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드라마 주몽 마지막회에서 소서노가 아들과 함께 주몽을 떠나는 장면에서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라는 나라를 세웠고, 소서노의 아들인 온조는 백제 첫 임금이 되었다고 했다. 주몽과 헤어져 이들이 간 곳은 한성 지금의 서울이다.
그리고 이들이 세운 나라는 백제다. 백제의 첫 수도이자, 백제 역사의 73%를 차지하는 한성기가 바로 여기 서울이다. 그렇다. 서울은 조선의 수도 한양이기 이전에 백제의 수도 한성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 시리즈에 이은 백제시대 역사탐방, 그 시작은 방이동 백제고분군이다
공주(웅진)나 부여(사비)에 비해서 서울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고분군, 방이동고분군으로 백제에 대한 유적이 그리 많지 않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을 점령했다고 배웠지만, 도읍으로 정한 나라는 백제뿐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게 되면서,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백제에 대한 모든 것들을 없애버렸을거 같다. 그래서 남은 건 무덤과 도읍이었던 성터뿐이겠지.
방이동 백제고분군을 가기위해서는 지하철 5호선 방이역에서 내려 길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출구에서 나오면 잘 닦여진 인도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살짝 보니 나무만 많고 길도 험한데 왜 저곳을 갈까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나 멋진 플라타너스 길을 두고 다른 길로 갈 수 있겠는가 싶었다.
한 화면에 담을 수 없을만큼 너무 높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아닐 수도 있기에, 그저 높고 높은 나무라고 해야겠다. 화사한 봄과 함께 푸르른 봄이 왔다.
나무길은 여기서 끝이 난다. 사람들이 이 좁은 길로 가는 이유를 걸어보니 알겠다. 생각보다 짧은 길에 살짝 서운했지만,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과 함께 싱그러운 봄내음을 맡을 수 있어 참 좋았다.
나무 길이 끝날때 쯤에는 진달래는 아니고 철쭉 길이 시작되었다.
중간 중간 이정표가 나와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10여분 정도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솔직히 이런 곳에 고분이 있을까 싶을만큼 계속 아파트, 빌딩만 나오더니 순간 높은 건물이 없는 푸르름을 가득한 공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저기가 아닐까 했는데, 역시 맞다. 바로 여기가 백제시대 무덤인 방이동 벡제고분군이다. 개방시간은 오전 6시에서 오후 8시이며, 입장료는 따로 없으니 그냥 들어가면 된다.
『방이동 백제고분군은 서울특별시 방이동 일대에 있는 백제 전기의 무덤이다. 분구의 형태는 모두 원형이며 내부 구조는 수혈식 석곽과 횡혈식 석실의 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이동 백제고분군은 서기 475년 백제 중기의 도읍지인 웅진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축조된 백제 전기의 고분군으로 보고 있다. 제2호분과 제3호분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고분이나 분구 정상부에 노출된 천장부 뚜껑 돌에 의하여 제1호분과 동일한 구조의 석실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횡혈식 석실분인 제1호분이 백제 중기의 도읍지였던 공주의 송산리 제5호분과 그 구조 형식이 흡사하여 방이동 백제고분군의 구조 형식이 공주 고분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일본 북구주 지방에 나타나는 횡혈식 석실분도 방이동 지구의 고분 구조와 유사하다. 방이동 지구의 고분 구조가 일본으로 전하여졌음을 강하게 시사해주는 흔적이다. 다만 제6호분에서 출토된 소형 고배는 대족에 3개의 사각형으로 뚫린 구멍이 있는 신라 후기식이다.
이처럼 서울 지구가 6세기 중엽부터 신라 영토로 된 사실을 감안하면 신라인 또는 신라 때 고분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서울 지구 석실분들의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 visit seoul)』
10호분이라고 하지만, 총 8개 무덤이 있다는 말이군.
푸르른 봄에 어울리는 파란 하늘이다. 흐릿하늘만 보여주더니, 드디어 파란하늘이 나오셨다. 백제시대 조상님들이 도와주셔서 그런가?^^;
제 1호분이 있는 곳으로 가자.
제1, 제2, 제3호분이다.
그리고 제 6호분이다.
한 화면에 다 담을 수 없어 파노라마로 담았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멀리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다.
제 1호분. 고분들은 사방의 벽을 돌로 쌓아 올린 뒤 한쪽에 널길을 내고 흙을 덮는 굴식돌방 무덤이란다.
『제1호분은 남북 장축의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이며 봉분의 크기는 지름 12m, 높이 2.2m이다. 돌방은 길이 3.1m, 너비 2.5m, 높이 2.1m이며 바닥에는 시상대가 마련되어 있다. 1973년 주민에 의해 토기 3점이 신고된 바 있다.(출처 - 다음백과사전)』
남은 무덤은 길따라 걸어가면 바로 나온다.
지난번에 노란 민들레 꽃을 봤는데, 어느새 홀씨가 되었구나.
일반 백성의 무덤은 아닐테고, 귀족이나 왕족들의 무덤이었겠지. 무령왕릉처럼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무덤까지 있는걸로 봐서는 엄청난 인물이었겠지.
앞에는 8호분, 뒤에는 7호분이다. 순서가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유적지 앞에서 야릇한 상상을 하지 마시길. 혹시 나만 그런 상상을 하고 있나?! 그만~~)
마지막 10호분을 찾아서~
철쭉이 맞겠지. 그냥 갈 수 없어, 파노라마로 또 담아봤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제 2 롯데월드 타워가 엄청 나긴 하나보다. 잠실에 있는 건물이 방이동에서도 보이니 말이다. 별탈없이 멋진 건물이 됐으면 좋겠다. 제발~~~
왼쪽부터 제8, 제7, 제9, 제10호분이다.
진짜 반갑다. 파란 하늘아~
방이동 백제고분군은 유적지이지만, 공원같은 곳이다. 초여름 같은 날이었는데, 이 곳에 있으니 자연이 만들어준 그늘과 함께 불어오는 봄바람이 왜이리고 맛나게 느껴지던지, 솔솔솔~ 낮잠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여기가 나들이의 최종지였다면 진짜 자고 갔을텐데, 시작점이기에 거센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직은 걸어도 좋은 봄이니깐 말이다.
독특한 소나무도 지나가고,
이 곳이 백제 시대 첫 도읍지었다는 사실이 솔직히 실감나지 않았지만, 서울 = 한양 = 조선은 버리기로 했다. 조선이 생기기 전에 백제가 있었고, 그리고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가 있었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우리의 엄청난 역사를 다시한번 가슴에 깊이 새겼다. 아픈 역사도 있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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