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2부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은 우리가 무엇을 먹어왔는가를 다룬다. 우리 밥상은 산과 들, 하늘과 바다가 내어주는 것들이 만나는 곳으로, 밥상은 달력이자 지도다. 무엇이 오르는지를 보면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어느 지역에서 살아가는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나는 것을 제때 알맞게 먹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 온 밥상 문화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물이 들어간 단어만 250개에 이를 만큼 우리 밥상에서 깊고 넓은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중에서도 봄나물은 특별한데,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냉이, 달래, 쏙에는 봄의 생명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 사람들은 그 작은 싹에서 봄을 맛보았다.


선사시대 유적에는 도토리, 가래, 살구 등이 주로 뱔견됐는데, 실제로는 더 다양한 식물을 먹었든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텃밭에서는 오이, 가지, 무, 파, 아욱, 박이 자라 일상의 식재료로 쓰였다. 반면 토마토, 고구마, 감자, 호박, 고추는 먼바다를 건너온 낯선 작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익숙하고 정겨운 맛으로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고개를 넘으면 밥상이 달랐다. 조선은 이런 차이를 일찍부터 알고,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을마다 어떤 특산물이 나는지 자세히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단순한 분류가 목적이 아니라, 팔도의 맛은 곧 나라가 파악하고 관리해야 할 중요한 자원이었다.


원나라 사람 양윤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려의 맛 좋은 생채를 다시 말해보면, 산 뒤편 새박 나물 줄 나물의 향기가 들어온다네' 이 시에 스스로 주석을 달기를, '고려인은 생채로 밥을 싸서 먹는다'고 했다.



신석기시대 조개무지에는 참돔, 다랑어, 상어, 방어 같은 물고기와 함께 고래 뼈, 굴, 홍합, 소라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발견됐다. 사람들은 물고기와 조개뿐 아니라 갑각류, 연체류, 해조류까지 강과 바다가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활용했다. 날것 그래도 먹는 회부터 따스한 죽과 국, 정성 어린 만두와 짬, 짭조름한 자반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젓갈까지 사계절 내내 밥상을 풍성하게 채웠다.





경주 서봉총의 호식 바깥면을 따라 줄지어 놓였던 큰 항아리들은 신라 왕족을 위해 풍성하게 잘 차린 음식과 귀한 식재료를 담은 그릇이었다. 청어와 방어 같은 제철 생선뿐만 아니라 돌고래, 복어, 성게 등 쉽게 구하기 힘든 식재료로 가득 채운 이 항아리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차렸던 화려한 제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신석기시대 유적에 멧돼지와 사슴 뼈가 주로 발견됐다. 기원 전후 무렵부터 소, 돼재, 말 등이 가축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냥은 여전히 고기를 얻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이 줄어들었지만 원나라의 영향으로 변화했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소, 돼재, 개, 닭은 물론 곰, 꿩, 메추라기, 참새 같은 다양한 재료가 등장한다.



천마총에서 조류의 알이 10여 개씩 담긴 토기 장군 2점이 발견되었다. 그중 장군 1점은 뚜껑이 덮인 채 발견되어 내부의 알이 거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달걀로 보고되었으니 크기, 색깔 등으로 보야 꿩의 알일 가능성이 크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1611년 유배지 함열(지금의 익산)에서 거친 밥을 먹다 붓을 들었다. 먹을 수 없으니 차라리 쓰기로 했다. 강릉의 방풍죽, 보은의 대추, 한강의 뱅어, 나주의 무, 제주의 전복 등 맛보았던 것들을 하나씩 풀러내며 어느 고장의 것이 으뜸인지 평했다. 푸줏간을 지나면서 크게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책에는 '도문대작'이라 이름을 붙였다.
"나의 외가는 강릉인데 그곳에는 뱡풍이 많이 난다. 2월이며 이 지역 사람들은 이슬을 맞으며 새벽같이 나가 막 돋아난 방풍 싹을 따서 해를 보지 못하게 한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그것이 끓기를 기다려서 차가운 사기 주발에 옮겨 담았다가 반쯤 식으면 그것을 먹는다.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사흘이 지나고 스러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

콩은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도 많이 발견될 만큼, 오래전부터 재재해 온 작물이다. 기원후 3세기경부터는 콩이 으깨진 채 뭉쳐 있는 모양으로도 확인된다. 이 시기부터 식재료를 삶고 찌는 데 사용하는 항아리와 시루, 깊은 바리가 널리 쓰이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메주와 같은 콩 발효 식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함평 외치리 백야유적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에서 매우 많은 양의 들깨 종자가 불 탄 채 발견되었다. 분석 결과 재배종으로 확인되어 당시 사람들이 들깨를 길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부터 들깨를 식재료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마도 2호선은 고려시대에 현재의 전북 고창 일대에서 거둬들인 곡물을 실고 수도인 개경으로 향하던 중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침몰한 곡물 운반선이다. 바닷속 뻘에 묻혀 원형을 잃지 않고, 침몰 당시의 상태를 간직한 채 발견되었다. 목간은 당시 운송장과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목간에는 중방의 도장교인 오문부의 집에 좋은 꼴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매병 안에 꿀을 담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보물 5점, 국가민속문화유산 6점을 포함해 51개 기관의 협조로 448건 684점의 고고, 역사, 미술, 민속 분야를 아우리는 방대한 양의 식문화 관련 전시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단점이라면 밥상인데 후각과 미각이 할 일이 없다는 거다. 대신 음식을 만드는 조리 영상이 소리와 함께 전시실 곳곳에서 흘러나오니 귀호강은 가능하다. 전시를 본 한 줄 소감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밥상이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다니,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2026.07.21-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1부 "삶과 함께 한 우리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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