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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경복궁을 시작으로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그리고 덕수궁까지, 5대 궁궐 나들이의 마지막이 드디어 왔네요. 정동길,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돌담길까지 주변만 많이 다니고, 막상 덕수궁 내부는 별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대한문만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서 그런가 봐요. 여름이 오기 전 아직은 햇살이 따뜻할 무렵, 경희궁 보다는 볼거리가 많지만 궁궐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그 곳, 바로 덕수궁입니다. (사진은 소니 nex-3n으로 촬영했습니다.)

 

 

가는 방법 - 덕수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교통편이 참 좋습니다. 시청역에서 을지로입구역에서 무난히 걸어 올 수 있는 거리죠. 더불어 광화문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니, 주말 나들이로 제격입니다. 더불어 경희궁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에 있으니, 두 곳을 한번에 보셔도 무난합니다.

 

 

덕수궁덕수궁 배치도 (출처 - 한국브리태니커회사)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정국으로 원래는 조선왕조 9대 왕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하였던 선조가 환도하여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다가 광해군 때 정식으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하네요. 광해군이 창덕궁을 재건하여 정궁으로 삼은 후 이곳은 별궁으로 사용되다가, 그 뒤로 고종황제가 러시아공관에서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 궁은 비로소 궁궐다운 건물들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4년의 큰 불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지자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들이 지어지면서, 원래 궁궐 공간의 조화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정문이 바뀐 것으로 원래는 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습니다.

 

대한제국의 궁궐인 덕수궁은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하고 있기에, 고종황제는 국제열강의 세력균형을 이용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머물렀다고 합니다. 1907년 고종황제는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하는 수모를 겪는데, 이때 그가 거처하던 궁도 ‘상왕이 덕을 누리며 오래 사시라’는, 퇴위의 의미가 담긴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가장 번성했던 1900년 초에는 궁의 영역이 서쪽 경희궁과 구름다리로 연결될 정도로 확대되었으나 고종황제 승하 후, 나라의 주권을 잃게 되면서 덕수궁도 그 위상을 잃고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1933년에는 대부분의 전각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은 원래 궁역의 30퍼센트 정도이며 전통건물 외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건물 내부에 서양식 장식들이 혼재되어 있어 격변기 혼란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덕수궁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입니다. 원래 이름은 대안문이었으나, 덕수궁 화재후 1906년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문은 우리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죠.

왜 덕수궁의 정문만 대안문(대한문)일까?

대개 궁궐의 정문 이름에는 ‘백성을 교화시킨다’는 의미로 ‘화(化)’ 자를 넣었다.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은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은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은 흥화문(興化門) 등의 이름이 그렇다. 덕수궁 역시 본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仁化門)이었다. 하지만 동쪽으로 큰 도로가 건설되고 환구단이 건립되면서 자연스럽게 동쪽문인 대안문이 정문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68년 확장된 도로 가운데에서 섬처럼 떨어져 있다가 1971년 원래 자리에서 33m 뒤로 밀려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렇군요. 원래 궁궐의 정문 이름에 모두 화(化)를 넣었군요. 입장료는 어른은 1,000원입니다. 이번에도 궁궐 통합 관람권이 있어 바로 입장했습니다. 시간대를 잘 맞춰 가면,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 3번(아침 11시, 오후 2시, 오후3시 30분)이라고 하네요. 월요일은 휴관이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매번 하기 전에 가거나, 끝나고 가게 되어 제대로 본 적이 없네요.

 

 

덕수궁

자~ 조선 후기로 시간 탐험을 시작해볼까요. 다리를 건너면...

 

 

덕수궁

여느 공원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여긴 공원이 아니라 궁궐이에요. 주말이어서 가족, 연인들이 참 많네요. 혼자 온 사람은 별로 없는거 같아요. 혼자이지만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난 혼자가 좋아'하면서 말이죠. 근데 솔직히 혼자보다는 둘이 좋긴 해요.

 

 

덕수궁

중화문은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현재는 주위 행랑이 모두 없어져 문만 외롭게 서 있습니다. 원래는 좌우로 행각이 있었고 회랑이 동서와 남북으로 연결되어 중화전 마당을 감싸며 황궁 정전의 입구다운 위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제때문이겠죠.

