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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동 선미옥

팥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일년에 한번은 꼭 팥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날은 동짓날로 올해 동지는 12월 21일이다. 원래는 팥죽을 먹어야 하지만 역시나 그닥 좋아하지 않기에, 죽대신 국수가 들어있는 팥칼국수를 먹었다.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선미옥이다.

 

지난 여름 콩국수 먹으러 자주 찾았던 곳인데, 겨울에 오니 콩국수 입간판은 사라지고 팥칼국수가 보인다. 겨울에 콩국수를 먹어도 좋을텐데, 없으니 따끈따끈한 팥칼국수나 먹어야겠다. 

 

혼밥이기도 하고 사람이 없을때 먹으려고 일부러 2시무렵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사진과 달리 동짓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 먹는 사람에 주문하는 사람들까지 자리가 꽉 차지는 않았지만 예상과 달리 북적북적했다. 그래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덜 조심하는 분위기다. 알아서 거리두기도 하고, 서로간의 대화도 자제한다. 나야 혼밥이니 주문할때만 말하고, 계산하고 나갈때까지 묵언수행을 했다. 

 

팥칼국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동지팥죽이 있다. 마침 동짓날이기도 하고, 팥죽을 먹을까 하다가 원래 계획대로 팥칼국수(8,000원)를 주문했다. 원산지가 다 국내산, 맘에 아니 들 수 없다.

 

보리비빔밥은 애피타이저
잘익은 열무김치와 겉절이는 기본반찬

원래는 보리밥만 나오고, 고추장은 테이블에 있으니 직접 넣어야 한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카메라가 아니라 고추장을 먼저 들었다. 애피타이저라 밥양은 그리 많지 않다. 더 달라면 더 주지만, 칼국수 양이 많아서 보리비빔밥은 감질나게 먹는게 좋다. 고추장에 열무김치를 더해 쓱쓱 비빈 다음, 까슬까슬한 보리밥에 알맞게 익은 열무김치와 달큰한 고추장은 조화가 아니 좋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선미옥의 변화랄까? 커다란 수저통 안에 종이포장지로 싸여있는 수저가 가지런히 들어있다. 

 

선미옥 팥칼국수 등장이오~

커다란 질그릇에 팥칼국수가 가득 들어있다. 이래서 애피타이저에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동직팥죽대신 팥칼국수지만, 팥은 팥이니깐. 귀신이 알아서 물러가겠지. 참, 동짓날을 작은설이라고 해,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단다. 옛날부터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조상께 제사 지내고 대문이나 벽에 뿌려 귀신을 쫓아 새해의 무사안일을 빌던 풍습이 있었다. 어차피 곧 한살을 먹을텐데 좀 일찍 먹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나이를 먹는게 슬픈 뿐이다. 

 

테이블에는 소금과 설탕이 있다. 개인적으로 콩국수에는 소금을, 팥칼국수에는 설탕을 넣는다. 애피타이저와 메인의 차이, 그릇만 봐도 알 수 있다. 

 

팥빙수나 단팥죽과 달리 팥칼국수에는 팥알갱이가 없다. 후루룩 마실 수 있을 정도로 팥을 곱게 갈았다. 약하게 간은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소금이나 설탕을 추가해야겠다.

 

죽대신 오동통한 칼국수 면이 들어 있다. 팥칼국수의 특징이랄까? 면보다는 국물이 훨씬 많다. 국물이 진국이니, 국물 위주로 먹으라는 주인장의 깊은 뜻이 아닐까 싶다.

 

뜨거우니 앞접시에 덜어서 먹어야 한다!

바지락이나 멸치가 주는 시원함 없다. 김치나 청양고추가 주는 칼칼함이나 매콤함도 없다. 단맛이 빠진 팥물의 맛이랄까나? 팥을 좋아한다면 미친듯이 달려들텐데, 어찌나 먹는 속도가 더딘지 뜨겁다는 핑계로 무지 천천히 먹고 있는 중이다.

 

겉절이를 올려보아도, 잘 익은 열무김치를 올려보아도 뭔가 부족하다. 약하게 간은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 

 

소금과 설탕 중 설탕 선택!

콩국수에는 소금이라면, 팥칼국수에는 설탕이 진리다. 우선 면을 다 먹고 국물만 더 담아서, 설탕을 넣고 또 넣고, 5티스푼을 넣었다. 아직 설탕이 녹지도 않았는데, 한숟갈 먼저 먹는다. 팥빙수도, 단팥죽도, 팥빵도 겁나 달게 먹는 이유는 알겠다. 설탕을 넣기 전과 후가 완전 다르다. 넣기 전에는 심심하지만 건강한 맛이었는데, 설탕을 넣고 나니 사악하게 변해버렸다. 넣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입맛을 바꿔놨다. 개인적으로 단맛을 극히 싫어하는데, 팥칼국수 아니 팥물은 달게 먹어야 정답이다. 여기에 뜨끈한 우유를 더하면 팥라떼가 된다.

 

으흐흐~ 미쳐가고 있는 중이다. 내년치 먹을 설탕을 지금 이순간 먹고 있다. 달달한 팥물을 순식간에 들이마시고, 이번에는 칼국수를 더했다. 그런데 팥물일때는 설탕 과다가 맞는데, 팔칼국수는 아니다. 세상 이렇게 달달한 칼국수는 처음 먹어본다. 아무래도 국수는 빼고, 팥물만 마셔야겠다.

 

남은 팥물에 설탕 또 투하!

면발을 다 걷어내고, 팥물만 남기고 또 설탕을 대량 붓는다. 한끼 식사에 이렇게나 설탕을 많이 먹어본 적은 없지만,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넣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잠시 미쳤던 듯 싶지만, 극강의 단맛에 기분은 엄청 좋아졌다. 그리고 당분간 아니 아주 오랫동안 팥칼국수는 금지다. 대신 단팥죽이나 먹으러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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