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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운현궁이 궁궐인 줄 몰랐습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사저로만 알고 있었는데, 엄연히 조선시대 궁궐 중 하나였네요. 원래는 사대부집이었는데, 궁궐이 되어 버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젠 정말 궁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네요. 

 

운현궁

궁궐이라고 하는데, 대로변에 떡하니 있네요. 다른 궁궐에 비해 입구도 좁고, 궁궐이란 느낌보다는 조선시대 어느 사대부의 저택 같아요. 여기가 운현궁이라고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거 같네요.

 

운현궁

궁궐이라고 하는데, 기존에 봤던 여느 궁궐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운현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흥선대원군 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겠죠. 학창시절, 이때의 역사가 항상 시험에 나와 달달 외었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순으로 사건을 외우면서 머리가 참 많이 아팠는데 말입니다. 더불어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세력다툼이 참 심했죠.

 

운현궁

입구에 운현궁 배치도가 있습니다. 1시간 정도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작은 규모라서 무시하면 안됩니다. 반전이 있는 곳이거든요.

 

운현궁

경희궁처럼 무료입장이므로, 부담이 없어요. 매주 월요일이 휴관이고요. 주차장이 없다고 합니다.

 

운현궁

너무 입구쪽에만 있었네요. 이제야 드디어 안으로 들어갑니다.  

 

운현궁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넓은 공터가 보이네요. 다른 궁궐들은 다리가 항상 있었는데, 운현궁은 없네요. 원래 사저였던 곳이여서 그런가봐요.

 

운현궁

입구 근처에 있는 기획전시실부터 보기로 했어요. 동선을 짧게해야 피로하지 않거든요. 운현궁 왕실작품전을 한다고 하네요.

 

운현궁

이런,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작네요. 볼거리도 그리 많지 않네요. 그냥 후다닥 보면 끝이 나요. 애피타이저라 생각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운현궁

참, 이 곳에서 전통의상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야 혼자라서 의상을 입어볼 염두가 안났지만, 가족과 함께 온다면 꼭 체험해봐도 좋을거 같아요.

 

운현궁

수직사는 운현궁 정문 오픈쪽에 있는 행각으로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 업무를 맡은 이들이 거처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부터 흥선대원군의 거처인 운현궁의 규모가 상당히 커졌고,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막강해지면서 경호가 필요해지자 궁에서 경비병이 파견되고, 관리인들이 많아졌다고 하네요.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내부의 모습을 볼 수는 있어요. 내부는 그냥 휑하니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경비병의 옷과 이불, 가구 등등 지금도 누가 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운현궁

경비병들의 생활을 봤으니, 이제는 흥선대원군의 생활을 봐야겠죠. 노안당으로 들어갑니다.

 

운현궁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운현궁

노안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한식 기와집입니다. 처마 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단 수법은 그 시대적 특징이라고 하네요. 다른 궁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죠.

노안당이란 이름은 공자가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라고 한 논어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대원군이 아들이 왕이 되어 자신의 노년을 편안하게 살게 되어 흡족하다는 뜻과 노인들을 편하게 모셔야 된다는 치국의 이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운현궁

노안당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대원군을 보좌했던 보디가드(?)들이 있었던 곳 같아요. 제가 앞에서 말한 운현궁의 반전은 바로 이거입니다. 다른 궁궐은 휑하니 건물의 모습만 봤는데, 여기는 인형 모형이 있네요. 여기가 어떤 곳임을 알기 쉽도록 설명해주는거 같아요. 해설사가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잘 되어 있답니다.

저기 보이는 모형은 천안장안이라고 하는데요. 천안장안은 흥선대원군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로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 등 네 명의 성의 따서 천안장안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흥선대원군의 개인 경호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일까지 도맡아했습니다. 천안장안 중 한명인 천희연이 창의 위에 청색 호의를 착용하고 앉아 계시네요.

 

운현궁

노안당은 본채 내부에도 인형의 있습니다. 그럼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인지, 윗 사진은 흥선대원군이 평상시 복식인 원정관에 도포를 착용하고 추사 김정희의 글로 만든 병풍 앞에서 목란을 그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은 고종이 왕으로 정하는 교서를 받는 의식인 봉사식 모습입니다. 고종은 복건에 청도포를 입고 백사대를 착용했고, 흥선대원군은 흑단령을, 영의정 김좌근은 조복을, 도승지 민치상은 청단령을 착용하고 있답니다. 이 곳에서 고종이 왕이 되셨군요. 아버지로써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피나는 노력이 보이는거 같아요.

