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발산동 강서수산물도매시장 (feat. 일품정)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그눔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니면 벌써 제주도를 찍고 왔을 거다. 왜냐하면, 겨울은 대방어가 제철이니깐.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제주보다는 강원도 방어가 각광을 받는단다. 이거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제주도가 아닌 외발산동에 있는 강서수산물도매시장에서 올해 첫 대방어회를 만끽했다.
서울에는 가락동, 노량진 그리고 외발산동에 수산물 시장이 있다. 가락동은 동쪽이라 너무 멀고, 노량진은 외발산동에 있는 강서수산물시장을 알기 전까지 즐겨 찾았다. 우리 집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노량진, 왼쪽으로 가면 외발산동이라고 치고, 거리로만 따지면 노량진이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외발산동으로 간다. 이유는 호객 행위가 덜하고, 주차가 편하고, 물건이 좋으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량진에 비해 조용하달까.
강서수산물도매시장은 요런 구조로 되어 있는데, 첫 줄에는 활어회가, 가운데줄은 고등어, 갈치 등 선어가 그리고 마지막줄은 활어인데 조개, 문어, 장어와 같은 녀석(?)들이 있다. 정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한 바퀴를 돌다 보니 그런 느낌적이 느낌이 왔다. 방어는 확실히 첫 줄에 있다.
서울에 있는 수산물시장답게,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생선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먹걸치에 제주갈치, 고등어, 아귀, 오징어, 물곰, 삼치, 가자미, 우럭, 대구 등이 있다. 산지에 가면 어떤 생선인지 모를 때가 있는데, 여기는 이름표와 함께 원산지를 표시하고 있어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게다가 생선마다 비닐로 포장을 해서, 비린내따위는 전혀 나지 않고 선도도 겁나 좋아 보인다. 대구랑 고등어랑 오징어를 무지 사고 싶었는데, 다른 곳을 들려야 해서 눈으로만 보고 왔다. 하지만, 주말에 가서 다 샀다는 거, 안 비밀이다.
제철답게 활어회를 파는 곳마다 대방어가 있다. 과하지 않지만 호객행위가 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그저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한 바퀴를 돌았는데, 낙지와 장어를 팔고 있는 가게 주인장과 눈이 딱 맞았다.
뭐 사러 왔냐는 질문에, 대방어는 저기 첫줄에 있나 봐요라고 했더니, 그럼 이 줄은 대방어가 없어라고 하면서, 대방어회를 먹으러 왔냐고 다시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울 아들이 활어를 하고 있다면서 소개를 해준 곳이 항구수산이다. 딱히 갈 데도 없고 호객행위는 부담스러워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로 왔다.
활어를 파는 곳답게 어종이 겁나 다양하다. 국내산에 중국산 그리고 일본산이 있다. 어라~ 일본산이면 혹시?? 하면서 물어보니, 그쪽(후쿠시마)은 아니고 제주도와 가까운 대마도에서 온다고 주인장이 알려줬다. 참, 사진은 양해를 구하고 촬영을 했다.
겨울 하면 방어, 방어하면 대방어다. 작은 수조가 더 작게 느껴질 정도로 덩치가 겁나 좋다. 그런데 살짝 아파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주인장 왈, 이동거리와 물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대방어이니 당연히 제주도에서 온 줄 알았다. 주인장 왈, 요즈음 제주까지 내려 가지 않고 강원도에서 주로 잡힌다. 기사 검색을 하니, 기후 변화로 동해 수온이 올라가면서 겨울철 방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꿨고, 제주 연근해에 상어가 자주 출몰해 방어가 강원도에 오래 머문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를 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위해 혐오스럽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메뉴판인데, 저기에 없는 메뉴를 주문해도 된다. 혼자이고 대방어회만 먹고 싶다고 하니, 400g, 1kg, 2kg가 있는데 400g(55,000원)이 무난하다고 해서 그렇게 달라고 했다. 뱃살에 특수부위도 먹고 싶지만, 부위별로 판매하고 있어 그건 어렵단다. 2kg를 주문하면 가능한데, 혼자서 다 먹을 수 없기에 뱃살만 공략하기로 했다.
1층에서 회를 구입하고, 2층에서 먹는다! 수산시장 시스템은 대체로 비슷하다. 초장집이라 부르는 일품정은 항구수산 주인장이 알려줬다. 소개해주면 소개비를 따로 받을까? 예전에 별별생각을 다 했지만, 지금은 어디로 갈지 고민하기 귀찮아서 알려준 곳으로 간다.
