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맵지도 않았으며, 치즈, 햄 이런 고급 재료는 기대할 수도 없었으며, 그저 가느다란 밀떡에 1~2개 정도 들어 있는 오뎅 그리고 당면밖에 없는 얇디 얇은 튀김만두가 고작이었던 떡볶이. 누가봐도 건강과는 거리과 먼 불량스러운 떡볶이였지만, 하교길 그집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줌마, 떡볶이 백원에 만두 백원이요." 이렇게 주문하던 시절에 먹었던 그 떡볶이를 지금 만나러 간다. 더불어 아끼고 아껴서 먹었던 새끼손가락만한 분홍소시지가 들어 있던 그 핫도그도 함께..
멀리서 보면 그냥 평범한 분식집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간판이 없다. 간판이 없다는 건, 맛집이라는 의미? 에이~ 여긴 맛집보다는 추억맛집이니깐.
진정한 우리식 오픈 주방의 모습이 아닐까? 매연과 미세먼지쯤은 같이 먹어도 별탈 없이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 같다. 저기 보이는가? 가느다란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어예쁜 핫도그가...
사실 간판은 있다. 문은 열어 놓고 있어야 간판이 보인다는 게 함정. 예전에는 백백집이었던 걸로 아는데 이제는 백백분식이구나.
주방의 모습. 예전에는 할머니가 하셨는데, 지금은 카운터에 앉아 계시고 주방은 다른 분들이 하고 있다.
오픈 주방은 오뎅, 핫도그, 떡볶이, 그리고 불량스러운 야끼만두를 조리하는 곳으로 나눠져 있다.
내부 모습 1.
탁자가 지난 세월을 알려주는 거 같다. 여기에 나의 세월도 조금은 묻어 있는데...
내부 모습 2. 룸이라면 룸이고, 특실이라면 특실 같은 골방으로, 여긴 학교에서 힘 좀 쓰는 형아, 누나들만 앉았던 곳이겠지. 나는 여기에 앉았을까? 아니면 못 앉았을까? 아~ 기억이 안나네.
메뉴판. 예전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는 확실히 착한 가격이다. 소름돋는 추억의 맛을 보기 위해, 주문은 떡볶이 1인분에 튀김만두 2개 그리고 핫도그 하나. 튀김만두는 떡볶이와 함께 달라고 했으며, 핫도그는 설탕, 케첩 다 발라 달라고 했다. 여기 메뉴판에는 없지만, 핫도그는 개당 700원이다.
고독한 먹블 시작이다. 봤는가, 보고 있는가. 이게 바로 소름돋는 추억의 맛, 떡볶이 & 핫도그다. 그리고 찬조출연으로 맹물에 가까운 멸치다시다 맛이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오뎅국물이다.
불어터지지 않은, 오동통한 밀떡이다. 예전에는 불어터진 떡도 없어서 못 먹었는데...(나 지금 너무 나이들어 보이나?) 쌀떡으로 보일 수 있지만, 완벽한 밀떡이다.
이런 만두가 아직도 나오다니, 공갈빵과 친구인 후추로 양념된 당면이 조금 들어 있는 야끼만두다.
예전에도 당면이 있었나? 그런데 떡에 비해 당면은 좀 불었다.
요렇게 당면은 파스타처럼 말고, 떡은 찍어서 먹으면 끝. 맛은 딱 어릴적 시장 또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던 그 맛이다. 건강한 맛은 찾을 수 없는, 아주 많이 불량스러웠던 그 맛이다.
따로 달라고 할걸. 그럼 내용물을 볼 수 있을텐데, 아쉽다. 그런데 원래 이 만두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 떡볶이 양념으로 숨을 죽이면, 바삭이 흐물흐물이 된다. 그래야만 더할나위 없이 불량스러운 맛을 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빈 속도 떡볶이 양념으로 인해 가득 찬 듯한 느낌을 준다. 만두소보다는 만두피에 더 집착하게 되는 공갈만두? 야끼만두? 그냥 만두? 모르겠다. 예전부터 야끼만두라고 했으니, 야끼만두라고 하자.
