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모슬포항 올랭이와 물꾸럭
겨울 대방어는 참치보다 좋다라는 말이 있다. 산란기를 앞두고 있어 몸집은 커지고 살에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겨울 방어를 먹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방어 산지인 모슬포항에 도착을 했고, 13kg짜리 대방어를 먹기 위해 올랭이와 물꾸럭으로 향했다.
겨울 제주 여행의 첫번째 목적은 대방어다.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대방어회를 먹었지만, 산지에서 먹은 적은 한번도 없다. 아무리 산지직송이 좋다고 해도, 산지를 이길 수 없으니 제대로된 방어를 먹기위해 직접 움직였다. 일주일 전에 예약을 했고, 저녁 7시가 되기 전까지 밥도 먹고, 시장에도 가고, 애기동백도 봤는데 별 감흥이 없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목적달성을 못해서 그런 듯 싶다. 안으로 들어가기 1분 전, 이제야 여행의 설렘이 제대로 느껴진다.
모슬포항이 있는 제주도 대정읍에는 방어 산지답게 방어를 전문으로 하는 횟집이 무지 많다. 겨울 대방어는 이번 여행에 있어 핵심이라 할 수 있기에, 한달 전부터 친구에 현지인 찬스까지 동원해서 식당을 찾고 또 찾았다. 여느 횟집처럼 메인인 회에 비해 곁들인 음식(스끼다시)이 많이 나오는 곳은 피하고, 서울에서 먹던 것과는 다름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올랭이와 물꾸럭이다. 겨울 방어철이 되면 특수부위를 시작으로 뱃살과 등살 그리고 방어찌개에 방어찜까지 방어를 코스로 먹을 수 있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그냥 방어가 아니라, 대방어라고 불리는 엄청난 녀석(?)을 먹는다.
주인장의 아버님이 한식대첩2 제주도 고수로 나왔단다. 방송을 띄엄띄엄 봐서 잘은 모르지만, 어찌됐든 고수이니 손맛 하나는 엄청나겠지. 이를 증명하려는 듯, 상장에 메달까지 어마어마하다.
왼쪽은 방어 시즌이 아닐때 메뉴인 거 같고, 오른쪽이 겨울한정 메뉴판이다. 1인이 40,000원이고, 총 4가지 코스로 나온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회 추가가 안된다. 산지에 왔으니 배터지게 대방어회를 먹고 싶었으나, 딱 적절하게 먹고 왔다.
기본찬이 여러가지 나왔는데, 오른쪽에 있는 감귤김치를 제외하고는 거의 먹지 않았다. 메인이 좋으면 반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이번에도 껍질 벗긴 토마토에 두부 스테이크까지 냄새만 맡고 안 먹었다.
사잇살은 뱃살과 등살사이에 있는 부위로 마치 육사사미를 먹듯 식감이 쫀득하고 탄력까지 있다. 꼬리살과 사잇살은 고추냉이보다는 기름장에 찍어 먹어야 고소함이 확 산다.
딱봐도 기름진 부위인 배꼽살과 날개살은 고추냉이를 살짝 올리고, 초생강붓으로 간장을 쓱 바른 후 먹으면 딱 좋다. 참, 날개살은 지느러미 앞부분에 있는 부위다. 참 좋은데, 무지 좋은데, 인당 한점이라서 그게 느무 아쉽다.
누가 방어에 기름칠을 했나? 아니면 조명 때문인가? 윤기가 좔좔 흘러 넘친다. 운이 좋으면 16~8kg급 대방어를 먹을 수 있다는데, 우리가 먹은 건 13kg 대방어였다. 몬스터급은 아니지만, 제철답게 기름은 제대로 올랐다. 이래서 겨울방어는 참치보다 좋다고 했나보다.
등살과 뱃살 부위하고 하는데, 어디가 등살이고 어디가 뱃살인지는 모른다. 특수부위를 먹을때 주인장에게 이것저것 계속 물어봤기에, 이번에는 조용히 먹으려고 한다. 대방어회를 그냥 맨입으로는 먹을 수 없는 법. 제주에 왔으니 라산이와 함께 해야 하지만, 낮에 들렸던 제주샘주 양조장에서 구입한 고소리술과 함께 했다. 40%로 엄청 높았는데, 기름 오른 대방어회와 먹으니 은근 잘 어울린다. 참고로, 올랭이와 물꾸럭은 콜키지 차지 없이 외부 술 반입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참치나 대방어나 고추냉이 + 간장만 더해서 먹는 걸 선호한다. 묵은지나 백김치를 곁들어서 먹기도 하지만, 어쩌다 한번일 뿐이다. 그나저나 이집 감귤김치는 백김치인듯 하나 맛의 깊이가 다르다. 아무래도 귤을 넣어서 만든 김치라 그런지 상큼함이 살아있다.
둘 중 하나는 등살이고 하나는 뱃살일텐데, 오른쪽에 있는 붉은색을 띤 부위가 등살. 왼쪽은 뱃살이다. 찍기 달인은 아니지만, 그동안 먹어왔던 맛과 기억을 되살려 찍었다. 만약 아니면 아닌 걸로. 숟가락에 회를 올리고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마치 곰탕이나 설렁탕을 먹은 듯 숟가락이 엄청 번들번들하다. 이는 대방어에 기름이 많이 올랐다는 증거다.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대방어회가 어느새 스르륵 사라졌다. 한번 더를 외치고 싶은데 추가 주문이 안되니 다음 코스로 넘어가야 한다. 묵은지 방어찌개와 함께 귤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니모메 전통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는 양조장투어에서 따로 할 예정.)
묵은지 방어찌개는 내장이 맛을 지배한다. 왼쪽 사진 중앙에 있는 건 방어 간이오, 오른쪽 사진에 있는 팽이버섯처럼 생긴 건 방어 위라고 한다. 방어는 주로 회로 먹지, 내장이 들어 있는 찌개는 처음이다. 내장이 없었더라면 평범했을텐데 내장으로 인해 맛이 깊어졌다.
코스의 마지막은 방어찜이다. 아귀찜 스타일로 나왔는데, 찜에도 내장은 필수인가 보다. 단맛이 살짝 과하지만, 밥이랑 같이 먹으니 괜찮아졌다. 찌개에 이어 찜까지 처음이라 그런지 많이 낯설다. 가마살 구이는 메로구이를 이길 정도로 좋았지만, 찌개와 찜은 잘 모르겠다. 그저 방어의 내장맛을 알게 됐다는 정도일뿐,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은 아니다. 그러나 13kg급 대방어회는 자꾸 자꾸만 생각이 난다. 제주의 겨울은 무지 춥지만, 모슬포항 대방어땜에 내년에도 또 찾지 않을까 싶다. 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지금 이순간 느무느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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