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주방에서 당근을 써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당근이 끝나면 계란을 깨는 소리가 나고, 곧이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당근을 볶는 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손이 많이 가고 귀찮다고 안 해주다더니,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구나!' 일찍 일어났으나, 일부러 그냥 더 누워 있는다. 참기름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고, 칼질 소리가 들려오면, "나와서 먹어라~"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 100번 아니 그 이상은 먹었을 텐데, 먹을 때마다 맛있고,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은 건 그냥 김밥이 아니라 '엄마표 김밥'이다. 내용물을 보면 여느 김밥집에서 파는 야채김밥 느낌인데, 엄마의 사랑이라는 조미료 때문일까? 맛이 완전 다르다.
밖에서는 한 줄만 먹어도 든든한데, 엄마표 김밥은 기본이 3줄이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과 저녁도 또 김밥이다. 늘 엄마는 10줄 정도 넉넉하게 만들어 두기 때문이다. 질리지도 않냐는 엄마의 질문에, "난 죽을 때까지 엄마김밥은 절대 질리지 않아"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그 김밥을 먹을 수 없다.
사진이 있으니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맛은 흉내조차 내지 못할 거다. 난 엄마가 아니니깐.
소울푸드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보름정도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생사가 왔다갔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심각했었다. 퇴원할 무렵, 미음을 지나 일반 죽을 먹어도 되는 상태까지 호전이 됐다. 주치의는 일반식은 아직 무리이니 며칠 더 죽을 먹으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는데, 퇴원하기 전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 해줄까?"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 "엄마김밥 먹고 싶어."
다음날 엄마는 김밥을 만들어야 해서, 병원에는 아부지가 대신 왔다. 엄마표 김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에 아픈지도 몰랐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도 씻지 않고 김밥부터 먹었다. 그때서야 엄마는 퇴원하자마자 김밥을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고, 나는 의사가 죽을 먹으라고 했는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엄마표 김밥의 특징이라면 우엉이 꼭 들어갔고, 단무지 대신 무짠지를 넣었다. 엄마는 인위적인 단맛대신 재료 자체의 단맛을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단무지의 아삭함은 좋은데 단맛은 영 거슬렀나 보다. 단무지 대신 무짠지를 넣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그 이후로 엄마표 김밥에 무짠지는 필수가 됐다.
마지막 엄마표 김밥은 무짠지가 없어 마늘종을 넣었다. 그때가 마늘종이 제철이었으니, 올 5월이었나 보다. 아삭함은 무짠지를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알싸함이 강해서 먹는데 힘들었지만, 통으로 김밥을 먹을 정도로 남김없이 다 먹었다. 왜냐하면, 거의 반년 만에 만들어 준 김밥이었으니깐.
그게 마지막 김밥이 될 줄 몰랐다. 코스트코에서 산 김밥김으로 한봉지만 사용하고, 나머지 4 봉지는 그대로 김치냉장고에 들어있었다. 지난달에 김치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김밥김과 다 먹었다는 무짠지를 찾아내고는 한참 동안 울었다. 재료는 여기 다 있는데, 엄마표 김밥을 만들어준 엄마가 없다.
우리 집은 큰집이 아니라서 제사, 차례를 한번도 지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추석과 설날이 되면, 5시간은 기본으로 전을 부쳐야 했다. 제발 조금씩 하자고 해도,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그게 안된다."
삼우제와 사십구재 그리고 엄마의 첫생신을 차례로 치르고, 이제는 추석이다. 엄마가 없으니 이번에는 전만 부치는데 8시간은 걸리겠구나 했는데, 차례상 표준안에는 전이 들어가지 않는단다. 과일은 생율, 사과, 배, 대추는 전혀 어렵지 않다.
송편은 엄마가 좋아하던 모시송편으로 벌써 준비해 뒀는데, 삼색나물과 산적 그리고 김치는 직접 해야 한다. 5시간 동안 앉아서 전을 부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솔직히 차례상을 차리기 싫다. 멀리 여행을 떠난 엄마가 돌아와서 엄마표 김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10시간이 넘도록 전을 부쳐도 짜증을 내거나 군말하지 않을 텐데, 내 손으로 엄마의 차례상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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