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깨에 뽕이 와다다다다 올라갔다. 한글의 우수성을 애당초 알고 있었지만, 또한번 눈물나도록 감명받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며, 한글이 모국어인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가야하는 곳이다. 당당하게 자랑을 해도 뭐라고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글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하고 과학적인 우리 언어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4호선이나 경의중앙선 이촌역에 내리면 2번 출구 진입 전에 박물관 나들길이 나온다. 그길을 따라 걷다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이 나오지만, 목적지는 따로 있으니 좀 더 걸어가야 한다. 2014년에 한글날에 개관을 했다는데, 5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됐다. 한글을 쓰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어찌 아니 갈 수 있을까?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한번 한글부심을 만끽하고자 찾아갔다.
그네들은 왜 공공기관 엠블럼을 하나로 통일시켰을까? 각 기관에 맞게 엠블럼만 봐도 어떤 곳인지 유추할 수 있도록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으면 좋겠다.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네들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국립한글박물관 입장료는 무료, 1월 1일과 설날과 추석 당일만 휴관일이다.
전시관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한글부심이 넘쳐 흐른다. 1443년 창제 이후 지금까지 모국어인 한글, 일제시대때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절대 꺾이지 않았다. 참 멋진 우리말, 우리글 그냥 기분이 좋다. 보관함은 기념품점 근처에 있으니, 가볍게 관람을 하고 싶다면 짐은 잠시 맡기는게 좋다. 100원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가면 더 좋을 거 같다. 짐을 찾을때 돈도 같이 토해내니, 보관함 이용료는 무료다.
상설전시관은 한글이 걸어온 길이라는 테마로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쉽게 익혀서 편히 쓰니' 그리고 '세상에 널리 퍼져 나아가니'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 대왕이 쓴 훈민정음 서문이다. 학교다닐때 달달 외웠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나는지 나도 모르게 줄줄 읽어 내려갔다. "우리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일반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 스물여덟 글자를 가지고 전환하는 일에 제한이 없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
한글이 나오기 전 글자를 빌려 썼다. 이를 차자 표기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주로 인명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 명사를 표기하는데 사용되었다. 차자표기는 당시 고유어 발음과 가장 비슷한 음을 가진 한자를 빌려서 적은 것으로, 한자의 원래 뜻과는 관련이 없다.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해 우리말의 어순대로 문장을 표기한 이두, 서동요 등 향가를 적는데 많이 사용된 향찰 등도 있었다고 한다.
한글은 30개를 넘지 않는 자모음만으로 수천 개의 음절을 표현할 수 있다.
한글 연표 중 첫번째는 세종과 훈민정음이다. 설명은 이렇게 나와 있다. 세종은 즉위 25년때 되던 1443년 한글을 창제하였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446년에 그 문자를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냈다. 뒤에 놓인 병풍에 적힌 것은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훈민정은의 서문과 예의 일부이다. 한글로 비석을 세운 이문건, 숙종은 한글 유지를 승정원에 내려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게 했는데, 반대상소로 인해 삭제하라고 다시 명했다 등등 한글과 관련된 역사를 재밌게 볼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영상물, 보는내내 뿌듯
초성 중성 종성이 어울려 이루는 글자에 대해 말하자면, 움직임과 멎음이 서로 근본이 되어 음과 양이 어우러져 바뀌는 뜻이 있으니, 움직이는 것은 하늘(초성)이요, 멎어 있는 것은 땅(종성)이며, 움직임과 멎음이 겸한 것은 사람(중성)이라. 훈민정음 제자해.
