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영화를 보면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되고 싶었던 인물은 인디아나 존스.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어릴때부터 역사덕후였나 보다. 3편이었나? 영화에서 엄청난 미키마우스가 떼로 나오는 장면을 보고, '아, 고고학자는 못하겠구나'하고 바로 포기했다. 만약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곳 발굴현장에 있었을 거 같다. 꿈은 접었지만, 기분은 즐기고 왔다. 종로에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 왕들의 집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왕이 아니 백성의 집은 왜 없을까? 역사적 가치가 없으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것일까?
2015년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역사도시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온전하게 발굴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도시유적과 기억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존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했다고 한다. 종각역 부근 종로타워 뒤에 센트로폴리스 빌딩이 있고, 그곳 지하에 조선이 살아있다.
시간여행자가 됐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춘천에 있는 소양강 스카이워크에 비한다면, 완전 껌이다. 그걸 아는데,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찬 듯, 한발 걷는데 겁나 힘들다. 그래도 인디아나존스를 꿈꿨는데, 거대 미키마우스는 자신이 없지만 이쯤이야 한줄기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걸어나갔다.
현재 세트로폴리스이기 전, 이곳은 공평빌딩이었다. 공평동 일대는 1978년 공평구역 도심재개발지구로 총 19개 지구가 지정되었고, 2010년까지 6개 지구의 재개발사업이 완료 되었다고 한다. 재개발시행에 따른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4개의 시대별 문화층에서 건물지와 도로 등 유구와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다.
그중 유구의 상태가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16~17세기 유구를 전시관 내부로 이전해 복원하게 되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심 정비사업에서 발굴되는 매장 문화재를 최대한 원위치 전면 본존한다는 공평동 룰을 적용한 첫 사례라고 한다.
센트로폴리스는 사유지다. 서울시는 사업시행자에게 기존 22층 건물에서 26층으로 조정하는 인센티브를 도입해, 지하 1층에 유구 전시관을 조성한 후 기부 체납하는 대신 건물을 더 올리도록 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이게 바로 솔로몬의 지혜. 역시 서울시장의 클라스는 다르다.
목각 수선총도는 사대문 안 한양의 모습을 목판으로 제작한 수서총도를 바탕으로 음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수선은 으뜸이라는 의미로 임금이 사는 수도인 서울을 나타낸다. 산세, 궁궐, 주요 관아 건물, 종묘, 사직 등은 검은색으로 표현, 방명은 작은 사각형의 검은색으로 표현, 동명은 이름만 적었다. 도로는 가는 선으로, 하천은 굵은 선으로 표현해 구별했다. 수선총도는 당시의 상점 분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종로와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시전의 명칭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고 안내문에 나와 있다.
공평동 유적은 조선시대 한양의 행정구역에서 중부 견평방에 속한다. 견평방은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였다. 순화궁, 죽동궁 등 왕실 가족의 사가인 궁가 또한 다수 자리했으며, 사법기관에 해당하는 의금부와 의료와 약재를 관장하던 전의감 등의 관청이 건평방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건평방은 한양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시전, 궁가, 관천 등 다양한 시설과 계층이 혼재하였던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전시관에는 전통 큰집 골목길 ㅁ자 집, 이문안길 작은 집, 전동 골목길 등 견편방의 형성과 흔적 및 복원 그리고 시전 사람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다.
전동 큰집은 공평동 유적에서 발굴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지다. 중인 이상의 가옥 또는 관청의 부속시설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안마당을 둘러싼 기단석, 적심석 그리고 긴 초석 등이 발굴되었으며, 4개동의 건물이 하나의 집을 이루고 있다. 솔직히 바닥에 돌만 있어 딱히 와닿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이제야 어떤 곳인지 알 거 같다.
모든 공간이 다 유리구두 아니 유리바닥으로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서서히 다리에 힘이 풀려서 큰일이구나 했는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유리바닥은 이제 그만, 서둘러 땅으로 내려갔다.
내려와서 보니, '에게게~ 고작 이정도 높이였어. 괜히 쫄았구나.' 그저 땅 위에 돌을 놓은 거 같은데, 자세히 보면 공간마다 다르다.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다.
위치를 바꾸면, 어제와 오늘을 만나게 된다.
궁금증 하나, 예전에는 몰랐던 것일까? 지금 시장이 아니라, 다른 시장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정말 몰랐을까?
공평 빌딩의 흔적이 남긴 과제라는 제목과 함께 있던 괴상한 물체. 안내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1978년 공평동 일원은 도시개발법에 의해 '공평구역 도심재개발지구'로 지정되었고, 1981년에는 공평동 유적 북서쪽의 1지구에 지하 3층, 지사 13층 규모의 공평 빌딩이 건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태화관이 사라졌고 이후 태화빌딩, 하나로 빌딩 등이 차례로 세워졌다. 2014년 공평구역 제 1, 2, 4지구 재개발사업으로 공평 빌딩을 철거하고 그 아래 지면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공평 빌딩의 콘크리트 슬레브와 H빔이 조선시대 유구를 파괴한 채 세워져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무리 개발이 좋다지만, 역사는 보존되어야 한다.
17호 건물지가 있으니, 1호 건물지도 있다는 의미다. 전시관 규모가 어떤지 이거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다. 즉, 생각보다 무지 넓다.
공간이 넓다보니, 하나하나 꼼꼼하게 바라볼 수가 없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던데, 다음에는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공평동 유적의 10호 건물지에서 발굴된 입사지정이다.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땅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는 일을 지정이라 하는데, 입사지정은 기초웅덩이를 파고 모래에 물은 부어가면서 층층이 다져 올리는 건축공법을 말한다. 이 입사지정은 조선 전기 건축물의 기초 공법을 실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여기는 전동 골목에 난 길이라 하여 전동 골목길로 불린다.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별 건물지와 길을 확인해 본 결과, 골목길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지와 연결되는 작은 길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변화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전동 골목길 3곳은 전 시대의 발굴 층위에서 동일한 위치에 같은 폭으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복원은 좋은데, 너무 휑하다 보니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VR 체험 같은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오호~ 있다 있어. 그리 길지 않지만, 조선시대 가옥의 모습을 설명과 함께 자세히 볼 수 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어지럽다. 멀미에 약하다면, VR 체험은 마지막에 하는게 좋다.
공평동 유적에서는 백자 항아리와 백자 뚜껑이 세트를 이루는 진단구가 주로 출토되었다. 청진동 유적의 전단구는 분청자, 백자, 도기 항아리에 분청자, 백자로 만든 접시와 대접, 기와편, 판석 등이 뚜껑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옥의 목구조를 복원한 이문안길 작은 집은 온돌과 마루, 아궁이 등의 주택 바닥형식이 모두 발굴되어 조선 전기 한옥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6칸의 작은 집이지만 마룻널의 크기, 배수로, 초석과 고맥이석 그리고 큰 길에 마주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형식을 제대로 갖춘 기와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장수 설렁탕 전문점인 이문설렁탕, 항일구국운동 및 여성 지위 향상 운동을 전개한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 경상 전라 충청 등 삼남 출신 기생들의 가무와 이익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생교육 기관이자 조합인 한남권법 등 일제강점기 전동 골목길도 볼 수 있다. 그저 가볍게 들어갔다가,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유리바닥의 무서움과 VR로 인한 어지러움이 있었지만, 역사를 좋아한다면 필수코스라 생각한다. 고로 한번 더 가볼 예정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9시부터 18시까지다. 관람료는 당연히 무료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안내데스크가 있는데, 그 옆으로 사물함이 있다. 사용료는 역시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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