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전쟁,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 안됐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다시 찾게 된 김진명의 글자전쟁, 프롤로그에 해당되는 노인의 죽음을 읽다, '이번에는 남북 이야기인가, 별 재미 없겠네'하면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후,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제목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자전쟁의 의미를 아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유는 소설 초반부는 제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죽음이 연상되는 소제목 노인의 죽음은 짧게 끝이 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도입부분이 살짝 뚱딴지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라 왠지 그의 죽음이 그렇게 됐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물리학에서 국제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5년 내 500억을 벌기로 결심한 무기중개사 태민의 이야기다. 무기는 심리학이라고 생각하는 태민은 북한의 정세에 입각해 한국에 무기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방산비리에 발목이 잡혀, 3년 동안 번 50억을 날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는 비리와 전혀 상관이 없지만, 상황은 점점 방산비리의 중심 인물로 되어 간다.
영장이 나오기 하루 전, 그는 중국으로 도망을 간다. 엄청난 돈을 포기하고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이게 무슨 글자전쟁이야 했다. 그리고 태민이라는 인물이 간사스럽고 기회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산비리는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직접 발을 담그지 않았을 뿐이지 그가 하고 해왔던 일은 방산비리의 한부분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태민은 검사의 서릿발같은 말에 작아지더니, 결국 중국으로 도망을 가고, 거기서 또 엄청난 일을 꾸미는 모습을 보니 정말 돈에 환장한 놈이구나 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은 굶어 죽을지 몰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태민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러했다.
『태민이 북한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미국 쪽의 공포스러운 정보를 흘려주는 데 있었다. 즉, 가공할 미국 무기의 위력이나 감추어진 미국의 북한 공격 시나리오 같은 걸 흘려주어 북한으로 하여금 한층 더 격렬하게 남한을 위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북한의 위협이 고조될수록 무슨 무기든 팔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었다. (본문에서)』
그런데 정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빌미로 그는 500억을 벌 수 있는 엄청난 무기판매의 기회를 잡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에게 전혀 다른 일도 함께 일어나게 된다. 바로 킬리만자로라는 인물의 죽음이다. 죽기 전에 태민에게 만나자고 했고, 불안하다면서 그에게 USB 하나를 줬다. 그리고 그는 살해당했다.
킬리만자로는 한국인 소설가 전준우로 그의 별명은 팩트서처다. 허구라는 장치를 동원하지만 수면 아래의 진실을 좇는 작가라는 의미란다. 전준우 = 김진명, 이런 등식이 생각나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진명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소설은 그냥 허구로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유에스비에는 뜻밖에도 무슨 소설 작품이 하나 담겨 있을 뿐이었다. 프롤로그와 열세 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쓰다만 소설이 화면에 가득 뜬 걸 바라보며 태민의 궁금증은 한층 더 깊어졌다. 소설이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중국의 치명적 약점이란 말인가...... 아니, 그게 어떻게 살인의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태민은 온 신경을 집중해 프롤로그부터 읽어나갔다. (본문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 속에서 책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왜 글자전쟁인지, 한자에 둘러싼 비밀스런 이야기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인가 싶지만, 읽다보면 정말, 혹시, 가능할 거 같은데... 이런 기대감이 생긴다. 김진명이 말하고자 하는 아주 엄청난 역사적 진실(진실이라면 정말 좋겠다)이 전준우의 소설 속에 담겨있다.
『물 수와 밭 전을 합한 글자는 논 답으로 가장 먼저 생겼어야 할 글자다. 그런데 모든 한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화하족, 즉 한족에게는 이 논 답이란 글자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한자를 한족만이 만들었다고 할 것인가. (본문에서)』
고대 우리나라는 중국의 속국이었고, 한글이 나오기 전까지 중국이 만든 한자를 사용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다. 그런데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였지만 한 사람의 성인과 한 사람의 위인이 화하족의 나라로 바꾸어버렸다면"(본문에서), 정말 그랬다면 이는 엄청난 역사 왜곡이다. 우리가 중국보다 훨씬 우수함을 증명하는 일이기에, 허구 소설이지만 전율을 느꼈다.
왜 화하족이 역사를 왜곡 했는지, 왜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하는지, 시대는 한참 다르지만 답은 하나다. 감춰야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국정교과서에 왜곡된 역사가 포함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 국정교과서가 현실이 되고, 백년 이백년동안 쭉 국정교과서로 배운다면, 우리 후손들은 역사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역사가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왜곡된 역사가 가져다 주는 엄청난 사실을, 소설 글자전쟁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국정교과서는 절대 안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이족의 역사를 우리가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옛 고구려의 영토를 사용하는 동양 최대의 강국이 됐을텐데, 한자와 한글을 사용하는 뛰어난 민족이 됐을텐데, 조선시대 사대주의, 일제식민지, 남한북한, 군사독재 이딴 거 없을텐데, 미국과 1대1로 맞짱도... 소설이 아니길 바라는 김진명의 글자전쟁 그리고 다른 소설까지, 한동안 그가 말하는 역사 이야기에 빠져 있을 거 같다.
