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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운현궁까지 조선시대로의 여행을 했었다. 멋진 우리의 역사와 함께 아픔의 역사를 체험하고 왔지만, 솔직히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단순히 TV 속에서만 보던 그 곳에 내가 있다는 거. 그거 뿐이다. 역사 속 인물들은 없고, 덩그러니 비어 있는 쓸쓸한 궁궐만 보고 왔던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그러나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주자주 가야할 거 같다. 아니 기회가 될때마다 무조건 가고 싶다. 그동안 남의 집(내가 살았을 수도 있지만...^^)을 기웃거렸다면, 이제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색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관람이 아닌,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방법을 찾았으니깐 말이다. 바로, 고궁에서 우리 음악 듣기, "창덕궁 음악회"다(소니 nex-3n으로 촬영)

 


지난번 창경궁 야경(2015 창경궁의 봄 그리고 야경)을 본 후, 색다른 궁궐의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궁궐 야간관람은 벌써 기간이 끝나버렸다. 그런 내년 봄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구나 했지만, 아니다. 야경과 다른 더 색다르고 엄청난 궁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궁에서 우리 음악듣기라는 창덕궁 음악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갈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 솔직히 우리 음악(국악)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창덕궁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에 40명만 볼 수 있다는 공연에 당첨(?)이 됐는데, 잠을 더 자기 위해서 포기를 한다. 아니될 말이다. 늦잠은 다음주 일요일에 자는 걸로 하고, 오늘도 출근모드다. 2014년 5월, 5대 궁궐 시리즈를 위해 창덕궁에 갔었는데, 2015년 5월 고궁에서 우리 음악을 듣기 위해 또 창덕궁에 간다. 창덕궁 음악회는 인터넷으로 티켓신청을 해야 한다. 창덕궁과 후원 그리고 낙선재에서 진행하는 음악회라서 입장료는 7,400원, 당일 현장에서 현금으로 내면 된다. 저 노란 목걸이가 있어야, 멤버(?)가 된다.



안녕~ 창덕궁아. 9시도 안된 시간인데, 날씨가 느무 좋다. 그런데 너무 덥다.



일반 매표소가 아니라, 창덕궁 음악회 전용 창구(?)로 가야 한다. 티켓 확인을 하고, 입장료를 내면 멤버임을 입증할 목걸리를 준다. 10시 일반 관람객과 함께 들어가는게 아니라, 한시간 먼저 들어간다. 40명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 창덕궁 음악회다. 늦잠을 포기하고 오길 잘한거 같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한적한 창덕궁을 본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9시 멤버들만 창덕궁 안으로 들어갔다. 


창덕궁 음악회는 2015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 고궁공연으로 인문학과 어우러지는 풍류음악회다. 창덕궁 음악회 일정은 5월 17, 24일은 정조와 효명세자 이야기[각주:1], 5월 31일, 6월 7일은 두 여인의 치마폭에 가려진 정치사, 6월 14일과 21일은 세종이 사랑한 책 대학연의라는 주제로 역사 해설과 함께 판소리, 무용, 대금연주 등을 창덕궁 후원을 배경으로 듣는 음악회다. 



인정전. 아무도 없는 인정전의 모습을 담고 싶었으나, 일탈하면 안될거 같아 꾹 참았다. 그런데 정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원 입구에서 주의사항을 듣고 나니, 드디어 비밀의 정원 문이 열렸다.



분명히 없었는데, 창덕궁 내에서는 못 봤는데, 후원에 들어오자 마자 너무나 많은 하얀 나비들이 있었다. 이런건 담아야돼 하면서 찍었는데, 점으로만 보인다. 분명히 봤는데, 사진에는 나오지 않고 눈에만 보이는 나비인가 보다. 



부용지, 규장각(주합루 1층으로 왕실 도서관)



부용정 앞에서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부터 정조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분명히 오늘 처음 본 교수님인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역사저널 그날에 나오셨던 분이란다. 이런 가까이에서 들을걸, 사진 찍는다고 뒤에만 있었더니, 교수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깝다.



영화당에서 펼쳐진 첫번째 공연, "판소리 춘양가 중 과거장 대목". 춘향과 이별한 후 서울로 올라와 글공부를 열심히 한 이몽룡이 창덕궁 안의 충당대에서 치러진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판소리가 지루하다, 국악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이거 완전 재밌다. 내가 왕이 된 듯한 착각이 들면서, 직접 현장에서 들으니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거 같다. 아~~~ 우리 것이 좋은 것이구나.



작년에 왔을때는 그냥 공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여기가 과거시험을 봤던 장소란다. 정조인듯 영화당에서 올라가서 찍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저 나무들과 창덕궁과 창경궁을 구분한 담장이 없었단다. 즉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이었다고 김문식 교수님이 알려주셨다. 여기서 누군가는 장원급제를 하고 누군가는 재수, 삼수, 사수를 했겠지.



의두합에서는 어린 나이에 국운을 짊어진 효명세자에 대한 역사 이야기가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정조를 닮고 싶었지만, 아쉽게 너무 일찍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두번째 공연은 궁중무용 "춘앵전"이다.



춘앵전은 효명세자가 모친 순원숙왕후의 40세를 축하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이른 봄날 아침의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 한 것이다. 춤동작은 느린 장단에 맞춰 시작하고 점차 빨라지는 정단으로 연결되는데, 전체적으로 꾀꼬리의 움직임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때 춘앵전은 아무나 볼 수 있는 무용이 아니었다고 한다. 효명세자가 좋아했던 의두합에서 효명세자가 만든 춘앵전을 보다니, 꿈을 꾸고 있는거 같다.



우리 것이 진짜루 좋구먼~



존덕정을 향해 가던 중 만난 이름 모를 꽃. 흐릿하게 보이는 저 곳은 관람정이다.



