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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 기획전시 이 땅의 풀로 엮는 초경공예

다른 의미의 초경은 잘 알고 있지만, 초경공예는 처음이다. 사실 직접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 처음인 줄 알았는데, 빗자루, 반짇고리, 채반, 죽부인 등 익숙한 물품이 많다. 그때는 생활용품이었지만, 지금은 짚과 풀, 나무의 줄기로 만든 공예 작품이다. 서울공예박물관 기획전시 '이 땅의 풀로 엮는 초경공예'다. 

 

서울시 안국동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
이 땅의 풀로 엮는 초경공예 전시는 전시2동 1층 지역공예실

손재주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음악보다 미술을 싫어했던 어린 양파는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부러워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동경보다는 존경의 대상(?)이다. 상설전시 관람을 끝내고, 딱히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기획전시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1층인데 2층에서 내려가야 한다~

초경이란 용어는 15세기 중후반 김시습의 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며, 현종실록에 초경은 백성들의 구황식물이라는 의미로 기록됐다. 이랬던 초경이 공예품 제작의 포괄적 재료로 본격 사용되는 것은 광복 이후부터라고 한다. 

짚은 이용한 공예를 짚공예라하며, 짚과 풀을 이용한 공예를 짚풀공예, 풀짚공예, 풀공예 등이라 일컫는다. 이 전시는 짚뿐만 아니라 이 땅의 자생하는 모든 공예재료로서의 초본(풀), 초고(풀과 짚), 초목(풀과 나무)의 쓰임을 소개한다.

 

초경공예 재료

그렁, 갈대, 대
칡, 왕골, 부들
수수, 신서란

풀은 줄기가 연하고 물기가 많아 목질을 이루지 않는 식물을 의미한다. 볏짚을 쉽게 구하기 어려운 도서 산간 지역에서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질긴 풀을 채취해 생필품을 만들었다. 종류는 갈대, 그렁, 대, 띠, 모시, 삼, 부들, 골풀, 억새, 신서란 등이 있다.

 

보리, 벼, 댕댕이덩굴(정동)

짚은 이삭을 떨어내고 남은 줄기와 잎을 뜻한다. 농촌사회에서 볏짚은 단순한 수확의 부산물이 아닌, 초경공예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쓰였다.  볏짚, 보릿짚, 밀짚 등이 있다. 

 

버들, 싸리

나무는 지상부가 단단하고 목질화가 되며 나이테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무의 줄기나 껍질을 가공해 공예품을 만들기도 한다. 버들, 댕댕이덩굴, 싸리, 소나무, 칡 등이 있다.

 

익숙한듯 낯한 초경공예 작품
왕골로 만든 브러치와 반짇고리
보리짚과 견으로 만든 인두판
대로 만든 채상(앞) / 왕골로 만든 보석함(뒤)
버들을 엮어 만든 납작한 상자 동고리와 시루밑을 응용한 가방

채상은 대나무를 종잇장처럼 얇고 가늘게 쪼개서 물들인 후 무늬를 놓아가면 짠 고리를 말한다. 상자 세짝이 한 벌을 이루어 삼합이라 한다. 주로 의복이나 침선 도구, 귀중품을 간수하기 위한 보관함으로 쓰였다.

 

의(衣)

강화지역 도롱이
제주지역 도롱이

도롱이는 갈대, 띠, 볏짚, 부들, 억새, 왕골, 칡 등을 엮어 만든 비옷이다. 겉을 층층이 엮어 아래로 드리우기 때문에 빗물이 타고 흘러내리도록 고안되었다. 그중 습기에 강해 물이 잘 스미지 않는 띠도롱이를 최상품으로 여겼고, 선조실록에 따르면 한 벌은 베 40필에 해당하는 고가의 공예품이었다고 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상의원 소속의 사의장을 두어 왕실에 필요한 도롱이를 만들었고, 농가에서는 노동복으로 여겨 자급자족했다. 여름에는 비옷으로, 겨울에는 추위를 막기 위한 방한복으로 거듭났다. 계절에 관계없이 농촌의 필수품으로 요긴하게 쓰인 도롱이는 1960년대 이후 비닐이 등장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설피, 지총미투리, 짚신
초립 / 갓집, 패랭이

 

식(食)

섬에서 가마니로

섬은 섬틀을 이용해 짚으로 거적처럼 짠 뒤 양 끝을 안으로 욱여넣고 상자처럼 꿰맨 일종의 자루이다. 표면이 거칠고 성글기 때문에 작은 알곡이나 도정한 곡물보다 굵은 벼와 보리. 콩 등을 담아 두기 적합했고, 곡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짚은 많이 넣어 두툼하게 짜 무거웠다.

