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혼자 식당에서 밥 하나 못 먹는 내가, 드디어 용기를 냈다. 굶고 살 수는 없고, 칼로리가 엄청난 패스트푸드만을 고집할 수 없기에, 이제는 남의 시선 따위는 날려버리고 당당히 먹어보기로 말이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혼자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는데 한참 걸렸다. 신도림역 근처에 있는 디큐브시티 백화점 지하2층 푸드코트를 시작으로 스캔에 들어갔다. 자주 가던 김밥의 진수(링크)가 먼저 보였다. '또 여기, 아니다. 딴데로 가자.' 그리하여 한바퀴, 두바퀴를 돌아다녀도 딱히 혼자 먹을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푸드코트라 너무 오픈되어 있는거 같아, 5층에 있는 식당가로 장소를 옮겼다. '여기도 없다면, 그냥 햄버거나 먹을까?"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때, 그때...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면채반!! 사람도 별로 없고, 혼자 먹는 이도 있기에 그래 여기다 싶어 들어갔다. 만약 혼자 드시고 있던 그 분이 없었다면 아마도 햄버거를 먹었을거 같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분에게 감사를...^^;

 

 

체인점인 듯한데, 전혀 모르는 곳이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식당 앞에 보이는 앙증맞은 개집과 장독대가 어릴적 추억의 흔적인 듯 싶어 웃으면서 들어갔다. '개 인형이겠지. 그런데 개조심이라니깐, 큰 소리를 내면 안되겠네.'

 

 

들어가자마자 정성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면채반이라는 이름답게 면이 메인인거 같은데, 저 단어를 보니 간단한 면이라도 정성을 다해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두 분은 참 행복해 보이네. 아냐, 혼자도 행복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뭐 이딴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보이는 주방의 모습. 반 오픈 주방이라고 해야 하나?

 

 

가정식 전문점이라고 하더니, 내부도 가정집처럼 꾸며 놓은 거 같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어릴 적 생각도 나고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닌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길다란 메뉴판의 앞면은 식재료의 원산지가 표시되어 있다. 국내산보다는 수입산이 훨씬 많다. 그런데 국내산인 배추와 중국산인 고추가루가 만나서 김치가 되면 국내산이라고 해야하나? 수입산이라고 해야 하나? 더구나 김치는 배추와 고추가루외 다른 재료들도 많이 들어가는데, 왜 2개만 표시를 하는지 모르겠다. 음식 하나에 이렇게 다양한 나라의 식재료가 들어가는구나.

 

 

면채반의 메뉴들은 뒷면에 나와 있다. 이름답게 면이 메인이다. 가격은 4,000원에서 12,000원사이로 적당하다고 해야 하나? 왼쪽에 앉은 어떤 분은 갈비탕을, 오른쪽에 앉은 또 따른 분은 칼국수를 드시고 있는데, 난 뭐 먹지? 냉면이 먹고 싶은데 추울거 같고, 갈비탕은 너무 과할거 같고, 칼국수는 딱히 땡기지 않으니, 그냥 뜨끈한 국물이 있는 "정성 떡만두국"으로 결정했다.

 

 

주문과 동시에 계란 2개와 육수가 담긴 컵이 나왔다. 어라, 순두부찌개도 아닌데, 왠 날계란? 이라고 생각했는데, 삶은 계란이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다고 하니,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 싶어, 달걀부터 먹기로 했다. 옆에 나온 따뜻한 육수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여기, 삶은 달걀 괜찮네 하면서 말이다.

 

 

달걀을 먹으면서 냅킨 통에 나와 있는 안내문을 봤다. 우선 냉면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더 맛나게 먹는 방법에 대한 안내문이다. 아래 흐릿하게 보이는 팁에서 2번째 문구, <밥과 육수는 고객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제공해 드립니다.> 즉, 밥과 육수는 무한리필이 된다는 소리다.

 

 

뒷면은 면채반의 다른 음식들을 더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문이다. 내가 주문한 떡만두국은 만두를 꼭 터트려서 먹으라고 하네. 그냥 먹으면 안되나. 꼭 이렇게 해야 하나 하고 혼자서 딴짓을 걸고 있을때...

