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해졌다는 건, 그동안 참았던 회를 먹을 타이밍이 됐다는 의미다. 여름 내내 혹시 모를 두려움으로 인해 참고 참았던, 사시미를 먹기위해 찾아간 곳, 신도림 푸르지오 상가 1층에 있는 동해물회다.
신도림 푸르지오 상가에는 다양한 밥집, 술집들이 있지만, 매번 입구 근처에 있는 곳들만 주로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지인 왈, "너는 왜 사람 많은 입구 근처에만 가냐?"
"글쎄, 그냥..."
조용한 곳을 원했던 지인와 함께 상가 안 쪽으로 들어가보니, 세꼬시와 물회를 먹을 수 있는 횟집이 나왔다. 넌 여기에 횟집이 있다는 거 몰랐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지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3개만 있는 작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2층까지 있는 넓은 곳이다. 1층이 이렇게 조용하니, 굳이 2층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을 거 같아, 우리는 1층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메인은 시원하고 상큼하며 새콤한 물회다.
물회가 나오기 전에 먼저 나온 기본찬. 사장님이 그러는데 매일매일 기본찬이 다르다고 한다. 이 날은 연두부와 이름은 모르지만 쌉쌀한 맛이 났던 나물무침과 꽁치조림인 줄 알았는데, 전어조림이란다. 전어는 주로 굽거나, 무치거나, 회로 먹었는데, 이렇게 조림으로 먹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전어보다는 조림무가 훨씬 더 좋았다. 밥 생각이 간절하게 났던 전어조림이다.
오늘의 메인 물회(메뉴판을 찍지 않아 정확한 가격이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소짜 28,000원)가 나왔다.
방어, 가자미, 오징어가 들어간 물회. 식감이 각각 다른 회로 인해, 먹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신선한 채소와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육수까지, 골라 먹어는 재미에, 푹 퍼서 먹는 재미까지, 이래저래 즐거움을 준 물회다.
어느 정도 먹다보니, 소면 생각이 간절히 났다. 이 타이밍에는 면을 말아줘야 하지만, 다른 것들도 먹어야 했기에 도저히 면을 추가 주문할 수 없었다. 물회에 면이나 밥이 말아 먹다보면 살짝 텁텁해질 수 있는데, 오로지 물회만 먹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한 맛이 유지되어 좋긴했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세꼬시. 홍어같아 보이는 건 가자미, 그리고 강원도에서만 잡힌다는 생선 그리고 사장님이 알려줬는데, 이눔의 저질 기억력이 문제다. 원래 세꼬시는 뼈까지 먹기 위해 얇게 채로 썰어 나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여기 세꼬시는 그냥 일반 회처럼 나온다. 활어에 비해 차진 맛과 감칠맛이 좋다는 선어라서 그런가? 그냥 먹어도 좋고, 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쌈을 싸서 먹어도 좋고, 여름내내 잘 참았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탱글탱글 쫄깃한 문어 숙회까지, 참고 기다린만큼 행복한 저녁이었다. 완연한 가을이 됐으니, 이제는 사시미 좀 먹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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