 

 

덕수궁

중화전은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임금님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입니다. 광무 6년(1902)에 지었으나 1904년 불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은 1906년에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덕수궁

중화전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답도에는 용이 새겨져 있고 계단 소맷돌에는 해치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덕수궁

중화전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입니다. 밖으로 뻗쳐 나온 공포 부재의 형태가 가늘고 약해 보이며 곡선이 큰데 이것은 조선 후기 수법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네요. 안쪽에는 임금님이 앉는 자리를 더욱 위엄있게 꾸미기 위해 화려한 닫집을 달아 놓았다고 하네요.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볼 수는 있지만, 촬영금지입니다. 눈으로만 보고 나오세요.

 

 

덕수궁

광명문은 중화전 동쪽에 위치한 함녕전의 정문으로, 1938년 현재의 위치인 중화문 남서쪽으로 옮겨놓고 안에 흥천사 범종(중앙), 자격루(오른쪽), 신기전기화차(왼쪽)를 전시한 이래 문의 기능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흥천사 범종 : 세조 8년(1462)에 흥천사에 만들어 걸은 종이다. 흥천사는 태조가 후비 신덕왕후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절로 중종 5년(1510) 화재로 절이 소실되자 이 종을 영조 23년(1747)에 경복궁 광화문으로 옮겼다. 그리고 경술국치 후 일제가 창경궁으로, 다시 덕수궁 현 위치로 종을 옮겼다.

자격루의 일부 : 중종 31년(1536)에 만든 물시계 자격루의 일부다. 자격루는 세종 16년(1434) 장영실이 만들었다. 물그릇과 물받이에 물이 차 오르면 안에 있는 쇠구슬이 구르고 여러 단계를 거쳐 인형이 북, 종, 징을 울리는 정교한 시계장치였다. 주요 장치는 소실되고 물그릇과 물받이만이 전시돼 있다.

신기전기화차 : 신기전은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로켓화살, ‘주화’를 세종 30년(1448) 개량한 것으로 화살에 원통형의 화약통을 달아 발사하는 병기다. 신기전기화차는 이 신기전을 100발 연속 발사하는 이동식 발사대다 신기전은 제작 당시의 설계도가 남아 있는 무기들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우리 과학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현재 광명문에는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덕수궁

덕수궁 내에 있는 국립현대 미술관 덕수궁관입니다. 이 곳은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체계화하여 근대미술에 나타난 미의식과 역사관을 정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했다고 합니다.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며, 사진촬영은 아니되오니 눈으로만 보고 나오세요.

 

 

덕수궁

미술관에서 바라본 덕수궁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보면, 옛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공원같죠.

 

 

덕수궁

석조전은 조선시대 최초로 건립된 유럽풍의 궁중 석조건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하여 1910년에 준공되었습니다. 고종은 이곳에서 대신들이나 외국사절을 접견하고 침전으로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1933년 일본이 개조하여 일본 근대 미술가의 작품을 진열하다 1938년 서쪽에 세워진 별관과 함께 ‘이왕가(李王家) 미술관’으로 개칭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미, 소 공동위원회 첫 예비회담이 개최되었고 한국전쟁 전까지 유엔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로는 국립박물관, 현대미술관, 국립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갔을때는 복원공사 중이어서 멀리서만 보고 왔습니다.

 

 

덕수궁

석조전 별관이 바로 국립현대 미술관이네요. 그래서 이렇게 연결되어 있나 봅니다.

 

 

덕수궁

작은 오솔길을 만나 걸어봅니다.

 

 

덕수궁

연결되어 있는 준명당과 즉조당입니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궁궐은 처음 본거 같네요. 가운데 연결되어 있는 통로 아래로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어요.

 

 

덕수궁

준명당은 고종황제가 침전과 편전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준명당의 ‘명’자는 눈목자(目)와 달월자(月)를 변형하고 합해서 썼는데 이는 일본을 뜻하는 날일자(日)를 쓰지 않은 것이며, 동시에 나라의 위기 상황을 눈 밝게 지켜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준명당이 유치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요. 고종황제가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이 곳에 유치원을 만들고 친히 임어하여 학동들을 만나고 필묵도 하사했다고 합니다. 딸바보 아빠가 여기에도 있었네요.

