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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동쪽에 위치한 낙선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가 머문 곳으로 유명합니다. 영친왕과 정략결혼한 이방자 여사는 광복 후 왕족의 재산 몰수로 인해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1963년 뇌혈전증으로 실어증에 걸린 영친왕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낙선재에서 머물렀습니다. 영친왕이 승하한 후, 그 뜻을 이어 영친왕 기념사업회, 정신박약아 교육시설인 자혜학교, 명혜학교 등을 설립해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궁궐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사대부의 주택형식을 갖추고 있는 곳, 바로 낙선재입니다. (사진은 소니 nex-3n으로 촬영했습니다.)

 

 

사대부집의 99칸 한옥을 연상하게 하는 낙선재입니다. 궁궐 안에 이런 곳이 있다니, 새삼 놀랍네요. 원래 낙선재는 조선 제24대 임금인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1847년 건립됐으며, 2012년에 보물(제1764호)로 지정됐습니다. 헌종 13년(1847)에 왕이 왕비와 대왕대비를 위해 마련한 이곳은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갑신정변(1884년)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사용했고, 이후 조선왕조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1966년부터 1989년까지는 이방자 여사가 마지막으로 기거했다고 합니다.

 

 

좌측에는 낙선재가 위치하고 있고, 우측으로 헌종의 후궁 경빈 김 씨의 처소인 석복헌(錫福軒)과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처소인 수강재(壽康齋)가 이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낙선재라고 알려져 있지만, 석복헌과 수강재가 함께 있는 셈이지요. 작은 규모는 절대 아닙니다. 들어가면 또 다른 입구가 나오고, 또 들어가면 또 다른 입구가 나오는 구중궁궐스런 규모입니다.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지어진 낙선재는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문양의 창호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건축 장인들의 기량을 엿볼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하네요. 더불어 조선왕가의 실제 침전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건물입니다. 왕과 왕비는 다주택 보유자군요. 이 시대나 지금이나 부 = 권력인가 봅니다. 궁궐로는 만족하지 못했나 봅니다. 굳이 궁궐 내 사대부식 집을 짓어야 했는지 말이죠.

 

 

낙선재도 후원이 있네요. 예쁜 꽃과 화초들 그리고 괴석과 굴뚝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후원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계단식으로 한 듯 싶어요. 아마 왕비들은 직접 후원에 나가기도 하겠지만, 방에 앉아 문 열어 놓고 풍경을 관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 주면서 가꾸는건 후궁들이 했겠죠. 

 

 

낙선재를 나오니, 한이 서린 나무 한그루가 보이네요. 청명한 하늘인데, 저 나무는 왜이리 슬퍼 보이는지. 그리고 굳게 닫힌 저 문을 열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낙선재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 문, 혹시 창경궁으로 갈 수 있는 문이 아닐까요?

 

 

이렇게 보면, 여기가 궁궐인지 민속촌인지 알 수 없겠죠. 여긴 창덕궁 내에 있는 낙선재랍니다.

 

 

낙선재를 나오면서 보니, 저 멀리 또 다른 건물이 보이네요. 출입금지 구역이라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그 굳게 닫힌 문을 열었을때 나오는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덕궁은 궁궐을 다 볼 수 있지는 않아요. 가다보면 출입금지가 왜이리 많은지, 특히 다음번에 포스팅할 창뎍궁 후원은 출입금지 구역이 무척 많았습니다. 이렇게 다음편으로 연결하는 센스!!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9 예고 - 창덕궁 후원 - 시크릿 가든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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