창덕궁 후원의 울창함. 서울에서 보기 힘든 풍경일거 같다.



승재정에서 들려오는 대금독주 "요천순일지곡"이다. 가곡 태평가의 선율을 본래 음역보다 높게 변주한 곡이란다. 



이건 값진 경험을 하다니, 앞으로는 우리 음악을 좋아해야겠다. 



존덕정에서 정조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알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나는 만천명월주인옹을 자호로 삼기로 했다"


만 개의 개울에 만개의 달이 비치지만, 달은 오직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로 정조 자신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당한 성군이 되고자 했던 정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글이다.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 폄우사.



옥류천, 연경당 등 아직 못본 곳들이 있지만, 후원에서 진행된 창덕궁 음악회는 이렇게 끝이 났다. 10시부터 들어오는 일반입장객과 겹치지 않기 위해 일찍 시작한 공연임을 알지만, 너무 짧은 공연이었다. 좀만 더, 한 곡만 더 하면 참 좋을텐데... 사실 11시에 시작하는 낙선재 음악회가 아니라면, 후원에 더 있어도 된다. 그러나 단순히 궁궐을 보는 1차원적인 관람이 아닌 공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3차원적인 관람이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낙선재로 향했다. 



원래 이런 나무였는지, 아니면 이런 무늬가 생겼는지 봐도 봐도 모르겠다. 



궐내각사로 들어가면, 나는 혜경궁 홍씨가 된다.


낙선재 음악회는 "역사체험 IF 당신이 혜경궁 홍씨라면?"이라는 주제로 궐내각사에서 시작된다. 헤경궁 홍씨는 영조의 며느리이자, 사도세자의 아내 그리고 정조의 어머니다. 아버지가 아들은 죽인 끔찍한 사건의 현장에 있던 그녀. 우리는 지금부터 혜경궁 홍씨가 되어 역사의 한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어라, 이게 뭐지? 선원전으로 들어 오자마자, 한 편의 역사드라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가운데는 영조, 왼쪽은 호위무사 그리고 오른쪽 저 분은 바로 사도세자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하라고 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원래 선원전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낙선재 음악회를 위해 잠시 우리만을 위한 드라마 촬영장소로 이용하고 있는거 같다. 그런데 드라마인데 주인공 혜경궁 홍씨는 어디있지? 이런 바보, 내가 주인공인데, 영조와 사도세자가 사라지고 호위무사 2명이 우리 앞에 섰다.


"혜경궁 홍씨, 당신은 지금 시아버지를 따라 가겠소, 아니면 남편을 따라 가겠소"라고 물어본다. 글쎄, 아무래도 지아비가 낫겠지. 참고로 사도세자 죽음을 당한 곳은 창경궁 문정전이다.



지아비를 따르는 호위무사를 따라 궐내각사를 지나, 인정전에 왔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또 걷는다.



영조의 호위무사를 따라간 혜경궁 홍씨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남편을 따라가니 계속 걸으라고만 한다. 음악회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면 될줄 알았는데, 낙선재 음악회는 직접 참여해야 한다. 궁궐 탐방도 같이 하면서 말이다.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고, 피리부는 아저씨 따라 가는 아이처럼 나도 호위무사를 따라 계속 걸었다.



다시 만난 지아비. 그런데 그가 슬퍼보인다. 곧 자기가 죽을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말이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만, 만약 사도세자가 죽지 않아다면, 조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조는 성군이 될 수 있었을까? 만약이 없으니, 답도 없겠지.



지아비는 가고, 연주가 시작됐다.



대금독주 "경풍년"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대표적인 예술성악곡인 가곡에 뿌리를 둔 음악으로 가곡반주가 아닌 관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경풍년이라고 한단다.



연주가 끝나고 호위무사가 편지 한통을 준다. 혜경궁 홍씨가 나에게 주는 편지인데,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 혜경궁을 정조의 어머니로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고 다행으로 여깁니다." 개인적으로 혜경궁 홍씨의 인생은 참 슬픈거 같다. 벼슬 없던 아버지를 위해 왕세자가 되었고, 중전이 될줄 알았건만, 남편은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2살 어린 아들. 그 아들이 임금이 되기만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렸을거 같다. "당신은 성군 정조의 어머님입니다"라고 전해드리고 싶다.



후위무사를 따라 낙선재까지 왔다. 



사진을 담지 못했는데, 앉아서 보는 자리가 있다. 강렬한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천막이 되어 있고, 여기에 입구에서 종이모자까지 나눠준다. 공연시작하기 1분전. 낙선재에서는 어떤 공연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사회자로 나온 유은선 국악방송 본부장이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나운서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한중록) 점점 빠져든다.



사이가 좋았던 시절의 영조.



그리고 기분좋은 사도세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위한 축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다.



오늘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아니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위해서다.



다시한번 우리것이 정말 좋은 것이여~



좋았던 시절도 잠시, 그녀의 슬픔이 시작된다고 알려준다.



점점 미쳐가는 사도세자. 실제 연극배우라고 하던데,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왠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두합에서 봤던 춘앵전으로 낙선재 음악회는 끝이 났다.


창덕궁 음악회, 그냥 단순히 궁궐탐방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고 좋았다. 궁궐에서 보는 우리 음악도 좋고, 전문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도 좋고 말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이 문제인거 같다. 좀 더 길었으면, 이동거리보다 공연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주도 티켓신청 전쟁을 해야할거 같다. 그런데 경복궁, 덕수궁, 종묘, 창경궁에도 음악회가 있다고 하니깐, 앞으로 종종 색다른 궁궐 체험을 하러 떠나야겠다.







  1. 내가 갔던 창덕궁 음악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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