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한옥마을 한바퀴
사비나미술관을 시작으로 진관사, 은평역사한옥박물관까지 잠시 커피 타임을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끼니를 놓쳤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놓치면 안된다. 중요한 것들은 다 본 거 같으니, 밥집 칮기 겸 은평한옥마을 구경에 나섰다.
삭막한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한옥마을에 오니 탁트인 전경이 가장 맘에 든다. 아파트숲에 있다보면, 하늘이 띄엄띄엄 보이는데 여기는 뻥뚫렸다. 급 로또가 사고 싶어졌다. '1등이 되면 여기로 이사를 올 수 있을텐데...' 북촌한옥마을이 전통한복이라면, 은평한옥마을은 생활(개량)한복이다. 왜냐하면 한옥은 맞는데, 전통 한옥의 좋은 점만 살린 현대식 한옥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살짝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익숙해졌다.
"우리 사진관이 꽤 커서, 내가 직접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빌려서 가난한 부부 웨딩사진을 사진값만 받고 찍어줬어. 사진도 하나 없는 게 너무 안타깝잖아. 그리고 그 부부가 또 나중에 아기를 안고 백일사진 돌 사진 찍겠다고 다시 와요. 그러면서 그때 너무 감사하다고 하면, 그냥 기분이 좋았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아래, 너나들이센터가 있다. 관람료가 없다고 해서 안으로 들어왔더니, 센터가 아니라 사진관이다. 그런데 사진관치고는 참 올드하다. 직원에게 여기가 어떤 곳이냐 물어보니, 기증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란다. 어릴적 요런 느낌의 사진관은 동네마다 다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나면 어김없이 사진관으로 달려간다. 지금이야 못나온 사진은 바로바로 삭제하면 되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망작도 고이고이 앨범에 간직했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로 옛추억을 담고 있다.
추억의 사진관 옆에는 추억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흑백사진 속 사람들이 모습은 다 행복해 보인다. 셀피의 달인들이 없던 시절이니,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정면 응시다. 하긴 저때는 사진사가 카메라를 가리키며 여기를 보세요라고 했으니깐. 2층에 가면 무료로 한복체험을 할 수 있다지만, 한복보다는 허기짐 해결이 먼저다.
한옥마을이니, 당연히 한옥과 잘 어울리는 밥집 겸 술집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점심으로 파전에 도토리묵을 먹고, 곁들어 막걸리까지 마실 계획을 했다. 그래서 한옥마을 초입에 있던 카페에는 가지 않고 밥집을 찾아다녔는데 안 보인다. 혹시 처음이라서 못찾은건가 싶어, 센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옥마을에는 밥집이 없단다. 한옥마을을 조성할때부터 불로 조리를 해야 하는 곳은 법적으로 금지를 시켰다고 한다. 이래서 검색했을때 카페만 나왔던 거구나. 옛말에 꿩대신 닭이라고, 밥대신 빵을 먹어야겠다.
한옥마을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나무높이 13~16m, 나무둘레 2.9~3.1m, 120~220년의 수명을 자랑한다. 아름드리 줄기와 시원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푸른 잎들은 묵묵히 마을을 지켜온 무수한 세월들을 느끼게 해준다. 한옥마을을 지나 진관사로 가다보면, 커다랗고 울창한 나무를 만나게 된다. 그 나무가 바로 이 느티나무다.
한옥마을이니 한옥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을 옆 멋을 잔뜩 부린 주택가가 나온다. 그곳 어디쯤에 북한산제빵소가 있다. 엄청 유명한 곳이라는데, 역시 한적한 마을과 달리 여기는 북적북적이다. 3층까지 있는 빵집겸 카페다. 밥집대신 찾았는데, 딱히 끌리는 뻥이 없다. 그리고 규모에 비해 빵이 별로 없다. 찾는 이가 많으니, 나오자마자 사라지는 거 같기도 하고, 핫한 곳이니 빵보다는 자리부터 잡아야겠다.
그나마 밥이 될만한 걸로 골랐다. 늦은 오후라 커피를 마실 수 없어, 음료는 보틀병에 있는 생수로 대체했다. 카페인에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여전히 나약하다. 달걀 사라... 아니 샐러드를 부드러운 빵 속에 넣었다. 마요네즈로 인해 느끼함이 찾아올 수 있는데, 알알이 박힌 통후추가 다 막아낸다. 그렇게 게눈 감추듯 먹고 바로 일어났다. 아무리 혼밥을 잘해도 여기는 혼자 있을만한 곳이 못된다. 왜냐하면 커플지옥이니깐.
멋들어진 외관만큼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미술관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외관과 동일하게 전통 한옥의 좋은 점만 살린 현대식 느낌이다. 지금은 한옥미술관이지만, 초창기때는 모델하우스였다고 한다. 그나저나 미술관에 왔으니 미술품을 관람해야 하는데, 관심은 온통 한옥뿐이다. 아무래도 버킷리스트에 항목을 추가해야 할 듯 싶다. '한옥에서 살아보기'
평면도자회화는 흙판 위에 흙물을 굳히면서 쌓아 올린 후 도자기 형태로 깎아내고, 그 위에 청화 안료로 문양을 그려 넣어 통째로 구워낸 부조라고 한다. 평면과 압체 제작의 중간 방식으로 도자기를 빚는 것이 아니라 회화처럼 무수한 붓질을 거쳐 도자 형태로 재창조했다.
옆집은 셋이서 문학관으로 미술관 옆 문학관이다. 이곳은 이외수, 천상병, 중광 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너나들이센터에 삼각산금암미술관 그리고 셋이서문학관은 모두 관람료가 없다. 다른 한옥들은 개인소유라 집안 구경을 할 수 없을테니, 여기를 이용하면 된다.
더 오래 있고 싶었으나, 달걀버거로 허기만 달랬을뿐,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밥을 먹으려면 아무래도 동네를 벗어나야 할 거 같기에,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버스가 오기 3분전,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런 후, 다시 길을 건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향했다. 마감시간이라 박물관을 통해 삼각산 전망뜰로 갈 수 없지만, 외부 계단을 통해 3층까지 한번에 올라갔다.
청명한 푸른하늘 아래 북한산을 보니, 여기 오기 정말 잘한 거 같다. 구름은 잔잔히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그 아래 삼각산(옛 북한산의 이름)은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마중을 하고 있다. 넋을 놓고 보다가, 깜빡 놓칠뻔 했다.
파노라마, 놓치지 않을 거에요~ 한 폭의 그림일세. 아침에 출발할때는 참 낯선 곳이었는데, 이제는 한시간 넘게 걸리는 머나먼 이웃동네가 됐다. 색색의 가을 옷으로 갈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다시 와야겠다. 같은 곳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사계. 장기프로젝트로 해야겠다. 여름편은 했으니, 가을, 겨울, 봄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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