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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정 - 순화궁 - 태화관 - 태화빌딩" 태화관: 시간을 잇는 공간 (in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인사동 194번지는 오랜 시간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기억이 쌓여온 공간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가의 집터와 태화정이, 19세기에는 순화궁이 들어서며 왕실과 연결된 공간으로 그리고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발표한 요릿집 태화관에 이어 여성·아동 복지와 사회사업이 이루어지는 공간 등 새로운 역할을 이어갔다. 역사적 장소가 지닌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특별전 "태화관: 시간을 잇는 공간"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입구 모습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역사도시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온전하게 발굴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관을 조성했다.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에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26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이번 특별전은 2027년 3월 7일까지

 

상설전시관 모습
상설전시관 모습

상설전시관은 요렇게 유리바닥으로 되어 있다. 깊다고 할 수 없는데, 다리가 왜 이리도 떨리는지 모르겠다. 엉금엉금 기어서 특별전이 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는 거, 쉿~ 비밀이다.

 

사적 공간의 형성

이랬고
저랬고
요랬고
현재는 태화빌딩

인사동 194번지는 조선시대 능성구씨 가문의 집터이자 태화정과 잠룡지가 자리했던 사적인 생활공간이었다. 19세기에는 안동 김씨 김홍근이 거주했으며, 이후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가 머물면서 순화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도시와 사건의 공간

안순환 명함

안순환은 근대적 조선요리옥인 명원관을 운영했고, 이후 순화궁 터에 태화관을 열었다. 안순환은 1932년 안교환으로 개명했다. 

 

명월관 현관
명월관 현관
명월관 본점에서 기생들이 사군자를 그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명월관 본점에서 기생들이 사군자를 그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명월관 어회엽서 세트
명월관 어회엽서 세트

명월관은 궁중요리를 기반으로 한 고급요릿집이자 연회 공간이었다. 정치인과 관료, 사업가와 예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교류했다. 전통 한식과 기생 문화, 근대적 소비문화가 결합된 요릿집 문화는 당시 경성의 새로운 도시문화를 보여준다.

 

태화관 내부 사진태화관 내부 사진
태화관 내외부 사진
삼일독립선언서
삼일독립선언서
민족대표삼십삼인전
민족대표삼십삼인전

1919년 3월 1일, 태화관은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 현장이 된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9인이 이곳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열고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 당초 독립선언은 탑골공원에서 거행될 예정이었으나, 대규모 군중집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과 유혈사태를 우려해 장소를 태화관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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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 확장된 공간

태화여학교 학생 사진
태화여학교 학생 사진

1921년에 설립된 태화여자관은 여성과 지역사회를 위한 근대 사회 사업 기관으로 출발했다. 미국 감리교 여성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교육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당시 여성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계몽·생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성 교육을 넘어 아동과 지역사회를 위한 돌봄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 태화유치원과 태화진찰소 운영, 아동 건강 증진 활동 등은 근대기 사회복지와 공공보건 활동의 선구적인 사례였다. 

 

태화여자관을 철거하고 석조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정초석
태화여자관을 철거하고 석조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정초석
태화사화관의 연혁자료
태화사화관의 연혁자료

빌링슬리 관장 시기 태화여자관은 교육과 복음 전도 중심의 활동에서 나아가 사회사업 기능이 한층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관 명칭이 태화여자관에서 태화사회관으로 변경된 데어서도 확인된다. 다양한 사회사업을 수용할 수 있는 연먼적 약 750평 규모의 3층 신축 건물을 마련한 것이 빌링슬리 관장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태화사회관 정초석 안에서 발견된 우표세트
태화사회관 정초석 안에서 발견된 우표세트
태화여자관 정초식 초대장태화여자관 정초식 순서지
태화여자관 정초식 초대장과 순서지
태화사회관 건물의 기와
태화사회관 건물의 기와

딩시 태화여자관 건물은 4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가옥으로, 화재 위험이 상존했다. 신축계획이 본격화되자 빌링슬리 관장은 보리스에서 설계를 의뢰했고, 보리스는 설계와 시공 전반을 총괄했다. 1938년 5월 정초식을 거행한 뒤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1939년 10월 준공을 마쳤다. 

 

태화사회관 석조 건물 도면
태화사회관 석조 건물 도면
태화사회관 예배당에서 사용된 파아노와 장의자
태화사회관 예배당에서 사용된 파아노와 장의자
태화사회관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태화사회관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촛대, 헌금쟁반, 화병
촛대, 헌금쟁반, 화병


현재로 이어지는 공간: 태화복지재단과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태화빌딩 건축사진
태화빌딩 건축사진
태화빌딩 도면
태화빌딩 도면

태화사회관은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기 속에서도 소외돤 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지속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 서울의 도심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기존 건물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인 태화빌딩이 건립됐다. 빌딩 앞마당에는 이곳이 3·1운동의 역사적 현장임을 알리는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이 함께 세워졌다.

인사동 194번지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터에서 시작해, 왕실의 궁가, 독립의 현장을 지나 근대 복지의 요람을 거쳐 왔다. 태화관의 모습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던 공간이라는 사실은 3·1운동과 함께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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