 

 

주문한 떡만두국이 나왔다. 왜 삶은 계란을 줬는지 알 거 같다. 진짜 생각보다 음식이 나오는데 오래 걸렸다. 정성이란 두 글자가 그냥 인테리어가 아님을 알려주는 거 같은데 아직 먹지 않았으니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지. 우선 김가루, 파, 당근, 둥둥 떠있는 저녀석은 참기름이겠지. 그리고 만두가 보이는데 떡은 안보이네.

 

 

떡만두국과 함께 나온 백김치와 겉절이 김치. 취향에 따라 먹으면 되겠다. 카운터에 유아용 의자가 있더니, 아기들을 위해서 백김치가 나오는거 같다. 마늘 향이 강하지 않고, 고추가루가 있지만 맵지 않은 겉절이에, 백김치는 상큼하지 않지만 달지 않아 아이들이 좋아할 거 같다. 

 

 

본격적으로 떡만두국을 먹어야 하는데, 너무 뜨겁다. 앞접시가 있어 덜어 먹으면 되지만, 그래도 너무 뜨껍다. 그래서 식힐겸 사진찍기 놀이를 시작했다.

 

 

앞 접시에 만두를 덜어내니, 생각보다 크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사이즈의 왕만두다.

 

 

반으로 잘라보니, 만두소는 고기랑, 두부랑, 파, 숙주 등 채소가 들어가 있는거 같다. 얇은 만두피에 속이 꽉 찬 만두다.

 

 

더 맛있게 먹으려면 만두를 터트리라고 했으니, 앞접시에 분해했던 만두를 다시 넣었다. 3개의 만두를 젓가락과 숟가락을 이용해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풀어지지 않는다. 만두 속이 너무 많아서, 만두를 만들어 놓은지 오래 되어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터트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분해를 하고 나니, 만두피는 수제비처럼, 만두소는 완자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떡국과 함께 다 잠수해 버렸다. 자, 드디어 더 맛나게 먹기 위한 작업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먹어봐야겠지. 그런데 맑았던 국물은 만두 속이 터지면서 살짝 탁한 국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왔을때 심심했던 국물 맛이 작업이 끝난 후 먹어보니, 간도 딱 맞고 좋아졌다. 이래서 터트리라고 했구나.

 

 

뜨거우니 앞접시에 먹을만큼 덜었다. 절대 먹다가 찍은게 아니다. 국물만 2번 먹어보고, 아직까지 먹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겉절이와 함께 우선 한입.

 

 

백김치와 함께 두입. 허걱~~ 뜨겁다고 너무 시간을 끌었나 보다. 적당할 정도의 뜨끈함을 원했는데, 앞접시에 덜지 않고 호로록할 수 있을 만큼 식어버렸다. 앞접시에 담아서 호호 불면서 여성스럽게 먹겠다던 내 예상은 호로록 호로록 앞접시 따윈 날려버리고 호로록 호로록거리면서 먹었다. 내용물에 비해 국물이 많아서, 가라앉은 만두와 떡을 찾아 다니면서 먹다보니 너무 많이 먹어 버렸다. 원래 계획은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식어버린 국물이 아쉬었고, 불러오는 배가 야속했다.

 

 

패스트푸드가 아닌 든든한 한끼를 혼자서 해결하다니, 잘했어라고 스스로 칭찬하면서 일어났더니, 글쎄 면채반의 대표 음식은 떡만두국이 아니라 냉면이란다. 왜 들어 왔을때 못 봤을까? 어쩐지 그래서 첫번째 메뉴로 냉면이 나와 있었던 거구나. 혼자서 당당하게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했다. 계산하면서 직원에게 "여긴 냉면이 메인인가 봐요?"라고 물어봤더니, "네. 맞아요"라고 대답을 해줬다. 둘이서 왔다면 "저 여기 처음 왔는데, 뭐가 맛있나요?"라고 물어봤을텐데, 끝내 혼자 왔다는 티는 내고 나왔다. 살짝 민망함에 "냉면 먹으러 또 올게요"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혼자 영화보기는 참 잘하는 나, 혼자 여행하기도 가끔 하는 나, 앞으로는 혼자서 밥도 잘 먹는 1인이 되야겠다. 면채반을 시작으로 다음번에는 패밀리레스토랑에 도전할까나? 아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갔으면서, 요거 하나 성공했다고 날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니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