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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면서 드라마라 생각했지 그 일이 나에게 닥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이 됐고, 엄마는 내 곁을 떠나 외할머니의 첫째 딸로 되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꿈처럼 느껴진다. 그날 아침, "혜경아~"라고 불러줬으면, 아니 "엄마"라고 하면서 먼저 다가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 사랑해~ 그리고 안녕~

지난 5일, 아침마다 펼쳐지는 엄마와 아빠의 툭탁거림도 없고, 변함없이 늘 똑같은 엄마의 잔소리도 없던 날이었다. 이렇게나 고요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빠는 아침 뉴스를 보면서 땅콩을 드셨고, 엄마는 가족을 위해 아빠는 싫어하지만 딸내미가 좋아하는 어묵국을 끓이면서 아빠가 좋아하는 겉절이를 만들고 계셨다.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아니 예상할 수도 없던 그날, 평소대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머리를 수건으로 감으면서 욕실을 나와 뒤돌아 서서 음식으로 하고 있는 엄마의 등을 보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가족의 대화는 전혀 없이, 아빠가 틀어놓은 뉴스와 내가 틀어놓은 유튜브만이 그날 아침 소리의 전부였다.

평화롭던 아침 일상이니, 늘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였다. 엄마는 아침 밥을 끝내고 거실에서 아빠와 드시고, 나는 화장을 끝내고 내 방에서 밥을 먹는다. 시간차가 있기에, 엄마는 늘 "혜경아~ 밥 먹어라."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날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가 한술을 뜬 후, 엄마가 "나 왜 이러지." 하면서 소파로 쓰려졌고, 비명인지 숨소리인지 알 수 없는 쇳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처음에는 아침을 하느라 더워서 누워있는 줄 알고 바로 튀어나가지 못했다. 곧 평소와 다름을 직감적으로 알게 됐고,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는 의식이 있는 듯, 없는 듯 쇳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던 아침이 엄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 그 순간에도 몰랐다.

 

엄마는 말이 아닌 딸내미가 좋아하는 어묵탕을 만들어 놓고, 내 곁을 떠났다!

119에 연락을 했고,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했다. 아빠가 동승을 했고, 나는 엄마가 곧 퇴원할 테니 갈아 입을 옷과 속옷 그리고 신발까지 챙겨서 뒤따라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며칠 입원 후 바로 퇴원할 거라고, 울 엄마는 건강체질이고 지병도 따로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병원 응급실에 오니, 아빠와 이미 도착한 오빠가 주치의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같이 듣고 싶은데, 응급실은 인원제한이 있어 들어가지 못한단다. 그래서 닫힌 유리문 사이로 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응급실 간호사가 들어오라고 문을 열려줬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가면서 옷에 신발까지 괜한 짓을 했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안일했던 나의 생각과 달리, 엄마의 병명은 뇌지주막하 출혈이라고 한다. 의사는 피가 많이 나왔고, 위치도 나쁘지만, 터진 혈관부터 잡아야 하기에 코일을 넣는 시술을 하겠단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 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시술이며, 잘못될 경우 뇌를 절개하는 큰 수술로 이어진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어려울 경우 5시간까지 걸릴 수 있다고 했지만,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않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제 남은 건, 뇌에 남아있는 피를 제거하는 일. 시술 전에는 뇌척수액을 통해 제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술 후 찍은 CT에서 피가 더 많이 나와, 뇌를 절개해 관을 넣어야 한단다. 이번에는 수술실에서 진행을 해야 하며, 역시나 전신마취를 해야 한단다.

요즘 의료파업으로 수술실 잡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이것도 운이라고 해야 할까나? 시술에서 수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술 후 주치의는 잘 끝마쳤다고 하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중환자실이니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왔다.

 

차가워진 발과 달리 손은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집으로 가기 전, 중환자실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못 보고 가야 하는데, 제발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맘이 통했는지, 수술까지 다 끝낸 후 새근새근 아기처럼 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허락해 줬다.

살갑지 않고 무뚝뚝하고, 다정함보다는 짜증부터 내는 그런 딸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을 했다.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이제는 엄마의 시간이야. 우릴 버리지 말고, 꼭 이겨내야 해. 엄마 사랑해~"

무의식 중에 손을 움직여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엄마의 손과 발은 장갑(?)으로 감싸 있었다. 그래서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나와서 서운했는데, 그 손을 이렇게나 빨리 잡게 될 줄 몰랐다. 중환자실을 나오면서 간호사에게 물어봤다. 경과가 좋을 때는 전화를 하지 않고, 나쁘면 전화를 하겠죠 하니, 그렇단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11시 17분에 오빠에게 전화가 왔고, 받기도 전에 감이 왔다. "지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위독하대."

10분 후, 아빠와 내가 먼저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아까 전에 분명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엄마의 가슴 부근에 자동 심폐소생기가 올려져 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주치의가 우리를 보고 다가오더니, "11시에 심정지가 왔고 27분이 넘도록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는데 의식은 전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엄마랑 아빠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신청을 했다. 그러니깐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때는 그랬는데, 중환자실에 엄마를 모셔놓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와 오빠 그리고 나는 아니길 바라지만 혹시 그런 일이 생기면 엄마를 더 힘들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을 누가 하느냐? 오빠가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아빠는 충격에 말이 없고, 남은 사람은 나뿐이다. 다시 한번 의학적으로 볼 때 의식이 돌아올 수 있냐고 물었고, 주치의는 어렵다고 한 후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생명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해 주세요."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심폐소생술을 멈췄다. 그렇게 엄마는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엄마가 아닌 첫째 딸로 되돌어갔다.

면회시간 때 잡을 수 없었던 엄마의 손과 발을 내내 쓰다듬으면서,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래는 엄마를 장례식장 안치실에 두고 집으로 온 후, 엄마에게 남긴 첫 번째 글이다. 

 

제발 꿈이었으면…
아니 어제저녁으로 돌아갔으면…
그럼 엄마를 살릴 수 있을 텐데…

아침에 쓰러지고 수술도 잘 됐는데,
결국 버티지 못하셨다. 

오늘 아침에 엄마랑 말도 못 하고,
어제 내방 책상에 놓여있는 쌀과자 하나. 
이거 뭐냐고 물어보고
누가 2개 줬는데 하나 먹고
너 쌀과자 좋아해서 따로 챙겼단다. 
이게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아침에 나 좋아한다고 어묵국을 한가득 끓여놓셨다. 
그리고 밥 먹어라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어지럽다면서 쓰러지셨다.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나가서 
119에 전화했더라면…
아빠가 옆에 있어 안심한 내 잘못이다. 

엄마
엄마
엄마

난 아직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 됐어.
난 엄마가 없으면 안 돼

그동안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을까?
중환자실에 누워 의식도 없는데
그때 처음으로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수백 번 아니 수만 번 더 부를 수 있는데
이제 내 곁에 없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나는 아직 엄마를 보낼 준비를 못했지만…

엄마
엄마
엄마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난 지 딱 일주일이 됐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타임머신이 정말 있다면, 2024년 7월 4일로 돌아가고 싶다. 과거로 갔는데도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7월 5일 아침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꼭 안아줄 거다.

어른들은 잊어야 한다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힌다고 말한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기억과 엄마와의 추억은 서서히 옅어질 거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작동하기 전에, 남겨 놓으려고 한다. 여전히 꿈이었으면 하는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 엄마 권기숙씨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좋아요는 좋지만, 댓글은 닫아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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