 

운현궁

이젠 명성황후가 등장해야겠죠. 노락당으로 들어갑니다.

 

운현궁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정면 10칸, 측면 3칸 규모입니다. 1866년(고종3) 삼간택이 끝난 후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던 곳이자 고종과 명성황후의 결혼식인 가례가 행해진 곳입니다. 

노락당은 초익공 양식의 사대부가 건축미를 느낄 수 있으며, 아름다운 창살문양(불발기창호)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붕의 용마루를 받치고 있는 중도리에는 용문양이 그려져 있어 건물의 권위와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운현궁

노락당은 부엌이 2개가 있는데요.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상궁과 나인들이 운현궁에 배치되어 살림을 도왔다고 합니다. 상궁은 녹색당위를 나인은 살구색 저고리에 청치마를 착용하고 있네요. 

옆의 사진은 명성황후의 부대부인 생신 축하 방문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왕비는 궐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부모의 생신, 병문안, 상 등의 제안적인 경우에 사가를 방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명성황후가 부대부인의 생신을 맞이하여 세자를 데리고 운현궁을 방문한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었네요. 명성황후는 당의를 착용하고 부대부인은 평상복인 치마, 저고리에 마고자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세자(앉아있는 모형)는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사규삼을,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은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전복을 착용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낙성식 축하 다례연의 모습입니다.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청녹색 당의를 입은 상궁이고요. 그 옆으로 분홍색 당의를 착용한 부대부인의 모습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분들은 연보라색 당의를 착용한 철종비와 황금색 당의를 착용한 조대비의 모습입니다.

 

운현궁

또 다른 안채인 이로당으로 들어갑니다.

 

운현궁

1866년 노락당에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가 치러진 이후, 노락당을 안채로 사용하기 어려워지게 되어 1869년에 새로운 안채로 이로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로당은 정면이 8칸, 측면 7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운현궁

운현궁의 가장 왼쪽에 위치한 건물로서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여자들만 살 수 있게 별도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철저한 금남지역으로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음(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운현궁

이로당을 나와 유물전시관으로 갑니다.

 

운현궁

유물전시관은 운현궁과 흥선대원군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운현궁

친영례 복식의 모습입니다. 사극에서 많이 봤던 옷이네요. 면복을 입은 고종과, 적의를 입은 명성황후의 모습입니다.

 

운현궁

왕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조복을, 왕의 어머니 부대부인은 원삼을 입은 모습입니다.

 

운현궁

수납채란 청혼을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명성황후는 책비를 받기 전이므로 적의가 아닌 그보다 한 등급 낮은 예복인 노의를 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형이 있어 그런지, 다른 궁궐 나들이와 달리 사실감이 훨씬 강하게 느껴지네요. 고종과 명성황후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모습과 역사적 사건들이 계속 생각나면서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본거 같아요. 자신들의 최후가 비참할거란 생각을 이때는 못했겠죠. 이들에게 운현궁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행복한 시간이었을거 같아요.


운현궁

운현궁을 다니면서 자꾸만 이상한 건축물이 보이더군요. 어디서 많이 본거 같기도 해서, 운현궁을 나와 무작정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운현궁 바로 옆에 덕성여자대학교가 있는데, 그 이상한 건축물이 바로 여기에 있네요.  

 

운현궁

바로 운현궁 양관입니다. 본래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을 위해 지은 건물로 양관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프렌치 르네상스 풍의 석재를 혼용한 벽돌 2층 저택에 16개의 천장 문양이 모두 다르다고 하네요.

1948년 덕성여자대학교에 매각되어 한때 교사로 쓰였고 지금도 평생교육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바로, 드라마 '궁'과 '더킹 투하츠' 그리고 '각시탈'의 촬영 장소였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 느낌이 바로 이거였네요.

 

운현궁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쫓겨났어요. 관계자외 출입금지라 하더군요. 아무리 대학교 소유라고 하지만, 우리의 역사유물인데 왜 못 보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경복궁의 시작으로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그리고 운현궁까지 조선시대 궁궐 나들이가 끝났습니다. 나들이를 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대단함을 다시한번 실감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 다시는 힘 없는 나라가 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훼손된 우리의 모습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아팠거든요. 그럼에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여 안심했습니다. 가을쯤에 한번 더 가볼까 해요. 가을 궁궐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거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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