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만큼 더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 근현대사기념관
10년 전, 국립 4·19민주묘지에 왔을 때는 없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6년 5월에 개관을 했다. 진작에 알았으면 더 일찍 왔을 텐데, 광복 80주년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 알게 됐다. 많이 늦었지만, 더 뜻깊은 해에 가라는 누군가의 계시라 생각하고, 수유동에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으로 향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왜 강북구 수유동에 있을까? 3·1운동의 발원지인 봉황각과 순국선열들의 모역 그리고 국립4·19민주묘지가 자리 잡고 있는 독립정신과 민주주의 성지라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박물관이 아닌 기념관이라 그런 것일까? 상설과 기획전시실이 있는데 규모가 아담하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었다는 거, 안 비밀이다. 상설전시는 동학농민운동을 시작으로 광복을 지나 4·19혁명까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다. 근본이 쇠하고 흩어지게 되면 국가는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다. 보국안민의 방책을 생각 않고 다만 제 몸만을 생각하여 나라의 돈만 없애는 일이 어찌 옳은 일이랴."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창의문》 1894년
동학농민군은 전국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지만,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동학농민군을 무력으로 진입한 뒤,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고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 등 강제로 체결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욕을 감추지 않았다.

이때, 서구에서는 낯선 나라의 풍경과 그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입체사진이 크게 유행했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은 이색적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문명과 거리가 먼 은둔의 나라로 묘사됐다. 이 사진을 입체경으로 보면 시점 차이로 인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약 3,000,000명이고, 사망자는 약 300,000명에 달한다. 봉기기간은 약 420여 일이었으며, 횟수는 100여 차례라고 한다. 사진 속 인물은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다.


의병전쟁

"대한의 닭이나 개가 될지언정 원수 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의병장 이석용
의병은 곳곳에서 친일파와 일본군을 공격했다.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국권을 빼앗긴 뒤에도 변함이 없었으며, 끈질기게 이어진 국내외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애국계몽운동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지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 홍범식의 유서 중에서
신민회는 국내 최대 항일비밀결사 단체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105인 사건)을 조작해 탄압했다.




3·1운동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조소양 등 14명이 작성한 선언문으로, 주권재민과 민주공화정 수립을 최초로 표방했다. 이 뜻을 같이하면 회신해 달라는 찬동통지서를 함께 배포했다.



봉황각은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가 보국안민과 국권회복을 위해 천도교 지도자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1912년에 설립한 수련장이다. 1919년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민족대표들이 이곳에 모여 3·1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한 역사적 현장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투쟁

"우리는 자유를 찾지 못하면 영구히 멸망될 것을 알았다. 그러면 장를 위하여 몸 바칠 뿐이다. 자유의 값은 오직 피와 눈물이다. 자유는 은혜로써 받을 것이 아니오. 힘으로써 싸워서 취할 것이다. 우리에게 얽매인 쇠줄은 우리의 손으로 끊어버려야 한다. 오라! 온갖 수단과 모든 무기로 싸우자. 완전한 독립과 자유가 올 때까지 싸우자! 싸우는 날에 자유는 온다!" 의열단 「격」 중에서
7가살은 조선 총독과 이하 고관, 일본군 수뇌, 대만총독, 고관·친일파 거물, 밀정, 반민족적 토호, 매국노이며 5파괴는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중요기관 등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관 및 그 관련기관의 시설이다.

독립투쟁

3·1운동 이후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전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대표적인 항일무장투쟁 기지였던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한 수천의 전사들을 비롯한 독립군들은 기피코 조국을 되찾겠다는 신념으로 영웅적인 투쟁을 벌여나갔다. 독립투사들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등에서 빛나는 승리를 쟁취했으며 이후 한국광복군, 조선의용군, 동북항일연군 등의 일원이 되어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맞서 싸워나갔다.

"칼 춤추고 말을 달려 몸을 단련코 새론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내어 새 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떴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광복 해방 그리고 ···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드디어 항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결과이자 불굴의 독립투쟁이 낳은 소중한 결실이었다. 해방 직후부터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는 등 자발적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고 좌우익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이념적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다. 통일국가 수립의 열망이 드높았지만, 한반도에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제 우리 민족은 새 역사의 제 일보를 내딛게 되었다. 우리가 지난날의 아프고 쓰라리던 것은 이 자리에서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하여야 한다." 여운형, 휘문중학교 연설(1945)

"한국이 있고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김구,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1948.2) 중에서


"우리가 일본에서는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더 참혹한 것은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셋이다. 남한은 북한을 소련, 중국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있는 것은 두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노름이었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테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함석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6·25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 사상계 1958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에 맞서 학생과 시민들은 앞장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더 나아가 과거청산, 서민경제 회복, 평화통일 실현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분출시켰다.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의미 깊은 첫걸음이자 기나긴 민주화의 여정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따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 역적들을 성토하지 않는 자 또한 역적이다. (김창숙, 친일단체 일진회의 한일합방 찬성론을 비판하며) 어떻게 끝을 맺을까 고민했는데, 심산 김창숙 선생의 말씀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여기저기에 꽂혔으면 좋겠다.
2015.10.06-국립 4·19 민주묘지 - 학생과 시민들이 이룩한 승리의 역사!!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52)
국립 4·19 민주묘지 - 학생과 시민들이 이룩한 승리의 역사!!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52)
특정 주도세력이 없이 학생과 시민들이 부정선거와 부패한 권력에 대한 자발적으로 봉기한 1960년 4월 19일 저항운동, 바로 4·19혁명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 손으로 만든 승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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