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동 사발
국수를 먹을까? 국밥을 먹을까? 뭘 먹든 그건 중요치 않다. 내 눈에는 굴만 보이니깐. 칼칼한 닭개장을 먹으러 갔는데, 굴국밥이 보인다. 제철 굴에 감태까지 메뉴 변경을 아니 할 수 없다.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3단지 1층 상가에 있는 사발이다.
사발과 대접은 주인장이 같다. 대접은 예약을 하고 가야 하지만, 사발은 예약없이 가도 된다. 더불어 늦게 가도 된다. 왜냐하면 브레이크 타임이 없으니깐.
혼밥하기 딱 좋은 늦은 오후다. 혼자일 줄 알았는데, 혼밥러가 또 있다. 혼자서 독차지하는 것도 좋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 덜 외롭다. 이래서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하나보다.
밥과 국수 메뉴가 따로 되어 있다. 사발은 국수도 잘하고, 밥도 잘한다. 능이버섯 닭곰탕을 지난번에 먹었기에, 얼큰한 닭개방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래 감태 굴국밥(14,500원)이 보인다. 굴과 매생이의 조합은 아는데, 굴과 감태라니 매우 몹시 궁금하다. "여기 감태 굴국밥 주세요."
기본 반찬은 언제나 늘 똑같다. 메인에 따라 어울리는 반찬이 달라지는데, 감태 굴국밥과는 뭐가 잘 맞을까? 이건 이따가 확인해보면 된다. 맹물은 아니고 물에서 보리맛이 나기도 하고, 옥수수맛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보리와 옥수수 그리고 둥글레를 넣고 끓인단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굴과 감태는 보이지 않고, 부추만 가득이다. 부추가 몸을 따뜻하게 해주니, 요즘같은 날씨에 딱이다. 부추도 좋긴 하지만,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건 굴이다.
감태대신 미역을 넣었나 했는데, 감태가 있긴 있다. 더불어 굴도 있다. 통영에서 올라온 산지직송 굴이다. 그나저나 김이나 매생이나 미역은 본연의 향을 갖고 있는데, 감태는 양이 적어서 그런가? 아니면 미역이 더 많아서 그런가? 향이 별로 아니 거의 안난다.
가장 아래에 밥이 들어 있고, 국물은 개운한 멸치육수다. 감태에 굴, 미역, 무, 순두부, 부추, 청양고추까지 내용물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감태도 그렇고, 굴도 향이 별로 안난다. 감태 굴국밥인데, 맑은 해물 순두부탕이랄까?
굴을 한입 먹으니, 이제야 굴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국물만 먹으면 깔끔, 개운해서 굴국밥같지 않았는데, 굴이 들어가니 맛이 확 달라진다. 굴국밥이라서 굴이 가득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살짝 아쉽다. 아무래도 굴이 호불호가 있다보니, 양을 조절한 듯 싶다.
굴과 순두부의 조화는 아주 괜찮다. 둘을 같이 먹으니, 굴은 순두부가 되고, 순두부는 굴이 됐다. 저작운동이 필요치 않으니,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배추김치보다는 장아찌가 잘 어울린다. 굴국밥에 부족한 식감과 짠맛을 장아찌가 대신 해줘서 그런가 보다. 워낙 내용물이 다양해서 반찬없이 그냥 국밥만 먹어도 되지만, 굳이 반찬을 올려서 먹고 싶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장아찌다.
감태도 그렇고, 굴도 그렇고, 아무래도 양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향도 맛도 살짝 아쉽다. 감태랑 미역대신 매생이를 넣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역시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감태보다는 미역이 더 많아서, 감태는 먹었는데도 그 맛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김없이 싹 해치웠다.
역시 나의 취향은 감태보다는 매생이다. 굴과 함께 매생이도 제철이니, 매생이 굴국밥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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