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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충렬사

동피랑과 서피랑은 못가더라도 여기는 꼭 가야 한다. 통영하면 떠오르는 위인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기 때문이다. 햇살 좋은 봄날, 그분을 뵈러 충렬사로 향했다.

 

통영여행 둘째날 아침, 숙소에서 밍기적 밍기적 시간을 때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먹거리는 다양하게 즐겼는데, 볼거리는 봉숫골 말고는 딱히 없다. 먹부림 여행이 컨셉이긴 하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다. 가고 싶은 곳은 참 많았지만, 이순신 장군을 뵈러 충렬사에 왔다. 

 

통영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선조 39년 왕의 명령에 따라 통제사 이운룡이 세웠다. 현종 4년에 임금으로부터 충렬사라는 현판을 받은 사액사당이 된 이래도 역대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는 지낸다고 한다. 예상했던대로 유물전시관은 휴관이라, 경내만 둘러봤다. 

 

입장료 무료 아니고, 성인 1,000원

충렬사는 정당, 내삼문, 동재, 서재, 중문, 숭무당, 경충재, 외삼문, 강한루, 유물전시관, 정문 등의 건물이 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경건한 맘으로 들어왔는데, 강렬한 레드빛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동백나무가 이리도 많다니 놀라워라~
떨어진 동백꽃조차 아름다워라~

충렬사 입구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동백나무는 본래 네그루였으나 지금은 두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나이는 400여 년 정도 추정되며, 키는 6.3m, 둘레는 1m다. 사방으로 넓게 퍼진 가지는 지금이 7m나 된단다. 통영에서는 음력 2월이면 거센 바닷바람을 달래기 위해 풍신제인 할만네를 지내는데, 그때 동네 아낙들이 정한수 물동이에 동백꽃을 띄우는 풍습이 있다.

 

동백꽃 뒤로 보이는 건
강한루 앞 보호수는 360년 된 느티나무

옛부터 충렬사를 찾은 많은 시인 묵객들이 강한루 위에 올라 충무공의 큰 덕을 되세기며 동백 고목과 더불어 후원의 푸른 죽림을 자주 시제에 올렸던 누각이다. 젼형적 조선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1988년에 복원 되었다.

 

강한루를 지나 충렬사로 올라갑니다~
외삼문 옆 우뚝 솟은 나무
외삼문 양쪽에 있는 부속건물

통영 충렬묘비는 충무공 이순신의 충절과 업적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운 비다. 비문은 광해군 6년에 좌의정 이항복이 지었고, 비석의 위쪽에 '통제사 충무이공 충렬묘비명'이라고 되어 있는 전서체의 글씨는 김수향이 썼다. 비문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공훈에 대한 칭숭과 그에 대한 존경 및 사모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하늘이 예뻐~
내삼문을 지나면 정당이 나와요~

내삼문은 정당의 출입문으로 삼문 중 가장 안쪽의 문이다. 단아하면서도 정교한 건축양식으로 조선중기 삼문조형의 정화라고 한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는 삼가는 몸가짐으로 출입하기 위함이다. 

 

외삼문 옆 나무는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호위무사같아~
정당의 후원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당은 민족의 수호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향을 올리고 공의 정신과 위훈을 만대에 기리기 위하여 제7대 통제사 이운룡이 선조의 명을 받아 세웠다고 한다. 충무공 한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약 300년간 제향을 받들어 온 가장 신성한 장소다. 그래서 내부는 촬영하지 않고, 바라만 봤다. 

 

예상을 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해 일장기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그네들 입장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철천지 원수였을테니깐. 그래도 참 유치찬란하다. 

 

호위무사인 듯
아기 상어 아니고 아기 거북
통영 봄 하늘
강한루에 올라보자~
충렬사 앞마당이 뙇!
강한루에서 뭐가 보이는가?

줌으로 당겨보니, 서포루다. 서피랑에 못 갔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좋다고 해야 하나? 보고 나니 갈 걸, 살짝 후회가 된다. 충렬사로 오면서 99계단에 피아노계단도 봤다. 이번에는 놓쳤지만, 다음에는 모두 다 가보고 싶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 영화 명량을 못 봤는데, 충렬사에도 다녀왔으니 꼭 챙겨봐야겠다. 충렬사하면 충무공 이순신이었는데, 앞으로는 동백꽃이 먼저 생각날 거 같다.   

 

저 위 박경리 생가 역시 다음 기회에~
오르막에 이어 급 내리막을 따라 걸어가면

통영 세병관은 조선시대 관아다. 오긴 왔는데, 딱 여기까지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니깐. 입구컷만 담고는 충무김밥을 먹으러 강구안으로 향했고, 밥을 먹은 후 통영과 안녕을 했다. 여행은 설렘과 아쉬움 사이라서, 자꾸만 떠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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