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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유럽식 궁궐이었는데, 미술관, 의사당, 회의장, 박물관, 다시 미술관, 전시관, 사무소 등으로 많이도 바꿨다. 갖다 쓰더라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주면 되는데, 변신은 훼손을 하기 위한 핑계였을 것이다. 서양식 궁궐로는 고작 11년, 75년이 넘도록 다른 얼굴로 살아왔다. 5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석조전은 대한제국 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예전 모습 그대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석조전의 연혁을 보니, 어린 나에게 이곳은 궁중유물전시관이었을 거 같다. 견학을 갔을 것이고, 내부를 봤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인이 됐을때는 덕수궁사무소였다고 하니, 이때부터 건물외관만 보고 지나쳤던 거 같다. 석조전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다. 알았을때는 복원공사 중이어서 가림막만 봤다. 2014년 10월에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을 했는데, 이제야 왔다.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났는데, 갈수록 뭉클해지고 아팠다. 대한제국은 1897년 고종이 선포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황제국가로 자주성과 독립 의지를 지녔지만, 너무나 짧은 역사로 끝나버렸다. 10년이 걸려 완공된 석조전은 고종(황무황제)과 순헌황귀비의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생활을 하고, 석조전은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했고, 순헌황귀비는 준공 이듬해에 죽음을 맞이해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석조전을 제대로 사용한 왕은 영친왕뿐이다. 그 이후는 일제가 덕수궁 중앙공원화 정책에 따라 미술관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2009년부터 실시한 복원공사를 통해 벽체를 철거해 원형을 찾고, 평면도와 신문기사를 참고해 공간 구획과 실별 위치를 설정했다. 인테리어는 고증자료와 영국 메이플사의 카탈로그를 근거해 재현했다고 한다. 

 

석조전 관람은 따로 사전 신청을 해야한다. 덕수궁 홈페이지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관람에서 하면 된다. 회원가입은 필요치 않고, 그저 날짜와 시간 그리고 인원만 정하면 된다. 가능하다면 1, 8회차를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심화해설로 좀더 많은 곳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 확인증을 인쇄해서 현장에서 제시하라고 나와있지만, 이름만 말해도 된다. 담당자한테 보여드릴까요 했더니, 괜찮다고 했기 때문이다. 11시 30분 4회차로 예약을 하고, 5분전에 도착해 준비되어 있는 실내화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홀
중앙홀 오른편에는 귀빈대기실이 있다.
중앙홀 왼편에는 대식당이 있다.

석조전은 지층과 1,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주로 접견실, 식당, 중앙홀, 귀빈대기실로 공적인 공간이라면, 2층은 황제서재와 침실, 황후거실과 침실 등 사적인 공간이다. 중앙홀은 1922년과 1918년 사진을 검토해 준공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중앙홀 탁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보관하던 것을 이관한 것으로 석조전 내에서 가장 화려하다. 

 

귀빈대기실
100년 된 장식장(왼) / 대한제국의 황실문장인 오얏꽃(우)

귀빈대기실은 황제를 만나기 전에 순서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이곳에 있는 거울은 얼굴을 보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높게 달았단다.

 

계단 옆 철제구조물은 100년이 넘도록, 즉 준공(1910년) 당시 모습이라고 한다. 석조전에서는 기대거나 무언가를 함부로 잡으면 안되지만, 계단은 괜찮다. 그래도 아까워서 찔러 보는 수준으로 살짝살짝 대기만 했다.

 

대한제국 황실 가계를 볼 수 있는 방.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과 순종은 전통 복식인 곤룡포를 착용하기도 했고, 서양식 군복을 입거나 훈장을 달고 촬영을 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궁궐과 석조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편전과 침전이 별도로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에 뒀다.

 

황제침실
침대 옆에는 간이 세면대가 있다.

고종의 침실로 계획되었지만,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 머물면서 사용하지 않았다. 영친왕이 일본에서 귀국할 때마다 사용했다고 한다. 욕조와 세면대 & 변기는 침실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황제서재는 전통적 개념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으로 황제가 책을 보거나 가까운 손님을 맞이한 방이다. 침실 바로 옆에 있으며, 황제의 공간이라 커튼과 케노피 색상을 황금색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황후거실은 전통적 개념의 안방, 규방과 같은 공간이다. 책을 보거나 내빈을 접대하며, 다른 방들에 비해 가구가 화려하다. 

 

황후침실

순현황귀비는 석조전 준공 직후 별세해 사용하지 못하고, 영친왕과 혼인한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잠시 사용했다. 황제침실과 대칭적이며, 황후의 공간이라 자주색으로 재현했다. 

 

테라스로 나갈 수 있으며, 그당시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테라스

그동안 웬 분수대 했는데, 석조전을 지을때, 정원도 함께 계획을 했다고 한다. 1920년대에는 사각형 연못을 조성하고, 중앙에 거북 모양 조각상을 배치했다. 그러나 덕수궁 서관(현 덕수궁미술관)을 건립하면서, 현재의 물개 모양 조각상이 있는 분수대로 정원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대식당

다시 1층으로 내려와서 석조전 관람의 마지막인 대식당이다. 공식적인 행사 후 만찬을 베푸는 공간이다. 대한제국 시기 외국인이 참석하는 연회에는 대부분 서양코스 요리가 제공되었다고 한다. 

 

대식당 남쪽 창호 한 칸은 마감을 하지 않고 노출시켜 석조전 건물의 구조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석조전은 바깥벽은 화강암, 안벽은 적벽돌을 쌓아 올렸으며, 천장은 철골 I자형 빔과 아치형 빔으로 구성되었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덕수궁

석조전은 웅장하고 멋진 모습에 비해, 너무 커다란 아픔을 갖고 있다. 마치 두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채, 미소를 짓고 있는 거 같다. 

 

덕수궁과 석조전을 봤으니, 이제 돌담길로 나가볼까나. 작년에 개방한 덕수궁 돌담길을 시작으로 올해 개방한 고종의 길을 지나 구러시아공사관으로 그리고 정동길에서 다시 돌담길을 지나 전망대로, 커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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