 

일본에서 가미나가 들어온 후 우리의 전통 섬은 사용 빈도가 줄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1970년대 보급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는 볏짚이 짧아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만들기에는 부적합했고, 마대, 비닐, 포대 등이 보급되면서 가마니를 대체했다.

 

산간지방에서 주로 사용한 싸리로 만든 채독 / 짚독
우리 집에도 있는 광주리와 채반 

동구미는 곡식이나 채소를 담는 그릇으로 농가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해서 형편에 따라 크기가 다양했다. 볏짚과 부들로 엮었고, 갈색의 싸리나무껍질을 사이사이에 넣어서 자연스러운 무늬를 자아낸다.

 

멧방석은 멧돌이나 매통을 쓸 때 밑에 까는 용구이다. 술병처럼 생긴 씨오쟁이는 귀중한 씨앗을 보관하던 농구이다. 해충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입구를 잘록하게 만들었으며, 목 부분에 끈을 달아 바람이 잘 통하는 공간에 걸어 놓았다.

똬리는 딱딱하고 무거운 짐을 일 때 머리와 물건 사이에 괴어 완충역할을 하는 고리 모양의 받침 도구이다. 옆에 있는 건 짚방석으로 야외용 방석 또는 항아리 뚜껑으로 활용했다. 맨끝 왼쪽은 쌀통이며, 옆에는 김칫독이나 쌀독을 덮는데 쓰인 두트레방석이다. 

 

또다른 식(食)공간
해녀가 헤엄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태왁과 망사리

차롱(큰 거)은 장방형의 대나무 용기로, 떡이나 밥, 채소 등을 담았다. 제주에서는 뚜껑이 없는 그릇은 바구니로, 뚜껑이 있는 그릇은 차롱으로 부른다. 동고량(작은 거)은 보리밥이나 떡 등을 담거나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려고 할때 이용하는 도시락 형태의 대나무 그릇이다. 속에 담은 음식물이 쉽게 마르거나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뚜껑을 덮어서 사용한다. 

 

닭둥지와 달걀꾸러미 / 망태기
주루막과 주루막틀

주루막은 등에 짋어지는 주름 잡힌 망태기의 일종이다. 주둥이를 주름잡아서 벌렸다 오므렸다 할 수 있고, 등에 메고 다닐 수 있다. 주로 산골에서 약초를 캐러 갈때 사용했다.

 

주(住)

왕골로 만든 용문석(바닥)

자리는 실내외 바닥에 사용한 깔래로서 의례나 장식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진화했다. 사람들은 형편에 따라 짚, 갈대, 부들, 왕골 등으로 만든 자리를 깔았다. 그중 왕골로 만든 인천 강화의 화문석과 전남 보성의 용문석은 지역의 명물이자 왕실 진상품으로 예로부터 이름을 높였다. 

 

사초로 만든 자리 (체험공간)
키(농기구)

왼쪽부터 1번~13번. 1번 개나리새, 2번 볏짚, 3번 등나무, 4번 마(촉) 대(손잡이), 5번 억새, 6번 질경이(촉) 대(손잡이), 7~8번 억새, 9~13번 칡으로 만든 붓.

 

칡붓
죽부인 그리고 이층롱(대, 소나무, 느티나무)

아기구덕은 아기의 요람으로 대나무를 엮어 장방형으로 만든 바구니이다. 보통의 구덕보다 길이와 높이가 있어 흔들면서 아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구덕 내부 중간에 신서란 끈을 그물처럼 엮고 그 위에 보릿대와 요를 깔아 아기를 눕혔다.

 

빗자루는 예로부터 갈대, 수수, 싸리, 대, 짚, 칡 등의 식물로 제작했다. 방, 부엌, 마루 마당을 쓰는 청소 도구이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나쁜 기운을 몰아내거나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도 가졌다.

 

플라스틱 빗자루와 진공청소기가 일상이 됐지만, 지금도 풀을 손수 채취해 빗자루를 만드는 장인들이 존재한다. 전남 순천만습지, 부산 낙동강, 강원 홍천강, 보은 달천, 제천 두학천 등지에 활동하는 장인들은 매년 갈대꽃을 수확하고 건조시켜 빗자루를 만든다. 손잡이에 심을 넣어 보강하고 부들 등으로 표면은 감싸는 빗자루는 재료 수확부터 가공, 완성까지 6개월 남짓 걸린다.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부드러운 촉감과 특유의 향 등 장점이 많아 재조명되는 빗자루는 시라져가는 지역 문화의 명맥을 잇는 대표 초경공예품 중 하나이다. 자연에서 재료를 찾고, 다듬고 꼬고 엮고 짜면서 무늬를 내고, 염색으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성이 느껴지는 초경공예, 가장 친환경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전시는 8월 28일로 얼마남지 않았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다. 

2022.03.10 - 장인, 공예의 전통을 만들다 서울공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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