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2가 이천냥
김밥은 어딜 가나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담백한 떡갈비와 매콤한 오징어 김밥은 여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다. 건너편에 경희궁이 보이는 아주 작은 김밥집이지만, 맛은 정반대다. 일부러 한정거장 전에 내려 김밥을 사러 간다. 신문로2 이천냥이다.
아마도 예전에는 이름처럼 김밥 한 줄에 이천원이었을 거다. 물가가 오르니 가격 인상은 당연지사인데, 다른 곳에 비한다면 확실히 착한 곳이다. 목적지가 광화문이지만,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리게 만드는 마성의 김밥집이다.
작년에만 해도 오징어 김밥은 2,500원이었다. 가격은 올랐지만, 저 가격에 이런 김밥은 쉽게 만날 수 없다. 한 줄만 먹어도 든든한데, 포스팅을 핑계로 다 달라고 했다.
3년 전에 생활의 달인에 나왔다. 그전부터 알던 곳이었는데, 한동안 못 갔다. 점심 무렵이면 언제나 사람이 많았는데, 방송 후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늘 점심쯤에 가다, 예전에 두어 번 5~6시쯤 갔다가 먹지 못했던 적이 있다. 문 여는 시간은 모르지만, 문 닫는 시간은 따로 정해있지 않고 재료가 떨어지면 닫는 거 같다. 늦게 가면 못 먹을 수 있지만, 점심에 가면 무조건 먹는다.
포장만 되는 김밥집이라 먹을 곳을 찾아 떠났다. 길 건너에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우선 서울역사박물관 건물 뒤로 갔는데, 앉을 데는 찾지 못하고 꽃구경만 실컷 했다. 꽃보다는 잎이 무성한 벚나무.
너의 이름은 겹벚꽃. 그동안 사진으로 여러 번 봤는데, 실물은 처음인 듯싶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겹벚꽃인지 모르고 봤을 거 같다. 그나저나 욕심쟁이 벚꽃이라 부르고 싶다. 일반적인 벚꽃에 비해 개화시기가 늦어서 그런 걸까?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못할까 봐, 더 풍성하고, 더 화려하고, 더 곱게 피었다.
경희궁은 월요일인 휴무다. 고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데 오른쪽 끝에 자동차가 여러 대 보인다. 이때만 해도 김밥 먹을 생각에, 왜 저기에 자동차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김밥에 대한 욕망을 조금만 내려놨다면, 엄청난 스타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잠시 후 공개합니다.
500원의 차이가 주는 김밥의 크기, 아래쪽이 떡갈비, 위쪽이 오징어다.
밥은 조금 내용물은 푸짐이다. 특히 위쪽을 차지하고 있는 건 온전히 떡갈비로, 꽤나 많이 들어 있다. 과다 떡갈비로 인해 고기 맛이 강하게 난다. 담백해서 매운 라면과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김밥이 워낙 두툼해서 한 줄만 먹어도 든든하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김밥을 더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육고기보다 물고기를 더 좋아하고, 진미채가 아니라 진짜 오징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양고추가 들어있어 매콤하다.
크기 비교. 확실히 떡갈비가 크다. 하지만 개인 취향은 오징어 김밥이다. 포스팅을 하지 않았다면, 오징어 김밥만 샀다. 떡갈비 김밥은 먹다 보면 살짝 물린다. 역시 혼자서 두 줄은 무리다. 오징어 김밥만 다 먹고, 남은 떡갈비는 다시 포장해서 저녁에 먹었다. 포스팅을 했으니, 앞으로는 오징어김밥만 먹을 예정이다.
든든하게 먹고 나가려고 하는데, 문 닫힌 경희궁 한편에서 비싼 차들이 마구마구 내려온다. 더구나 양복을 차려입은 경호원들까지 아주 많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광경이 펼쳐졌다. 남일에는 관심이 없어 내 갈길을 가고 있는데, 벤츠 S500이 내려오고 뒤따라 승합차가 내려온다. 그리고 또 벤츠 S500에 승합차, 또, 또, 또 그렇게 4~5번 정도 차들이 지나갔다. 어찌나 검게 선팅이 잘 되어 있는지, 안에 누가 탔는지 확인 불가다. 그런데 딱 한대에 창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는 곧 개봉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호크아이가 타고 있었다.
내한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설마 여기서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이날 오후에 근처 포시즌 호텔에서 컨퍼런스를 했단다. 김밥에 한 눈을 팔지 않았다면, 물론 경호원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차에 타는 그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검색을 하니, 아이언맨, 호크아이, 캡틴마블이 경희궁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단다. 김밥 가격이 6,500원이지만, 이날만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김밥을 먹었다. 차라리 차라도 찍었다면, 멍하니 서서 벤츠가 많이도 지나가는구나 하면서 쳐다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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