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동 서촌계단집
싱싱한 해산물은 그냥 먹어도 좋지만, 살짝 익히면 그 맛이 더 살아난다. 이때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얼마나 익히느냐에 따라 맛은 극과 극이 된다. 알맞게 익어 부드러움이 가득한 제철 주꾸미에 미나리를 더하니, 봄을 부른다. 여기에 참소라까지 해산물 숙회는 내자동에 있는 서촌계단집이 단연코 으뜸이 아닐 수 없다.
대락 따져보니 1년만에 재방문이다. 작년에 참소라숙회에 바다라면을 먹었다. 수요0식회에도 나오고,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서 서촌계단집은 늘 핫한 곳이다. 고로 웨이팅은 기본일 줄 알았는데,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거리 자체가 한산하다.
안으로 들어와 몇개의 계단을 지나면, 작은 공간이 나온다. 늘이라고 하니 자주 온 거 같지만, 암튼 주로 여기서 먹었다. 계단집이라고 한 이유는 공간마다 계단이 있어 그런건가 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주방을 지나 2층에 올라갔더니, 1층과는 달리 엄청 큰 공간이 있다. 명성에 비해 공간이 좁구나 했는데, 2층을 몰랐던 거다. 다음에는 공간이 넓은 2층에서 먹어야겠다.
학교 앞 분식집도 아니고, 낙서로 인해 메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훼방꾼이 많긴 하지만 먹고자하는 의지가 강하다 보니, 메뉴에도 없는 제철 주꾸미 숙회를 주문했다. 사실은 직원이 왔고, 혹시나 해서 주꾸미가 있냐고 물어보니 있단다. 고로 "주꾸미숙회(29,000원) 주세요."
비가 오다 눈이 오다 찬바람까지 변덕이 심한 날씨이다 보니, 몸이 얼었나 보다. 홍합탕을 보자마자 숟가락이 아니라 그릇을 들고 마셨다. 짭조름하고 시원한 국물이 목을 타고 쭉 내려가니, 얼었던 속은 뜨끈해졌으며 녹색이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3가지 장은 고추냉이 간장, 초고추장 그리고 막장이다.
제철 주꾸미는 샤브샤브가 딱인 줄 알았는데, 숙회도 괜찮다. 삶다? 찌다? 데치다? 조리법은 모르지만, 분명 불을 가했을텐데 숙회가 아니라 주꾸미회같다. 질김은 일절 없고, 탱글탱글 부드럽기만 하다. 이러니 서촌계단집을 아니 좋아할 수 없다. 참, 레몬은 주꾸미가 아니라 간장에 뿌려서 먹었다.
알찬 주꾸미는 아니지만, 내장과 먹물이 주는 고소함은 엄청나다. 주꾸미 숙회가 나왔을때, 살짝 비릿한 내음이 났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했더니, 범인은 내장이다. 먹을때는 신기하게도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다리에 비해 대가리는 호불호가 있을 듯 싶다.
주꾸미를 들쳐내니 푸릇푸릇 미니리가 숨어있다. 면역력에 좋은 미나리, 더구나 요맘때가 제철이니 자주 먹으면 아니 좋을 수 없을거다. 제철 주꾸미에 미나리까지 입속은 봄나들이 중이다.
다리보다 좀 더 익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직접 조리가 가능한 샤브샤브가 아니니 그대로 먹었다. 생각해보니, 좀 더 익혀달라고 부탁을 했어도 될텐데, 저때는 그생각을 못했다. 그래도 4점 중 2점을 먹었는데, 미나리에 초고추장을 과하게 더해서 먹었다.
주꾸미숙회를 먹었으니, 살아있는 싱싱한 회로 넘어가도 되지만 또다시 숙회다. 이번에는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참소라숙회다. 작년에도 먹었지만, 역시 참소라의 참맛은 맛보고 싶다면 서촌계단집으로 가야한다. 그저 곁들인음식(쓰끼다시) 중 하나였던 소라가 여기서는 주연급이기 때문이다.
비린내는 일절없고, 살은 쫄깃하고 달달하며, 내장이 있는 부위는 고소함을 추가해야 한다. 질기지도 물컹거리지도 않고, 적당하고 딱 알맞다. 먹기 좋게 썰어서 나오니, 하나씩 쏙쏙 집어 3가지 장에 찍어먹다 보면, 어느새 빈 껍데기만 남아 있다.
미나리가 코로나19를 잡는 식재료라면 좋겠다. 해산물과 함께 하거나, 삼겹살을 구워 쌈채소처럼 미나리쌈을 만들어서 먹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미나리가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많이 먹어야겠다. 다른 지역 미나리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청도 미나리를 일부러 찾아서 먹을 생각이다.
집에서 서촌계단집만큼 숙회를 제대로 만들 자신이 없다. 고로 그리 착한 가격은 아니지만, 종종 찾을 거 같다. 일년에 한번 혹은 두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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