훈민정음 해례본은 영상이 나왔던 저곳, 둥근 테이블 안에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은 다시 한문으로 되어 있는 훈민정음(한문본)과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 훈민정음(언해본)으로 구분된다. 훈민정음(한문본)에는 한글의 제자 원리와 그 예시를 든 해례, 다시 말하면 문자에 대한 설명과 예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훈민정은(해례본)이라 부른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한글이 일상적인 문자로 자리 잡게 됐고, 19세기부터 근대식 인쇄기술 덕분에 신문, 잡지, 신소설 등을 대량으로 인쇄하게 되면서 한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한글로 쓴 최초의 노래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모아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공덕을 기린 월인석보
정조가 4세 무렵 큰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
정조가 새해를 맞이하여 큰외숙모에게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낸 내용이 담긴 한글편지
그림 사주책
운수로 사주를 풀이한 책, 당사주 130장
윷점책
서포 김만중이 지은 소설, 구운몽
어릴때 큰집에는 타자기가 있었다. 장난삼아 톡톡 치면서 신기해 했었는데, 컴퓨터 키보드와 달리 아날로그스러운 디지털기기 같다. 하나 장만하고 싶은데, 동묘에 가면 구할 수 있을까?
목판 인쇄에서 납활자 인쇄로
딱지본 소설은 근대에 들어온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낸 국문 소설류를 말한다. 크기가 대체로 일반 책보다 작고 표지가 울긋불긋 화려해 딱지본이라 하며, 발행 초기에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육전 소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주로 흥미로운 고전 소설을 대상으로 한 데다 휴대가 간편하고 가격도 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한글 전파에 크게 기여했다.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 말모이 원고다. 이 원고는 한글학회에서 큰사전을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국어 교과서 변천사
여기 어디쯤 나의 국민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가 있다.
한글이 광고를 만나면서, 글자 모양은 다양해졌다.
컴퓨터는 서양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알파벳에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한글을 컴퓨터 환경에 맞도록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지금과 같은 한글 정보화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IT 강국답다.
3층 기획전시실에는 중국 산동박물관의 '청인의 임서'와 함께 '명필의 꿈꾸다'가 전시중이다. 명필을 꿈꾸다는 김정희를 전후로 한 조선 후기 서예가들의 주요 임서작품과 왕실의 한글 임서 그리고 20세기 초 한글 따라 쓰기 교본 등을 볼 수 있다. 청인의 임서는 청나라 법첩으로 명필의 글씨를 연마하고 연구하는 첩학의 전성기에 다시 고증학을 기반으로 비석 글씨를 연구하는 비학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았으며, 청나라 주요 서예가인 왕탁이 쓴 임서 작품 등 1급 유물에 해당하는 2점을 포함한 산동박물관의 임서 작품 23건 30점이 전시되어 있다. 명필은 좋은데, 문제는 너무 어렵다. 정말 정말 한글이 있어 참말로 다행이다.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글자인데 모르겠다.
한나라 시대의 비석을 장조익이 따라 쓴 글씨라고 나와 있음.
서예란 침착하고 고요한 것을 귀하게 여기며, 작가의 뜻이 붓보다 앞서야 한다. 왕희지 서론 중에서라고 나와 있음. 어릴때 서예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었다. 3일동안 한일자만 쓰라고 해서, 3일만 학원을 다녔다. 한글이 없었다면, 한자가 국어가 됐을텐데, 아~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곽유도비를 김정희가 따라 쓴 편지
한글놀이터
몸으로 한글을 만들어 보아요~
영어도 좋지만, 그래도 한글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글 놀이터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을 위한 한글배움터도 있다. 모니터에 나와 있는 글자를 써보고, 자음과 모음을 합쳐 글자를 만드는 등 재밌게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사전의 재발견
또다른 기획전시인 사전의 재발견이다. 우리말 사전의 탄생과 우리말 사전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면 되지만, 국어사전, 영어사전 그리고 옥편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필수 오브 필수품이었다. 두껍고 얇은 종이를 뒤져보면서 단어의 뜻을 찾던 그때 그 시설, 전자사전이 나왔지만 그래도 뭔가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종이사전을 계속 사용했었다.
기념품점에서 촌티유발을 불러일으킬 거 같은 빨간 누비천으로 된 카드지갑을 샀다. 빨간색 지갑은 돈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카드지갑이라서 안 들어올까나.
한글이 모국어라서 다행이고 행복하고 뿌듯하다. 영어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번역기의 발전으로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될 세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우리에게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꼭 집어서 알려주고 있다. 한글, 너 참 멋지다.
사진으로 하나하나 다 담을 수 없을만큼 전시물이 어마어마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골랐기에, 직접 가서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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