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 라꾸긴
한때 출근도장을 찍듯, 거의 매주마다 갔었다. 전메뉴 도장깨기에 도전하려 했지만, 갈때마다 신메뉴가 등장했다. 심야식당같은 분위기에 고독한 미식가가 된 듯, 혼자서 참 많이도 갔다. 혼술의 재미를 알게 해준 곳, 구로동에 있는 라꾸긴이다.
라꾸긴을 미친듯이 좋아했을때는 일주일에 3번이나 간 적이 있다. 착한 가격에 고퀄리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보니, 자주 많이 갔는데 요새 좀 뜸했다. 겨울에 왔고, 봄을 지나 여름에 다시 왔다.
안쪽으로 여럿이 앉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지만,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바테이블에 항상 앉는다. 혼자서 갈때가 많기도 하지만, 둘이 가도 바테이블을 고집한다. 얼마전, 인별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장이 라꾸긴으로 오게 만들었다. 프로그램 이름과 달리 화요일에 하는 수0미식회에 사바산도라는 고등어 샌드위치가 히트를 쳤단다. 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방송에 나온 곳에 갈 맘은 전혀 없다. 그런데 라꾸긴에서 그 사바산도를 개시했단다. 강남은 멀지만, 구로동은 무지 가깝다.
워낙에 혼술을 하러 오는 분들이 많다보니, 못보던 무언가가 생겼다. 영화나 드라마, 뉴스, 예능, 야구 등등을 보면서 한잔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이니 딱히 시선을 둘 곳도 없고, 말할 상대가 없기에, 스마트폰은 친구가 된다. 넵킨 꽂이를 거치대삼아 영상을 봤는데, 진짜 거치대가 생겼다. 별 거 아닐 수 있는데, 주인장의 센스가 돋보인다.
파랑이(진로이즈백)가 있는지 물어봤어야 하는데, 습관이 무섭다더니 늘 마시던 녹색이를 주문했다. 마요네즈+와사비 소스로 무친 해초가 오토시로 나왔는데, 이날은 우엉볶음이 나왔다. 아삭하고 달달하며 짭조름한 맛이 녹색이가 아닌 밥을 부른다.
일본풍 고등어샌드위치인 사바산도다. 돈까스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는 카츠샌드로 여기는 완벽하게 익은 육고기가 들어간다. 하지만 사바산도는 익지 않은 고등어가 들어간다. 시메사바(고등어초회)와 사바보우즈시(고등어봉초밥)은 먹어봤지만, 샌드위치는 처음이다. 밥이 아닌 빵과 함께 먹는 고등어회는 어떤 맛일까? 우선 비주얼은 합격이다.
도톰한 고등어 옆에는 깻잎이 아니라 향이 강한 시소잎이 있고, 얇은 고등어 옆에는 감자사라다가 있다. 고등어회를 먹지 못한다면 시도조차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고등어 냄새를 확 잡는 곳도 있다지만, 라꾸긴은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빵과 시소잎, 감자샐러드로 고등어향을 감춘 거 같지만, 한입 먹으면 그 맛이 확 느껴진다.
높이는 낮지만, 길어서 한입만을 하기에는 살짝 버겁다. 그래서 한번 정도는 끊어 먹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먹느냐에 따라 여운이 달라진다. 두툼한 고등어 부근으로 시작을 했다면, 감자사라다의 고소함이 남게 된다.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 진한 고등어의 향기만이 남게 된다. 만약 둘이 왔다면 인당 한접시씩 먹어야 할텐데, 혼자 왔으니 독차지다. 아껴 먹는다고 했는데 어느새 마지막 한조각이다. 한번 더 먹을까 했다가, 첨 본 메뉴가 있어 참았다.
우니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평범함과 특별함이다. 지극히 평범한 차가운 국수에 우니가 들어가니 스페셜 국수가 됐다. 우니를 이렇게도 먹을 수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꼬들꼬들한 식감이 살아 있는 소면에 맹물인 줄 알았는데 짜지 않고 담백한 가쓰오부시 육수다. 그리고 깻잎 아닌 시소잎 튀김에 고추 아닌 오크라다. 우니가 없었더라면 주문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우니만 쏙 먹어버릴까? 늘 조금씩 나눠 먹었는데, 한꺼번에 먹으면 "이게 바로 성공의 맛이 아닙니까?" 하지만 우니소면이니 면과 함게 먹어야 할 듯 싶어, 또 참았다.
국수만 먹을때는 진짜 평범 그 자체였는데, 우니가 들어가니 풍미가 달라도 완전 다르다. 고,급.지.다.
요 정도쯤은 원샷(?)을 해도 될 듯 싶다. 역시 우니는 우니답게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으면서 목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엄청난 풍미를 안겨준다. 예전에 전복을 통째로 먹어본 적이 있는데, 우니는 언제쯤 통으로 먹어볼까나. 냉소바대신 우니소면을 먹길 정말 잘했다. 한동안 뜸했는데, 다시 바쁘게 들락날락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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