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오브 컬러 | 익숙함과 특별한 사이 (in 63빌딩60층 63아트미술관)
아침에 일어나 잠에 들기 전까지 아니 꿈을 꾸는 중에도 컬러는 우리와 함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와 달리 색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 존재를 모르지 않았는데, 미술관에서 만나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익숙함에서 오는 특별함이랄까? 전망 좋은 63아트미술관에서 뮤지엄 오브 컬러를 만나다.
나에게 63빌딩은 1층에서 60층으로 한번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신기했지만, 무서움을 참고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는 과히 역대급으로 멋졌다. 낮에도 좋았지만, 진짜는 아경이다. 예전에는 뻔질나게 댕겼는데. 이제는 목적이 있어야 간다. 뮤지엄 오브 아트, 너땜에 63빌딩에 왔다.
KT는 멤버십 고객에게 매월 더블할인 문화혜택을 주는데, 공연보다는 주로 전시를 이용한다. 50% 할인은 놓칠 수 없는 혜택이니깐.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 나들이는 거의 못하고 있지만, 전시회 나들이는 종종한다. 맘에 드는 전시회를 발견했는데 장소가 63빌딩 60층이란다. 전시회도 보고 서울시내 전망도 보고, 겸사겸사 왔는데 날씨가 영 맘에 안든다. 지하 1층에서 60층까지 가는데 약 1분 정도 걸렸을까? 겁나 빠르다. 층수가 높아지면서 유리창에서 한발 한발 뒤로 움직였고, 60층에 도착할때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서 있었다. 사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찍었다는 거 안 비밀이다.
컬러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 중의 하나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컬러가 주는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뮤지엄 오브 아트는 우리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컬러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회다. 블랙, 레드, 핑크, 블루, 그린 각각의 색이 갖고 있는 매력과 그 색을 표현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아한 초대 블랙
모든 빛을 흡수하는 블랙은 죽음, 슬픔, 좌절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컬러였지만, 오늘날 블랙은 품격, 우아함, 심플함을 대변하는 색이 됐다. 작가 크리스티나 마키바의 작품은 블랙이 흡수한 모든 상징들이 총천연색으로 피어난 결과물이다. 블랙은 때론 빨간색처럼 강렬하고, 푸른색처럼 고요하며, 흰색처럼 순결하고 보라색처럼 신비롭다.
크리스티나 마키바는 전세계 90만 명의 팬을 보유한 러시아 스타작가라고 한다.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모델은 작가 본인이다. 작품마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자기애가 무지 강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모든 빛을 흡수하는 블랙이라서 그런가, 넘 컬러풀하다.
레이디 파파베르, 레드
레드는 자연에서 발견한 가장 초기의 유채식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용기, 사랑, 열정, 희생과 같이 숭고한 가치를 대변했으며, 분노, 증오, 전쟁과 같이 가장 극단적인 상태를 상징한다. 그래서 레드는 대체불가한 컬러다.
블랙과 동일한 작가인 크리스티나 마키바 작품이다. 역시나 사진 속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다. 각 작품마다 작품명이 있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무보다는 숲이라고 할까나? 컬러 혹은 공간이 주는 느낌으로 작품을 바라봤다.
꿈결은 걷는 시간, 핑크
핑크는 옅은 빨간색으로 분류되던 색으로 오랜 기간 서양에서는 장미색으로 불리다가, 17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짙은 분홍빛을 띠는 패링이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동양에서는 복숭아꽃과 색이 닮아, 도화색이라 불렀다. 핑크가 여성성을 규정하는 색채로 인식된 것은 20세기 초 핑크색 여성북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며, 오늘날에는 성 중립적인 핑크 트렌드가 등장하고 있다.
다 같은 핑크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른 핑크다. 개인적으로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으로 색을 규정하는 문화가 싫었다. 그때문은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분홍보다는 파랑을 더 좋아하고, 블루계열의 옷이 가장 많다. 그렇다고 분홍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파랑을 더 좋아할 뿐이다.
내 기억 속의 바다, 블루
빛이 바다에 닿으면, 그중 푸른빛만이 흡수되지 않고 산란해 우리가 아는 바다의 색으로 나타난다. 햇빛의 세기, 바다의 수심, 파도의 강도, 바다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따라 바다는 결코 한 가지 색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진작가 린 더글라스는 장시간의 카메라 노출 기법을 통해 바다를 마치 추상처럼 하나의 선과 색채로 응축시켰다.
