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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로드 대장정 6화: 류마는 관절을 좋아해

MRI판독 결과지를 갖고 다니던 재활의학과에 갔다. 결과지에 나와있던 그녀석을 보더니, 원장은 그녀석이 정말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피검사를 하자고 한다. 어차피 결심을 하기도 했고,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서는 피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러자고 했다.

 

손가락이 아파서 동네에 있는 류마티스 내과에 갔을때, 그때 피검사를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손가락 변형도 무릎 관절도 다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후회는 현실에서 겪는 가장 큰 지옥이라는 빈센조의 명대사가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이야. 그 지옥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살고 있다.

 

피검사 후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에 갔다. 재활의학과 원장이 아무래도 외과적인 치료가 필요할 거 같다고 해서다. 다음날 MRI 판독지와 촬영영상을 들고 정형외과에 갔고, 추가로 X-레이 검사를 또 받았다. 정형외과 원장왈, 의원보다는 대학병원에 가야 한단다. 관절 속에 염증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받아야 할 거 같단다. 대학병원에 가려면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외래가 가능하므로, 의뢰서를 작성해주겠단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난 후, 회덮밥이 아니라 돌멩이덮밥이다!

심각하다고 느끼긴 했으나 수술까지 해야할 줄은 몰랐다. 상담이 끝나고도 병원을 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에 전화를 했고, 다음날 오전에 진료예약을 했다. 참고로 복권운은 없는데, 병원 예약운이 있는 편이다. MRI도 예약 취소로 인해 다음날 바로 검사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예약 취소인지 한타임이 비어있어서 예약이 가능했다.

 

아침부터 한끼도 먹지 못했기에, 정형외과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늦은 점심이지만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회덮밥을 주문했다.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해도 수술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입맛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새콤한 회덮밥이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회가 아니라 돌멩이를 씹는 것만 같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음식도 기분이 좋을때 먹어야 맛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음날, MRI판독지와 촬영CD, X레이 영상과 진료의뢰서를 들고 대학병원에 갔다. 아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아침부터 대학병원은 인산인해다. 외래 접수와 수납을 하고, CD 영상은 병원에 있는 전용 컴퓨터에 저장을 하면 해당 진료과로 보내진다고 해서, 진료 전에 서둘러 작업을 마쳤다. 

 

머리 속에는 계속 수술 생각뿐이었다. '진짜 수술을 하면 어떡하지? 부모님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수술이 확정되면 그때 말씀을 드려야 하나?' 등등등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나? 정형외과 의사를 만난 후, 의사는 수술이 아니라 류마티스 내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단다. 피검사를 해야 한다기에, 다니던 재활의학과에서 받았고 오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결과 확인 후 류마티스 내과로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수술 걱정은 덜었지만,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니 그녀석이 확실하다고 나왔다. 염증 수치와 류마티스 수치가 기본을 넘어 High로 나왔기 때문이다. 재활의학과 원장과 나는 한동안 말없이 결과지만 바라봤고, 원장은 류마티스 내과용으로 진료의뢰서를 작성해줬다. 오전에 갔던 대학병원 류마티스 내과는 예약이 꽉 차서 당일 접수가 안된다. 이틀 정도 기다려야 한다기에 기다릴까 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 또다른 대학병원이 있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면서 젼화를 하니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현장 접수는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찾은 대학병원이 이대목동병원이다. MRI, X레이 영상에 진료의뢰서까지 있는데, 주치의는 X레이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한다. 목부터 발가락까지 꼼꼼하게 촬영을 했고, 피검사도 마치 헌혈을 하듯 엄청난 양을 뽑아냈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주치의를 다시 만났다.

 

의사는 말없이 결과지만을 바라봤고, 나는 그 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이 바보야~ 이렇게 될때까지 정말 몰랐던 거니?" 딱 이런 표정이었다. 이때 알았다. 무릎이 시작이 아니라 종착지였음을 말이다. 손목을 시작으로 손가락을 지나 발가락에서 잠시 머물렸다가 무릎에서 한참을 놀았고 팔꿈치로 옮겨가고 있는 중에 그녀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관절을 무지 좋아하는 그녀석에게 목관절과 허리관절 그리고 고관절은 지켜냈다.

 

손목은 강도는 다르지만 양쪽 다 그녀석이 다녀갔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각각 하나씩 그녀석이 스쳐갔다. 가장 심각했던 왼쪽 무릎 관절은 그녀석이 다 먹어버렸다. 팔꿈치는 시작단계라 변형도 관절도 지켜냈다. 그녀석은 지나간 자리마다 어김없이 흔적을 남겼다. 더 큰 흔적은 남기지 않게 됐지만, 한번 손상된 관절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내과적인 질환이고 난치병이라서 약을 아주 오랫동안 먹어야 한다. 그동안은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정확한 약처방 때문인지 하루만에 부종은 호전됐으며, 소리와 부자연스러운 걸음 역시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약과 함께 왼쪽 무릎 주변 근육 강화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듯, 관절이 없으면 근육이니깐.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하고, 2주마다 병원에 가야 한다.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에 두번씩 약을 챙겨 먹는게 쉽지 않지만, 안 먹으면 그녀석이 다시 활개를 치고 내 몸 속을 다닐 것이다. 난치병이지만 불치병은 아니니, 완치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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