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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대 궁궐 경희궁

조선시대 5대 궁궐은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그리고 경희궁이다. 이렇게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저중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은 경희궁이다. 어엿한 하나의 궁궐임에도, 지금은 그저 공원스럽다. 설 연휴에 킹덤을 봤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암석이 나왔다. 어라~ 저 곳, 그리하여 갔다. 아침부터 내린 눈이 어찌나 반갑던지, 눈 오는날 경희궁이다.


경희궁(慶熙宮)은 조서 후기의 이궁(離宮)이다. 이궁은 왕이 거동할때 머무르던 별궁을 말한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으니,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 같은 발음이라서 영조36년에 경희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 서궐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경희궁에 머물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처럼 역사적인 의미가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너무 안쓰럽다.

홍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현재 군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가 홍화문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떼어갔던 것을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금천교가 있다. 홍화문을 지나면 금천교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됐다.


홍화문을 지나면, 작은 표지석이 하나 있는데 서울고등학교 터라는 내용이다. 아니 궁궐에 웬 고등학교가? 창경궁이 동물원 창경원이 되었듯, 경희궁은 일제때 경성중학교가 들어섰다. 중학교로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궁궐이 헐렸고, 절반 정도로 축소되어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1987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왕의 공식행사가 행해진 숭전전(崇政殿), 경희궁의 정문인 홍화문, 돌다리 금천교, 신하들과 회의를 하던 자정전,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태령전 등을 볼 수 있게 됐다. 다른 궁궐에 비해 입장료조차 받지 않고 있으니, 경희궁은 우리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눈 덮인 궁궐은 처음 보는데, 장소가 경희궁이라 그런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홍화문을 지나 승정문까지 아무것도 없다.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텐데, 오늘따라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맘껏 뛰노는 아이들은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까? 도착하기 전까지 눈 온다, 눈 덮인 궁궐을 드디어 촬영한다, 이날이 오기만은 고대했다 등등 저 아이들처럼 신났는데, 지금은 좋았다가 슬폈다가 감정기복이 롤러코스터다.


승정문

승정전으로 올라가는 중

숭전전(崇政殿)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행사가 행해진 곳이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진짜 숭전전은 현재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역시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다고 한다. 킹덤에서 강녕전으로 나왔던 곳이 경희궁 숭전전(崇政殿)이다. 처음에는 세트장인 줄 알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여기가 맞다. 


가운데는 왕의 전용계단이니, 밟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곡병과 일월오봉병 등 복원이 잘되어 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기대했는데, 오다만 듯하다. 그래도 나름 궁궐의 겨울 풍경을 담았다고, 좋아라하고 있는 중이다.


자정문

숭전전 뒤편에는 자정전이 있다. 이곳은 경희궁의 편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전으로 사용되었고,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했다고 한다. 


역시나 이곳도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다. 서울시에서 발굴해 확인한 자리에 서궐도안에 따라 현재의 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숭전전과 달리, 자정전 내부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있다. 


마치 메밀꽃같은 눈꽃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해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어,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해 복원했다고 한다. 


출토된 전돌을 지나, 우회전을 하면 작은 통로가 하나 나온다. 태령전으로 가는 뒷길이라 볼 수 있는데, 저 곳에 엄청난 무언가가 있다. 


한적한 곳이다 보니, 다른 곳에 비해 그나마 눈이 많이 쌓여있다. 잠시나마 눈구경을 했으니, 이제는 그 무언가를 봐야 한다.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자~


엄청난 기이한 모양의 바위 서암(瑞巖)이다. 바위샘이라는 뜻을 가진 암천(巖泉)으로 불리던 샘이 그속에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킹덤에서 어린 세자(주지훈)가 돌 밑에 숨어있고, 스승인 안현대감(허준호)이 세자를 데리고 나왔던 촬영지가 바로 여기다.  

서암은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숙종때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으로 고치고, 직접 서암 두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두게했다.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바위에 깎아 놓은 물길이 옛자취를 전해주고 있다.


킹덤 촬영지는 여기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거 같은데, 미끄러 보이기도 하고 우리 문화유산을 아껴야 하니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봤다. 창경궁에도 커다란 암석이 있지만, 생김새는 경희궁 서암이 압도적으로 기이하다. 


서암은 태령전 뒤에 있는데, 태령전에 가기 위해서는 서암을 지나쳐야 한다. 왜냐하면 태령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있기 때문이다.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았던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영조는 이곳을 중수해 어진을 봉안했고,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임금이나 왕비의 국상 중 장사를 마치고 종묘(宗廟)에 입향할 때까지 신위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했다. 이곳 역시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았는데, 서궐도안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했다. 


빗질을 좀만 늦게 했으면... 태령전에서 바라본 태령문, 저문으로 나갈 수 없다. 고로 서암, 자정전, 숭전전(崇政殿)을 거꾸로 반복하듯 지나가야 한다.


경희궁 옆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기획전시를 한다기에 왔는데, 3월 1일부터 한단다. 경희궁에 있을때만 해도 눈발이 약해 사진 찍는데 불편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거세졌다. 이럴때는 빨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금천교는 다음에 와서 담기로 하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AP특별사진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커다란 울림은 내일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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