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동 사발
안국동에 가면 김밥을 먹고 빵을 먹는다. 밥배와 빵배를 만족시켜주는 곳이 어디 안국동 뿐일까? 내수동에도 있다. 김밥대신 국수 혹은 국밥이지만 2차는 어김없이 빵이다. 순서대로 먹어야 하니, 먼저 사발부터 간다.
사발은 경희궁의아침 3단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되고, 건물 뒤편에도 입구가 있다. 야외 테이블이 있지만, 살짝 쌀쌀했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햇살 좋은 날에 가면 밖에서 당당히 혼밥을 해야겠다.
처음이 좋았기에 자주 가야지 했는데, 어느새 한달이 지났다. 시그니처 닭국수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얼큰한 닭개장국수를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장트러블로 고생 중이라 얼큰, 매콤과 같은 빨간맛은 피해야 한다. 먹었다가는 다음날 화장실 가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들어왔을때는 사람이 많아서 내부 사진을 담기 힘들었는데, 하나둘 빠지더니 어느새 혼자 있는 듯 조용해졌다. 역시 혼밥을 할때는 바쁜 점심시간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새 메뉴판이 달라졌다. 밥따로 국수따로, 국수는 뜨겁게 혹은 차갑게로 잘 정리되어 있다. 사발과 대접은 주인장이 같다. 대접은 한정식과 비슷해서 혼밥이 안될 줄 알았다. 그런데 1인도 가능하단다. 단, 사전예약이 필수라 네00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나에게 대접할 일이 생기면, 대접에서 제대로된 한끼를 먹어봐야겠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사발에서 먹는다. 능이버섯 닭곰탕 흑미국수가 있지만, 급 밥이 먹고파서 능이버섯 닭곰탕(14,500원)을 주문했다.
기본찬은 지난번과 동일하다. 시나몬가루가 들어있는 호박죽은 애피타이저, 배추김치와 락교 그리고 장아찌가 반찬으로 나온다. 주방과 홀 사이에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병원식처럼 반찬에 뚜껑이 덮혀있다. 물은 맹물이 아니라 보리차다.
올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모양새가 참 맘에 든다. 더불어 주인장의 정성도 느껴진다고 할까나? 홍고추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닭곰탕이라고 하면 세련보다는 푸근인데, 사발 닭곰탕은 유행을 선도하는 인싸같다.
닭곰탕은 국수가 아니라서 밥이 따로 나와야 하는데, 없어서 혹시 안줬나 했다. 그런데 국밥처럼 닭곰탕 안에 밥이 들어 있다. 숨어 있어서 몰랐던 거다. 조금이지만 당면도 있고, 닭은 뼈와 껍질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살코기만 들어있다. 더불어 대파, 부추, 계란지단, 팽이버섯 그리고 능이버섯이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맑은 국물에는 후추를 꼭 넣는다. 닭냄새가 강한 건 아니고 그냥 후추를 좋아한다. 후추는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설렁탕이나 곰탕을 먹을때 파국을 만들듯, 닭곰탕은 후추국이다.
송이보다 능이라더니 능이버섯이 이리 좋은지 몰랐다. 능이버섯 닭곰탕이라지만, 전체적으로는 닭향이 강했다. 그런데 능이버섯만 먹으니 씹을수록 진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나도 모르게 스스륵 눈을 감았고, 능이버섯 향을 음미했다. 능이버섯이 처음도 아닌데, 아무래도 좋은 능이를 사용하나보다. 단, 단독으로 먹어야 더 진향 향을 느낄 수 있다.
능이버섯도 충분히 음미했으니, 본격적으로 달려야 한다. 국수는 수저를 다 사용해야 하지만, 닭곰탕은 숟가락만 있으면 된다. 삼계탕이나 백숙만 보양식인 줄 알았는데, 닭곰탕도 그렇다. 요즘 약을 달고 살고 있어서 속이 많이 약해졌는데 뜨끈한 닭육수에 능이버섯이 약해진 속을 달래준다.
지난번 닭국수에는 락교가 좋았는데 이번에는 살짝 애매하다. 그래도 배추김치가 있으니 김치만으로도 충분하다. 반찬을 더해도 되지만, 내용물이 워낙 많아서 그냥 먹을때가 가장 좋다. 건더기가 많긴 하지만, 닭곰탕의 진정한 위너는 국물이다. 국물이 어찌나 깊고 진한지 리필이 된다면 두어번 했을거다.
능이버섯은 일부러 남겨뒀다. 왜냐하면 처음처럼 마지막도 능이버섯 향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어서다. 사실 남김없이 다 먹을 수 있는데, 빵배를 조금 더 남겨둬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남겼다. 입 안 가득 능이버섯 향을 품고 북한산제빵소로 간다. 참, 사발은 브레이크타임이 없다고 하니, 담에는 빵 먹은 다음에 밥 먹으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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