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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지난주 김복동 할머니를 멀리서나마 직접 뵙고, 다시한번 다짐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그날까지 영원히 잊지 말자고.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기억의 터. 스산한 바람이 부는 그 곳에서, 기도했다. 꽃 피는 봄이 찾아오듯, 우리 할머니에게도 새봄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고...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작년에 조성된 기억의 터. 원래 이 곳은 일제시대 통감관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처음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일본 조선 침략의 교두보인 통감관저 자리에 세운다는 것은 모욕으로 거부감까지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전혀 다른 의표를 찌르는 탁월한 역발상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통감관저는 일본군 위안부와 두가지가 너무나 대척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한 장소에 존치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지형을 구상했다. 근본 바탕부터 바꾸는 것. 땅의 형상의 전혀 새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통감관저와 기념물들은 기억의 터 의미를 더욱 확연하게 만드는 역할로 머물게끔 하였다. 대지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구성하여 직선인 통감의 기록물들과 대비를 이루도록 하였다. 산위에서 보나 공원 위에서 보나 평면, 입면, 사방 팔방 어디에서도 새로운 풍경이 되도록 연출하였다. (임옥상 화백, 안내문 참조】

 

김순덕 할머니 그림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의 실제증언)

대지의 눈

위안부였던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제증언,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선통감부는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한 후 조선을 빼앗을 목적으로 남산자락에 설치한 총독부의 전신이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리우치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강제병합을 체결했다. 그리고 8월 29일 일왕과 순종의 조서가 공포됨으로써 조선왕조 519년, 대한제국 14년 만에 조선은 망하게 되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완전 칭찬해!!

통감관저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동상

기억의 터가 조성된 공간은 일제시대 일본의 통감관저터가 세워져 있던 곳이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으며, 이후 36년동안 한국은 암흑의 일제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거꾸로 세운 동상은 1936년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받치고 있던 판석이었다. 이를 거꾸로 세움으로써 명예롭지 못한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치욕의 역사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구나. 이완용, 개xxxxxxxxxxxxx.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인 신용복교수가 직접 썼다고 하니 한번 더.

 

세상의 배꼽

가운데 흔들이는 고흥석 주위에는 편안한 높이의 능선이 둘러져 있으며, 그 위에 놓여있는 자연석과 잔디에서 방문객들이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기억의 터를 만든 사람들 - 고맙습니다!!

73년이 지났다. 식민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아시아 태평양의 곳곳에 끌려갔고, 버려졌으며, 그 일부가 우여곡절 끝에 생존한지 73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아픔을 기억하고 살아계신 할머님은 39명뿐이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은 거 같다. 여기에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살짝 통쾌하고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의 진정한 사죄와 할머니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그날까지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삼일절이자 수요일이다. 역사가 바뀔 운명의 날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LED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갈 생각이다. 언제나 3시쯤 도착을 했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갈 예정이다. 왜냐하면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하는 수요집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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