린 더글라스는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의 작은 섬, 스카이 아일랜드에서 막 빛이 떠오르는 새벽녘부터 별이 빛나는 해질녘까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푸른빛 풍광을 사진을 담았다. 그가 만든 블루는 평온하고 고요하며, 쓸쓸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다. 마치 화가가 붓으로 직접 그린 듯, 사진인데 사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장노출을 얼마나 해야 비슷하게나마 따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8월의 어느날, 선셋
태양이 지구와 가까워지는 한낮이 되면 짧은 파장의 청색 광선이 산란하며 맑고 푸른 하늘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해가 질수록 점점 더 긴 파장의 빛들, 주황빛, 옅은 핑크빛 또는 붉은빛의 색채가 하늘을 물들어간다. 결코 하나의 색으로는 명명될 수 없는 노을의 띠가 펼쳐진다. 하늘의 색채를 아크릴이라는 물질로 구현해낸 작가 윤새롬 작품이다. 아크릴과 거울의 만남이랄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감과 더불어 노을의 느낌이 전해진다.
봄날의 산책, 비비드
노란 개나리와 유채꽃, 민들레, 붉은 튤립, 봄날의 산책은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생생한 색채의 향연이다. 아트놈 작가의 작품은 햇살 아래 막 피어난 꽃처럼 선명한 색채와 개성으로 빛난다. 이곳은 봄날의 정취가 가득한 산책이다.
아트놈은 한국 민화에 독창적인 캐릭터 디자인을 접목해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문 팝 아티스트다. 자신과 주변인을 모티프로 만든, 귀엽고 익살스러운 그의 캐릭터는 예술을 쉽고 재미있게 만든다. 비비드 컬러는 너무 쨍해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그 쨍함이 주는 경쾌함이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순간의 마법, 레인보우
사진은 같은 피사체를 찍는다고 할지라도 광원과 시간대, 각도, 배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잔이 탄생한다. 예너 토룬은 그 절묘한 순간의 마법을 통해 회색 도시를 무지갯빛의 거리로 재탄생시키는 아티스르다. 작가는 도심의 공업지대와 개발 지역을 누비며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건축물들을 발견하고, 그 기하하적 특성을 포착한다.
그는 선과 면, 색채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작품 속 건축 요소들은 서로 다르지만, 또 완벽하게 하나인 무지개처럼 조화롭고, 즐거움이 가득하다. 다른 작품들도 그랬지만, 레인보우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숲이 보였다. 즉, 한 공간의 모인 각각의 작품이 커다란 하나의 작품으로 보였다.
시들지 않는 정원, 그린
그린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색채다. 고대 중세 영어의 'Grene'에서 유래한 단어로, 풀(grass)과 자라다(grow)라는 단어와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그래서 그린은 생장의 시기인 봄과 인생의 성장기인 젊음을 상징하는 색채이기도 하다. 또한 자연과 평화, 회복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작품과 달리 현실 속 시들지 않는 정원은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5월은 어딜가나 싱그러운 그린을 만날 수 있다. 인공보다는 진짜 그린을 만나고 싶다. 공원도 좋고, 수목원도 좋고, 어디가 됐든 떠나고 싶다.
너머의 환상, 컬러 팔레트
때로는 신중히 고민하고, 정열적이지만 혼자 사색에 잠겼을때 편안함을 느낀다. 모순적일 수 있지만, 우리는 여러 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컬러도 그렇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보색이 어울리기도 하고, 이웃한 색상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하나로 연결된 색의 고리를 발견한다. 한 컬러의 문 너머를 통과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컬러가 나타난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전시가 끝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기념품 가게가 있고, 늘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뮤지엄 오브 아트는 어렵지 않아서 좋았고, 컬러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혀졌으며, 그림과 다른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전문 사진작가들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나름 나만의 작품을 찍어보고 싶다.
보너스 트랙
날씨가 좋았더라면 단독으로 업로드를 했을텐데, 봄에 푸른하늘을 만나기란 비 온 다음날이면 모를까? 참 어렵다. 뮤지엄 오브 컬러 전시가 8월 29일까지 하니, 다음 전시회는 뭐가 됐든 무조건 관람이다. 왜냐하면 9월은 미세먼지보다는 푸른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니깐.
'까칠한시선 >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르소나: 나 아닌 모든 나 | 도시재생을 만나 미술관으로 (in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17) | 2022.07.14 |
---|---|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국립현대미술관 (17) | 2022.05.05 |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석파정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16) | 2022.04.28 |
살바도르 달리 | 콧수염이 매력적인 괴짜 천재를 만나다 (in DDP 디자인 전시관) (21) | 2022.02.11 |
마크 디온의 한국의 해양생물과 다른 기이한 이야기들 | 바다의 눈물 (in 바라캇 컨템포러리) (19) | 2021.09.30 |
넥스트 아트 필립 콜버트전 | 복잡한데 어렵지 않아 (in 세종문화회관) (7) | 2021.03.30 |
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특별전 | 디지털로 만나는 천재의 작품 (in M컨템포러리) (15) | 2021.02.23 |
강남모던-걸 | 스스로 오늘을 살아간 최초의 여성들 (in M컨템포러리) (24) | 2020.01.14 |
안녕, 푸(Winnie-the-Pooh) | 익숙함과 낯설음 사이 (in 소마미술관) (12) | 2019.10.02 |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 | 귀여운 소녀 우리의 친구 (in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20) | 2019.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