평일이고 12시가 조금 지났다. 지금이 가장 바쁠 때이지만,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배달전화는 폭주, 실내는 한가하다. 주말에는 빈자리가 없다고 주인장이 살짝 알려줬고, 그래서 평일에 왔다고 바로 대답했다.
회상차림은 4,000원인데, 룸은 6,000원이다. 그런데 시즌이다 보니, 룸 예약이 계속 들어온다. 실제로 누군가가 전화가 아니라 직접 와서 예약을 했는데 주인장 왈, 그날은 빈방이 없어요~
서더리매운탕과 매운탕은 같은데, 전자는 여기서 주문, 후자는 재료를 갖고 와서 끓여달라고 하는 거다. 서울이라서 가격이 좀 있구나 했는데, 가격을 인정할 만큼 퀄리티가 좋았다.
그리고 막장과 쌈채소가 나왔다. 조미김은 항구수산에서 줬다. 상치림에 나오는 반찬은 기대하지 않은데, 역시 기대하지 않길 잘했다. 겨울 대방어는 참치만큼 아니 그보다 기름이 넘쳐흐른다. 참치회에 조미김이듯, 대방어회에도 조미김을 주나 보다. 김을 겁나 좋아하는 1인이지만 지금은 김이 필요 없다.
대방어회는 두툼하게 썰어야 맛이 확 산다. 등살은 담백하고, 꼬리살은 쫄깃하고, 뱃살은 참치뱃살 못지않게 기름진 맛이 끝내준다. 다양하게 다 먹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살은 단단하고 기름기는 잔뜩 오른 대방어회 먹기 5초 전이다.
그나저나 활어회일까? 선어회일까? 수조에서 꺼내 잡지 않았으니 선어회인 거 같기도 하고, 활어회 코너에서 팔고 있으니 활어회인 거 같기도 하고, 주인장은 활어회라고 했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선어회같다.
대방어의 맛을 느끼기에는 약간의 와사비와 간장이면 충분하다. 산지(제주 혹은 강원도)가 아니라 서울이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점을 입에 넣은 순간, 혀와 입천장의 압력으로 대방어가 품고 있는 기름이 쫙 퍼져나간다. 입틀막을 할 정도로 기름이 장난아니다. 굳이 산지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거, 제대로 느끼는 중이다.
서비스로 준 꼬리살은 기름도 있지만, 단연코 식감이 짱이다. 기름은 빨간 뱃살 > 하얀 뱃살 > 꼬리살이라면, 식감은 꼬리살 > 하얀뱃살 > 빨간 뱃살이다.
묵은지와 막장은 새콤함을 더했고, 조미김과 무순은 고소함을 더했다. 느끼함을 잡기 위해 이렇게 먹는다고 하던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은 와사비 + 간장이다. 느끼하다 싶으면, 묵은지와 조미김이 아니라 로이를 찾으면 된다.
혼자서 400g은 무리라 생각했는데, 혼술을 하면서 먹으니 1kg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새 다 먹고 딱 2점 남았다. 연출용 사진을 제외하고 모든 대방어회는 와사비 + 간장 조합으로 끝냈다. 중간중간 로이로 입가심한 거, 쉿~ 비밀이다.
횟집에서 매운탕은 만원 이내로 먹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은데, 일품정의 서더리매운탕(중, 14,000원)은 많이 비싼 느낌이다. 그래서 먹지 않을까 했다가, 대방어회만 먹고 끝내기 아쉽다.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우선 양이 푸짐하다. 혹시나 국물에 채소만 가득일까 했는데, 서더리이지만 살점도 많고 대가리에 몸통 등 다양하게 들어있다.
때깔이 진해서 꽤나 매운 줄 알았는데, 대방어회로 기름칠을 해서 전혀 맵지 않다. 조미료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국물도 나름 깔끔하다. 요렇게 한 접시만 먹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본격적인 식사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감칠맛이 나는 국물에 살점이 많은 서더리 그리고 공깃밥대신 주문한 수제비까지 2차를 준비하는 기분이랄까? 곁다리가 아니라 근사한 안주이자 식사가 됐다.
쫄깃한 수제비는 식감을 더하고, 생선 뼈는 발라먹기 힘들지만 살점이 많으니 대충 먹을 수 없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먹다 보니, 어느새 생선뼈탑을 세웠다. 뼈탑 인증사진을 찍었지만, 자극적이라서 업로드는 하지 않고 소장용으로 백업 폴더에 넣어뒀다.
요즘 주량이 로이 반 병으로 줄었는데, 대방어회에 매운탕까지 어느새 1병을 끝내고 추가주문까지 할 뻔했다. 남으면 담아 오려고 텀블러까지 챙겼는데 괜한 짓을 했다. 겨울 제철 대방어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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