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죽도소년
포항여행을 여러번 갔지만 여전히 낯선 동네다. 갈때마다 지인 아닌 지인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때 뿐이다. 딱히 친분이라고는 없으니깐.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세시간 함께 있었지만, 어릴때 함께 놀던 동네친구를 만난듯 헤어짐이 아쉽고, 곧 다시 보고 싶은 맘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지인 친구이자 포항 인문학샘이 운영하는 카페 죽도소년이다.
죽도시장 규모가 남대문시장만큼 아니 그보다 더 넓다고 하더니, 시장 안에 카페는 물론 게스트 하우스까지 있단다. 게스트 하우스는 시간이 없어 못봤지만, 카페는 지금 가는 중이다. 그나저나 카페 찾아 삼만리라고 할까나? 채소 골목에서 이불 골목을 지나 한복을 만드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시장 안에 카페가 있다고 했지만, 찾을때까지 긴가민가 했다. 지도앱의 도움을 받으면서 가는 중에도 의심을 했는데, 이렇게 딱 만나니 의심은 사라지고 반가움만 가득이다. 포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3시간 정도 남았다. 남은 시간을 카페에서 죽치고 있으려고 하지 살짝 아깝다. 하지만 원하던 목표를 다 이뤘기에 그저 조용히 책(박경리 작가의 토지 정중행 중)이나 읽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오전 11시에 문은 열지만, 문 닫는 시간은 죽도소년 마음대로란다. 너무 늦게 간다면 전화 혹은 인별그램으로 문의를 하면 될 듯.
외관도 그러하더니, 내부도 어수선하면서 정감있고, 어지러운듯 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처음에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는데, 자꾸 보다 보니 어느새 적응이 됐는지 아무렇지도 않다.
카페 주인장겸 화가인 줄 알았는데, 곳곳에 보이는 작품의 주인공은 죽도소년을 찾는 단골들이란다. 그들이 자진해서 작품을 선물할만큼 주인장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작은 칠판에는 오늘의 커피 로스팅한 날짜를 확인하라고 나와 있다. 커피맛 모르는 1인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정보지만, 커피맛 아는 사람들은 요런 센스를 놓치지 않고 꼭 살펴볼 것이다.
메뉴판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자마자 빵 터졌다. 첫번째가 애인 바뀐 단골소님 모른척 해드린단다. 그리고 커플에게는 안친절한단다. 왜냐하면 남자를 질투해서란다. 설마 커플이라서 안친절 할까 했는데 정말 그렇다. 뒤에 진짜 커플 손님이 왔는데, 욕쟁이 할머니(그렇다고 욕을 한건 아님)로 빙의된 듯 무심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였기에 겁나 친절했다. 그래서 친구가 됐다.
핸드드립이 메인인 듯 한데 커피맛 모르는 1인이라서, 생크림을 더한 달달한 아인슈페너(4,500원)를 주문했다. 커피는 줄이고 생크림은 조금 많이, 이렇게 주문을 했다.
위에 보이는 캐릭터도 손님들이 그려줬다는데, 죽도소년 주인장의 초상화(?)라고 하면 맞을까나. 느낌은 다 다른데, 개인적으로 오른쪽 끝에 있는 심야식당 스타일 캐릭터가 가장 맘에 들었다. 참, 죽도소년이라서 소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이 많았는데, 비어있는 3층을 서점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2층도 카페 공간이라는데, 주로 1층에만 있어서 2층은 어떤지 모른다. 주인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서점 얘기가 나왔고 비어있는 3층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왜냐하면 다음에는 2층, 그 다음에는 3층 이렇게 올때마다 다른 모습의 죽도소년을 만나고 싶으니깐. (절대 올라가기 귀찮아서 안 본 건 아님 주의)
두명이 앉는 테이블인데, 마주보는 구조가 아니라, 주인장은 바라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니 주인장과 안 친해질 수가 없다. 요즘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고 있는 중이다. 현재 3권을 달리고 있는데, 대하소설이다보니 올해 안으로 끝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암튼 커피나 마시면서 조용히 책을 읽어야지 했다가, 낯가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장고 두시간이 넘도록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포항 현지인답게, 포항에 대한 인문학이라고 할까나? 죽도시장의 역사부터 복개천이 많은 이유, 죽도시장내 가장 비싼 땅이 어디인지 등 메모 혹은 녹음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알찬 정보를 들었는데, 아쉽게도 땅 정보만 똑똑히 기억난다.
주인장의 소개로 만난 단골손님이 여기서 결혼식을 올렸단다. 풀스토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나두~' 이랬다. 포항에 살았다면 단골이 되어 자주 찾았을테고, 혹시 모를 만남을 꿈꿀 수 있을텐데 서울과 포항은 넘 멀다.
아인슈페너는 드립으로 만들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주문한 드립커피를 만들고 있을때 양해를 구하고 담았다. 달달한 커피는 바닐라 라떼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아인슈페너도 무척이나 달달하다. 부드러움까지 더해 쓴커피 맛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생크림이 많아서 빵을 찍어 먹어도 좋다.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서 마셔 봤지만, 같은 크림인데 아이스보다는 생이 훨씬 좋다.
개풍약국 자리가 바로 가장 비싼 땅이다. 범위가 죽도시장인지, 포항 전체인지는 헷갈리지만, 암튼 죽도시장 내에서 가장 비싼 땅은 확실하다.
여기는 죽도소년으로 가는 가장 빠른 출입구이자, 죽도시장내 유명한 주전부리가 여기에 포진되어 있다. 인문학 강의가 길어지다보니, 시간이 부족해 택시를 타고 포항역으로 가야 했지만, 낯선 동네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 포항하면 과메기가 먼저 생각이 났는데, 이제는 죽도소년이다. 곧 다시 가보고 싶은데, 포항에 갈 핑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때까지 인별그램을 통해 계속 친한 척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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