 

 

덕수궁

즉조당은 선조가 임진왜란 후 머물렀던 곳이며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한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의주로 몽진(피난)한 지 1년 반만에 한양에 돌아왔지만 도성 내 궁궐은 모두 불타 없어져 머물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월산대군의 저택과 주변 민가를 수용하여 거처를 꾸미고 석어당과 즉조당 등을 침전 및 편전으로 사용했다네요. 이를 정릉동 행궁이라 불렀답니다. 후에 영조와 고종은 선조가 겪은 고난을 가슴 아파하며 즉조당에 나아가 참배하고, 이곳을 국난 극복의 장소로 기렸다고 합니다.

 

 

덕수궁

석어당은 임진왜란 때 의주로 몽진 갔다 돌아온 선조가 거처하던 곳입니다. 목조 중층구조로 단청을 칠하지 않았습니다. 즉조당과 함께 선조 때부터 계속 내려오던 건물이었기에 1904년 대화재로 두 건물이 소실되자 고종황제는 이를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화재가 있었던 그 해에 중건되었습니다.

 

 

덕수궁

선조 41년(1608)에 선조는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 허준을 비롯한 어의(御醫)들이 여러 약재로 환과 탕약을 지어 올렸지만 결국 석어당에서 승하했다고 합니다. 허준의 무대가 바로 여기였군요.

 

 

덕수궁

고종황제가 커피를 마셨던 정관헌으로 이동합니다.

 

 

덕수궁

정관헌은 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서양 절충식 건물은 고종황제가 다과회를 개최하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한때 이곳에 태조(太祖)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봉안하기도 했다네요. 석재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식 기둥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기둥 상부에는 청룡과 황룡, 박쥐, 꽃병 등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어 전통적이면서도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덕수궁

고종황제는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보고 그 맛에 매료되어, 그 후 이 곳에서도 서양음악을 들으며 외교사절들과 커피 연회를 갖곤 했습니다. 1898년에는 김흥륙이라는 자가 황제에게 앙심을 품고 커피에 독을 넣어 독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네요.

 

 

덕수궁

함녕전과 덕홍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여기도 연결되어 있네요.

 

 

덕수궁

덕홍전은 1906년에 지어져 1911년에 개조되었는데 덕수궁 내에 현존하는 전각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종황제가 외국사신이나 대신들과 같은 빈객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채로운 서양식 접견실로 바닥에는 카펫을 깔고 천장 쪽 벽에는 나무로 된 금색 봉황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천장에는 색다른 조명등이 달려있으며 출입문은 궁궐에서 보기 어려운 여닫이 판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덕수궁

1897년에 지어진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거처했던 침전입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해 중건했다고 합니다.

 

 

덕수궁

함녕전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신 곳입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서쪽 뒤로 4칸을 덧붙여 평면이 ㄱ자형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인데 위쪽에 여러 가지 조각을 장식해 놓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붕 모서리 부분에 조각들(잡상)을 나열한 점은 침전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특이한 구성이라고 합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는 새부리 모양으로 간결하게 장식한 익공 양식이며 구름과 덩굴문양으로 꾸몄습니다. 건물의 천장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고, 네면 모든 칸에 벽을 두르지 않고 창을 달아 놓았습니다. 조선 후기 마지막 왕실 침전 건물이라고 합니다.

 

 

덕수궁

함녕전과 연결되어 있는 아마도 궁녀들의 처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임금의 침전에 비해 참 소박하죠.

 

 

덕수궁

어느덧 덕수궁의 마지막 볼거리인 호수입니다. 작은 카페도 있어 목 마른 자에게 따끈 혹은 시원한 차, 커피을 줍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죠. 호수 가운데 보이는 저 꽃은 철쭉이 맞겠죠.

 

 

지난 4월 17일에 시작된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 5대 궁궐 시리즈를 여기까지하려고 했는데, 제가 놓친 궁궐이 있네요. 바로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이 태어나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자란 운현궁입니다. 그리하여 번외편으로 다음주 운현궁편으로 궁궐시리즈의 마침점을 찍도록 하겠습니다.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13 예고 - 5대 궁궐 시리즈 번외편 -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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