들의 동심까지 없애버리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가끔 조카가 엉뚱한 질문을 할때가 있는데, 앞으로는 어른답게 대답하지 말고, 녀석의 눈높이에 맞춰서 대답을 해줘야겠다. 연달아 동심지킴이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한동안 철없는 어른으로 지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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