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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철도문화마을(철도관사마을)

여행을 하다보면, 무슨 무슨 마을을 많이 만나게 된다. 대체적으로 벽화마을이 많지만, 이런 마을이 있는 줄 정말 몰랐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는 알았지만, 철도관사마을은 처음이다. 순천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제에 의해서 조성된 마을이 있다. 그당시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국내 유일의 철도관사마을로 역사적인 가치는 살아있다.


구 철도관사마을, 현 철도문화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순천역을 건너야 한다. 왼쪽에 조금 보이는 현수막 근처에 역 뒷편으로 갈 수 있는 고가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서 300여미터쯤 가다보면, 마을이 나온다. 쌀쌀하던 서울과 달리, 순천은 남쪽마을답게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봄이 왔음이 느껴진다. 


철도문화마을의 시작은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철도마을박물관부터...

어린이 열차 도서관에 사진 찍기 좋은 다양한 조형물 등등 아이들이 물론 어른이도 좋아할만한 것들이 많다. 5명 이상 왔거나, 주말이라면 마을해설사와 함께 마을 구경을 할 수 있다는데, 혼자이고 평일이니 해당사항 없음이다. 다행히 박물관에서 안내지도를 받긴 했지만, 그거 만으로는 살짝 버거웠다. 이유는 잠시후에...


매주 월요일 휴관, 평일은 오전 10~오후 5시 / 주말은 오후 4시까지 운영

순천 철도관사마을은 일제인 1936년 순천철도사무소 종사자들의 주거안정과 철도시설 관리의 편리성을 고려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단순하게 주택만 지은 것이 아니라 운동장, 병원, 구락부, 수영장, 목욕탕 등의 복지시설이 함께 조성됐다. 당시에는 고급 주택단지로 기존 시가지와는 별도로 신시가지로, 순천 최초의 근대적 신도시이자 전국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기념 우표가 아니고, 기념 승차권 / 귀요미 캐릭터

철도관사마을에 왔으니, 철도직원으로 변장

그당시에는 등급 기준에 따라 4등 관사에서 8등 관사로 분류되어, 5종류의 등급별 관사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상급관사를 위쪽에, 하급관사는 아래쪽에 있었다고 한다. 중앙에는 구락부, 공중목욕탕, 수영장이 있고, 입구에는 철도병원, 운동장, 합숙소, 기숙사, 배급소 등이 있었다. 총 152세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4등 관사와 공동시설은 철거되어 그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마을의 전체적인 골격이 남아 있고 일부 관사는 건축 당시 외관과 내부 모습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굳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글을 읽지 않아도, 흐릿한 흑백사진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거 같다. 마을이 조성됐을때, 일본사람들 관사라 한국 사람은 전혀 못 들어왔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 그들이 보따리를 싸서 떠난 후에야 한국 철도직원들이 여기 와서 살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철도관사는 서울, 대전, 부산, 영주, 순천 등 5곳이 있었는데, 현재는 유일하게 순천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8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관사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철도 퇴직자 등 철도 가족이 여전히 살고 있다고 한다. 


철도배급소 자리(과거) / 철도마을카페 기적소리(현재)

철도배급소는 철도직원들에게 쌀을 비롯한 식료품, 생활필수품을 배급하던 곳이다. 거주하던 직원들은 자신들이 신청한 배급품을 직접 와서 받아갔으며, 다른 직원에 근무하는 철도 직원들은 필요한 생필품을 신청하면 배달을 했다고 한다. 


여행친구인 너님과 함께, 점심은 여수로 이동해 새조개 샤브샤브(현실은 참돔회)를 먹기로 해서 간단하게 커피만 마셨다. 


즐거운 수다는 여수로 가는 차안에서 더 하기로 하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박물관에서 받은 안내지도와 똑같다. 순서가 표시되어 있으니,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이때만 해도, 마을 한바퀴 무지 쉽구나 했다. 


우선 카페에서 가까운 벽화 조성구간이다. 철도문화마을답게 칙칙폭폭 벽화도 기차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3월 중순이니, 시기상으로 매화라 추측해본다. 그런데 살구꽃이라고 한다. 서울에는 꽃봉오리조차 볼 수 없는데, 역시 남쪽마을에 오니 봄꽃이 어예쁘게 피었다. 벽화에도 꽃이 있지만, 그림보다는 실물이 훨 낫다.


흑백사진이 주는 뭉클함이 있다. 박물관에서도 살짝 울컥했는데, 또한번 울컥 중이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서 강이 되듯,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가 모여 우리의 역사가 됐다.  


예나지금이나 철길 포즈는 역시

잠시 쉬웠다 가세요.jpg

차라리 주말에 올 걸, 엄청 후회했다. 왜냐하면 안내지도에는 상세하기 잘 나와 있는데, 막상 근처에 가면 여기가 거기가 맞는지 알 방법이 없다. 문패 근처에 여기는 0등 관사나 수영장 자리 등 표시가 되어 있는줄 알았는데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표시가 되어 있다면 살고 있는 분들에게 피해가 될 거 같다. 시도때도 없이 와서, 여기가 거기구나 하면서 웅성웅성에 사진을 찍거나, 혹시나 안으로 들어가는 일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그래도 표시가 되어 있으면 불편할 거 같다. 


건축 당시 외관과 내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집을 찾고 싶었는데, 죄다 리모델링 된 집만 보였다. 0동, 0동 관사를 찾아다니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처음 온 사람도 딱봐도 알 거 같은 큼직한 집(건물)을 찾아나섰다.


서울은 이제 노란 개나리가 필 타이밍인데, 순천은 벌써 만개했다.

구락부이자 철도회관이 있던 곳이다. "1947년도 25호 관사로 왔지. 25호 관사 옆에 철도구락부가 있었어. 그 안에서 연극도 하고 그때 슬픈 영화가 들어왔어. 그거 보고 눈물 흘리고 그랬어. 영화도 틀어주고 연극도 하고 그랬어."(출처- 마을안내지도에서) 


이곳이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마을이란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골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둑판처럼 인정미 없게 딱딱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목포 구도심(목포근대역사관으로 가는 길)에 갔을때,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수정아파트이지만, 4등 관사가 있던 자리로 당시 순천철도사무소 소장 주택이라고 한다. 600평 규모로 2층 건물에 정원과 연못 등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철도국장(소장) 관사로 사용되다가 철거되어 아파트로 신축되었다. 역시 높은분이 살던 곳답게 마을에서 가장 위쪽에 위치해있다. 


4등 관사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좁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안으로 쭉 들어가니, 기관차 승무원들 중 독신자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승무원 기숙사다. 1합숙으로 불리던 곳으로 결혼한 직원들은 관사에서, 독신자들을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젤 처음에 왔던 철도마을박물관 옆에 있던 곳인데, 지도 보는 눈이 없어 가장 마지막에 왔다. 사실 놓칠뻔 했는데, 박물관 직원분이 알려줬다. 벽면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사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합숙으로 부르던 승무원 합숙소다. 기관차 소속 직원들만 거주한 곳으로 해방이후 6.25전후까지 있다가 철거됐다. 1977년 재건축되어 열차 승무원들의 합숙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긴 했으나 여기까지다. 피해를 주면 안되니, 입구 근처에서 건물 사진만 찍고 서둘러 나왔다. 


마을 근처에 아름다운 숲길 10선에 오른 죽도봉 숲길이 있고,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 못보고 왔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다. 예전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철도관사마을이 어떤 곳인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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