주인공 태민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아닐까 싶다. 역사는 그저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내 앞에 놓인 돈만 보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를 모르는 인간이 되지 말라는 따끔한 회초리. 글자전쟁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더더욱 국정교과서는 반대다.
소설 글자전쟁을 읽지 못했다면, 우선 한자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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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예전 김진명 소설을 몇번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은 정도였는데 요즘도 소설을 쓰시는가 보군요
요즘은 소설을 거의 안 봅니다만 글자전쟁..호기심가는 내용입니다^^
글자전쟁이란 작가는 처음 들어보네요
오늘도 변함없이 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
김진명의 소설은 무궁화꽃 하나만 읽었는데, 뭐랄까, 너무 국수주의적 성향이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솔직한 소감으로는 "어휴, 이 작가는 환단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들을 잘도 캐치해내는구나" 뭐 그런 느낌이었네요.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는 확실하게 제공해주는 것 같습니다. (까칠댓글 지송해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왜곡된 역사... 어떤 민족이던 좋은역사만을 가질 수 없고 그렇기에 발전할 수 있는건데 요즘 보면 정말 답답하네요.ㅠㅠ
김진명 선생님의 책 한번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ㅎㅎ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잘 보내시고 점심 맛있게 드세요.
읽어보지 못한 책이라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 적을 말이 없지만
역사의 중요성은 다시 강조해도 그 중요성에 다 미치치 못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과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역사 '교과서'이니까요.
국정교과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소설은 시기를 잘 맞춰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딱 딱 맞쳐서 나오죠.
영화또한 마찬가지만요. 이야기가 재밌네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ㅎ
비밀댓글입니다
같은생각입니다
으음..울국민들이 깨어나야 이런 모든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네요..천박한 자본에 길들어진..노예근성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아~ 이런 생각을 할때마다..떠나고 싶네요..저기 캐나다로..ㅋㅋ
책은 기회가 되면 읽어보도록 할게요..^^
이 글에 완전 공감합니다. 식민사관에 사로잡힌 줄도 모르고 우리나라 문화와 정신을 왜곡하고 비하하며 스스로 노예임을 자처하는...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것을 캐치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요.. 지워진,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공감 꾸욱 누르고 갑니다아~
멋진 책을 소개 해주셨군요. 리뷰글 잘 읽었네요. 책은 우리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딱 맞는것 같아요. 올해도 양파님 책 많이 읽고 좋은 책 소개도 많이 해주세요
처음에 책제목만 봤을때는 한글에관한 책인줄알았는데 북한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네요!! 그 돈이 뭔지.. 사람을 이렇게까지 피폐하게 만들어 놓는군요..
책을 읽어보면 어느정도는 아는대 안 읽어본 책 이네요 ㅎㅎ..
이번에 서점에가면 꼭 구입해서 봐야할거같습니다.
위에 댓글으 보니, 양파님의 느낌이 많이 느껴져서 꼭 보고싶습니다 ㅎㅎ.
기대되네요! 구매해서 꼭 보겠습니다 !
내용이 재미있어 보이네요.
뭔가 교훈도 얻을 수 있을거 같구요.
제가 한국에 있었으면 바로 서점으로 달려갔을텐데 아쉽네요...
(아냐! 넌 책을 싫어하잖아! 라고 어디선가 들리네요. ㅎㅎㅎ)
이상하게 김진명 소설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네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도 이 작가 소설이 맞나요? 아마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듯.
이 야밤에 양파님네 집에서 연극 포스팅 찾아 헤매고 있어요. ㅎㅎ 초딩녀와 볼 만한 대학로 연극 아시면 추천 요망이요~~
잘보고갑니다.^^
합 읽어봐야겠어요
사실 김진명님의 소설은 어릴적부터 재미있게 보아왔지만...
요즘 시대 흘러가는 것이 참 즐겁게만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ㅠ.ㅠ
김진명 소설은 저 역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만.
역사 의식에 대한 강한 어필이 그의 작품들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그게 좀 불편해서 잘 안읽게 됐었던 것 같은데, 까칠 양파님의 글을 읽고 이 작품이 궁금해졌습니다.
흠.. 덕분에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