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길상사 꽃무릇
2015년 가을부터 2023년 가을까지 8번의 가을을 길상사에서 보냈다. 한 두 해 빠진 적이 있다는 거, 안 비밀이다. 그런데 올해로 발걸음을 거둘까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객이 많으면 꽃무릇은 자취를 감춘다. 안녕~ 길상사 꽃무릇!
봄의 시작은 봉은사 홍매화라면, 가을의 시작은 길상사 꽃무릇이다. 2015년 추석을 앞둔 어느날,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꽃무릇에 푹 빠질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했기에 그냥 덤덤했다.
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녀석(?)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꽃무릇을 만나러 갔다. 몇 번 결석을 한 적도 있지만, 그때는 분당 중앙공원이나 영광 불갑사로 장소를 옮겼다. 그래도 꽃무릇하면 길상사였는데, 2023년을 끝으로 안녕을 해야겠다.
같은 곳인데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조금은 알 듯 싶다. 2015년에는 아는 사람만 왔다면, 해가 거듭될수록 객이 많아졌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짐작인데 '꽃무릇 명소 길상사'를 버리고 싶은 듯 싶다(여기서 주어는 생략). 이날도 한성대입구역 근처 마을버스 정류장에 엄청난 인파가 있었고, 모두 다 같은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에서 전부 내렸다.
길상사에는 두 곳의 꽃무릇 포인트가 있는데, 첫 번째가 입구 근처 대웅전으로 가는 계단 주변이다. 일찍 와서? 늦게 와서? 아니다. 꽃무릇 자체가 별로 없다.
없는 공간에서 촉촉하게 수분 충전은 한 꽃무릇을 발견했다. 역시나 줌으로 당겨서 담아본다. 이슬을 머금고 있으니 더 매혹적이다. 이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꽃무릇은 꽃이 진 후에 잎이 돋아나서 상사화라고도 부른다. 둘은 만날 수 없기에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길상사 극락전이다. 사실,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고즈넉한 전경을 담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의자까지 준비하는 열정은 없지만, 기다림(식당이나 빵집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건 예외)은 은근 잘한다.
전날 비가 와서 더 좋을 줄 알았는데, 지난 여름 너무 더웠기 때문일까? 촉촉은 커녕 말라버린 녀석(?)들이 많다. 그리고 대환장 파티랄까, 어지럽다.
한라돌쩌귀는 주로 산속의 계곡 주변이나 낙엽수립 아래 등과 같이 습기가 있는 곳에서 덩굴식물처럼 비스듬히 자란다. 잎은 세갈래로 갈라지고 꽃은 진한 자주색을 띠며 줄기 끝에 모여 핀다.
길상사는 도심에 있는 사찰이지만, 깊은 산속이라 해도 될 정도로 외지다. 요정 대원각은 알았는데, 그 전에 친일파 백인기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포인트는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진영각으로 올라가는 부근이다. 어쩜 이렇게 다를까? 사실 작년에 왔을때 이상함을 감지해는데, 올해와서 보니 확실해졌다. 더이상 관리를 하지 않기로 했나 보다. 꽃무릇은 가고, 잡초만이 무성하다.
마지막 사진은 2020년 길상사이다. 다른 꽃과 달리 꽃무릇이 있어야 할 곳은 사찰이라 생각해서, 길상사를 더 찾았는지 모르겠다. 가을의 시작을 너와 함께 해서 좋았는데, 이제는 놓아줄게~
그나저나, 내년 가을의 시작은 어디서 해야하나? 전남 영광에 있는 불갑산으로 가야 하나? 남산에도 꽃무릇이 있다던데...
2015.09.23 - 길상사 - 서울에서 만난 꽃무릇!!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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