나름 다른 맛을 찾고 싶은 나머지, 소시지를 감싸고 있던 핫도그 속옷 + 밀떡 + 핫도그 겉옷으로 만든 삼합. 와우~ 겁나 맛있다. 완전 짱이다. 절대 이런 맛 아니다. 밀떡에 밀빵 맛이다.
너 정말 반갑다. 내가 너를 위한 에세이도 썼는데, 이렇게 너를 만나게 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 구나. 살포시 내린 하얀 설탕눈과 추위쯤은 상관없는 빨간 케첩의 조화가 너무나 맛깔스럽다. 참 어릴적 먹던 핫도그 역시 건강함과는 거리과 먼 불량스러움이었다. 그럼 너도...
▶▶ 잠깐만, 새끼손가락만한 분홍소시지가 백미였던 핫도그
역시나 불량스럽구나. 핫도그는 크게 머리, 가슴. 배가 아니라, 겉옷, 속옷, 소시지로 이루어져 있다. 겉옷에 해당하는 부분은 빵은 빵인데, 바삭한 외피와 달리 내피는 술빵 맛이 난다. 옆에 보이는 속옷은 소시지를 경호하는 역할이라서, 소시지 맛이 난다.
깨물어 먹은 흔적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소시지가 나올때까지 절개한 흔적이다. 너무 힘을 줘서 했더니, 소시지의 끝부분이 살짝 떨어져 나갔다. 어릴때 먹던 그 핫도그 모습과 너무나 흡사 아니 똑같다. 여기에 감자에, 고급스런 빵가루에 엄청난 작업을 많이 한 핫도그가 많지만, 역시 소름돋는 추억의 맛 핫도그는 바로 이거다. 그럼 소시지도 새끼손가락만할까?
소시지를 보기 전에 속옷부터 제거를 먼저 해야 한다. 원래 한입에 다 깨물어 먹고 싶었으나, 어릴때부터 먹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나도 모르게 하나 하나 옷을 벗기면서 먹었다.
오호~ 드디어 녀석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홍이었을텐데, 열로 인해 검붉어진 소시지로 변했다.
와~ 진짜 새끼손가락만하다. 나무젓가락에 비해 너무나 작고 작은 앙상한 소시지다. 이러면 안되는데, 여기서 찔끔 눈물이 날뻔 했다. 고향의 맛, 엄마의 맛이 그립다는 어른들의 말씀,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나도 이 맛이 그리웠다. 불량스럽기 그지 없는 바로 이 맛이 말이다.
소시지 윗부분이 살짝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떡볶이보다 두께는 살짝 두툼하지만 길이는 짧다. 설마 소시지라고 해서 비엔나 소시지를 생각하면 안된다. 절대 그 맛이 아니고, 분홍소시지 그맛이기 때문이다. 더불에 기름에 오래동안 있었는지, 육즙(?)이 완벽하게 빠진 텁텁하고 불량스러운 맛이다. 빵이랑 같이 먹었으면 좀 달랐을까? 예전에는 소시지만 남겨 놓고, 하드 먹듯이 빨아서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입만에 다 먹어버렸다.
절대 맛집이라고 할 수 있는 집이 아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추억이 있다면, 불량스러운 추억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가도 좋다. 그런데 성인이 된 첫사랑의 얼굴을 보면 좋지 않다는 명언처럼, 먹고나서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이렇게 불량스러운 맛을 좋아했었나? 이게 예전에 먹던 그 맛인가? 그런데 툴툴대지 않았음 좋겠다. 맛이 달라진게 아니라 우리 입맛이 고급화가 됐으니 말이다. 정말 정말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고 나면, 그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간장게장은 먹을 수 없으니 말이다.
계속 불량스러운 맛이라고 했지만, 불량스러움이 맛이 없다는 건 아니다. 내 입맛이 어린 나에 비해서 너무 고급스러워졌고, 더 맛나고 재료도 더 고급진 떡볶이와 핫도그가 많기에 이렇게 표현한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폴로, 쫀뜩이, 달고나, 눈깔사탕 등 어릴때 불량식품 한두개는 먹어줘야 면역력도 생기도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거 같다. 불량식품이 몸에는 안 좋지만,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깐 말이다. 고척동에서 만난 백백분식, 기억 속 그 맛을 생각나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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