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역사한옥박물관 3.1혁명과 백초월
진관사에서 태극기가 발견된 장소(칠성각)에 왔는데, 태극기는 없다. 일반인에게 공개를 안하는 건가 했다. 그런데 제74주년 광복절 기념으로 박물관에서 기획전시를 하는데, 거기에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고 진관사에서 만난 스님에서 들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향했다.
성인 기준 1,000원의 관람료가 있지만, 광복절 기념으로 무료 관람이다. 은평역사실과 한옥전시실은 뒷전, 가장 궁금한 진관사 태극기가 전시된 3층 기획전시실로 향했다. 3·1혁명과 백초월 입구에서부터 뭉클, 울컥이다. 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뉴타운 개발과 함께 발굴된 다양한 유물 및 은평의 역사 · 인문과 전통 주거 공간인 한옥 관련 콘텐츠를 보전, 전시, 체험하는 박물관이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 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을 발달시킬 기회가 가로막힌 아픔이 얼마인가. 민족의 존엄함에 상처받은 아픔 또한 얼마이며,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가. 아,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 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면,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모든 인류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가 싸우면 어떤 강한 적도 꺾을 수 있고, 설령 물러난다 해도 이루려 한다면 어떤 뜻도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 뒤에 갖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일본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낡은 생각과 낡은 세력에 사로잡힌 일본 정치인들이 공명심으로 희생시킨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민족이 바라지 않았던 조선과 일본의 강제 병합이 만든 결과를 보라. 일본이 우리를 억누르고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따라 서로 이해가 판가름하는 중심인 사억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더욱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하여 결국 동양 전체를 함께 망하는 비극으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이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이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와 동양에 대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일본에 땅을 빼앗길 것이라는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중요한 부분인 동양 평화를 이룰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이 어찌 사소한 감정의 문제인가!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 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3.1 독립선언서 전문이다.
백용성은 3.1운동의 민족대표이자, 민족의식 계발을 위한 문화활동과 혁신불교 운동에 앞장선 분이다. 백초월은 3.1운동으로 인해 백용성과 한용운이 수감되자, 공백이 된 불교 독립운동을 총괄했다. 단순히 불교와 독립사상을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군자금을 모금하고 불교 청년들을 임시정부 등에 파견했으며, 용산역 만주행 군용열차 대한독립만세 낙서사건 등 적극적이고 투쟁적 성격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한용운은 3.1 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됐지만,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는 비타협과 불복종으로 독립운동을 일관했다.
벽초 홍명희(임꺽정의 저자)가 만해 한용운에게 보낸 편지. "어제 책방을 찾아가 수호전이 있는지 물었더니 소자본 말고는 좋은 책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소자본 1질을 사서 보냅니다. 정신을 수박산채(양산박 산채) 사이에 두고 뭇 수령들과 서로 주선하면서 병든 회포를 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대략 말씀드립니다. 난초 가격은 다른 종이에 적었습니다. 노형께 벽초 올림."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의 음방과 4괘를 먹으로 그려넣은 유일한 태극기로 불굴의 항일정신이 담겼다. 현재의 국기와 비교하면, 감과 리의 위치가 바뀐 형태로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기양식과 동일하다. 당시 진관사에 주석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백초월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후세에 그 뜻을 전하고자 숨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진 속 아래 영상은 일장기에서 태극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런데 뭔가 살짝 이상하다. 방송으로 봤을때 태극기가 꽤 컸던 걸로 기억하는데, 직접 보니 생각보다 작다. 그래도 진품이니깐, 방송은 확대해서 담았나 보다 했다. 그런데 태극기 아래 있는 작은 안내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실수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복제'라 나와 있다. 아무래도 진품은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나보다.
우리는 나라를 되찾으러 진군한다. 한국광복군 결성식 김구 주석, 지청천 총사령관 등. 한장의 사진과 한줄의 문구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네~ 절대 부끄럽게 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은평이란 지역은 조선시대 한양과 개성을 잇는 주요한 길목이자, 한양에서 개성과 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통하는 출발점이었다. 자연히 왕래하는 사람수 또한 많았는데, 조선 후기에는 한성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외곽 지역인 은평에 대거 정착했다고 한다.
투명 유리 속 수많은 구멍(?)은 무덤이다. 한양(서울)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무덤들이 은평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것은? 조선시대에는 한양 도성과 도성 사방 10리, 즉 성저십리에는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도성 밖 10리에 걸쳐있는 금강지역(매장이 금지된 지역) 바로 바깥에 위치한 곳이 한양 도성 서북쪽의 진관내 · 외동이다. 도성에서 비교적 가까울뿐만 아니라, 지형적으로 무악재와 박석고개 등으로 공간이 분리되는 지역이라 집단 매장지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은평 뉴타운 지역에서는 5,000여 기에 이르는 무덤이 개발과 동시에 발굴 조사되었다.
한옥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온돌은 단연코 최고의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밥을 하려면 불이 있어야 하는데, 밥만 하기에는 불이 아까우니 방을 따뜻하게 만든다. 장기프로젝트로 열심히 읽고 있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다.
"백종두(친일파)는 집을 2층으로 짓기로 했다. 그러나 아래층에 한해서 방은 온돌을 놓기로 했다. 다다미방에서 겨울을 날 자산이 없어서 궁리 끝에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일본식 몸뚱이에 창자 일부가 조선식인 그 희한한 집은 군산에서는 물론이고 조선땅 전체에서도 최초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리랑 1권 본뭉 중에서)
3층 기획전시실 옆에는 옥상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옥상, 즉 삼각산 전망뜰은 삼각산(북한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찌보면 박물관 핫플레이스는 바로 여기일 듯 싶다.
바로 파노라마다. 가로 2,000픽셀이라 클릭하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원효봉부터 향로봉까지 사진을 대조해가면서 표시를 했다. 사진 속 서체는 '독립서체 윤동주 별헤는 밤'이다. 멋지게 담긴 했는데, 하늘이 살짝 맘에 안든다. 그런데... (내일을 위한 복선)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 관람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은 휴관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9시부터 18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삼각산 전망뜰은 야외 공간이라서 관람시간이 지나도 구경할 수 있다. 이때는 외부와 연결된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정말 부끄럽게 살면 안되는데, 부끄럼조차 모르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특히 많이 배운 인간일수록 더하다. 소설 아리랑에서 의병에 나선 사람들 중 양반보다는 백성들이 더 많았다고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할 말은 무지 많은데, 입만 아프니 여기까지 해야겠다. 은평구 진관동에 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배도 채울겸 한옥마을 구경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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