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 8개월냉면 (in 역곡상상시장)
고물가 시대, 지갑 열기가 두렵다. 예전에는 밥 잘 사주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인사치레라도 "밥 한번 먹자"라고 안 한다. 하지만, 여기라면 진심을 담아서 "밥 사줄게"라고 말할 거다. 오랜만에 혼밥이 아니라 같이 먹고 싶다. 경기 부천 역곡상상시장에 있는 8개월냉면이다.
가성비는 좋은데 맛이 없다? 조금은 비싸지만 맛이 있다? 가성비도 잡고 맛도 잡았다? 셋 중에 어디가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 번째라고 말할 거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니깐.
고물가 시대에 전통시장도 가성비를 유지하기 힘든데, 8개월냉면은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도 자꾸만 의심이 간다. 평냉을 더 좋아하지만, 이 가격에 이 맛이라면 8개월이 아니라 12개월 내내 함냉만 파고 싶다.
정통 함흥냉면이 5,500원이다. 그런데 더 놀라지 마라~ 곱빼기도 같은 가격이다. 주문 후 면을 뽑아서 삷기 때문데, 주문 시 곱빼기 요청을 하지 않으면 일반으로 먹어야 한다. 고로, 누구처럼 까묵지 말고 제대로 주문하세요~
참, 꽤 맵다고 해서 매운맛 조절이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어렵단다. 그럼 물냉을 드세요하는데, 물냉은 싫다. 왜냐하면 평양은 물, 함흥은 비빔이다.
냉면집 반찬은 대체로 냉면 고명으로 들어가는 무절임인데, 여기는 달큰한 장아찌를 준다. 매운맛에 약하다고 했더니, 육수가 같이 나왔다. 평냉 육수와 달리 뿌옇지만 잡내 하나 없이 시원 깔끔하고 감칠맛도 있다.
아직 먹지 않았는데, 함흥냉면 특유의 쫄깃보다는 질긴 면발이 확 느껴진다. 기본도 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확실히 곱빼기를 먹어야 했다. 냉면을 무지 좋아하는 1인이니깐.
많이 맵다고 하니 위보호를 위해 삶은계란을 먼저 먹는다. 고명은 오이와 무 그리고 배가 있을 뿐, 고기는 없다. 비싼 냉면을 먹을 때도 고기 고명을 먹지 않는 1인이라서 아쉽거나 허전하지 않다. 차라리 없어서 더 좋았다는 거, 안 비밀이다.
가위가 있지만, 면은 절대 자르지 않고 먹는다. 함흥냉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은 좋은데, 매운맛이 서서히 쌇인다. 육수를 마시면 살짝 나은 듯 싶지만, 다시 냉면을 먹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헥헥거리면서도 젓가락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본 주인장 왈, 육수를 부어서 먹으면 좀 괜찮아져요~ 확실히 아까보다는 덜 매운데 쌓인 게 있다보니 그래도 맵다.
처음부터 이렇게 먹었어야 덜 힘들었을 텐데 했더니, 다음에는 비빔이 아니라 물을 주문하고 양념을 달라고 해서 먹으면 된단다. 아하~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육수까지 다 들이키고 싶었으나, 위를 보호해야 하므로 면발만 다 건져먹고 일어났다.
냉면이 매워서 힘들긴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 참을 수 있었다. 어묵선생은 냉면집에 가기 전에 미리 위치 파악을 해둔 상태였다. 육수로는 매운맛을 완벽하게 잡을 수 없었지만, 핫바라면 가능하다. 그래서 냉면을 먹고 계산을 하자마자 바로 이동했다.
핫바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마보꼬에 반찬용 어묵도 있다. 즉석에서 바로 먹는 이들을 위해 머스터드와 케첩 그리고 매운소스가 준비되어 있다.
얼얼한 입안을 잡아야 하므로 매운맛이 1도 없는 깻잎핫바(2,000원)를 골랐다. 머스터드 소스를 살짝 뿌리고 바로 먹는다. 데우지 않고 줘서 식은 핫바는 별로인데 했다. 그런데 한입 베어물고 나니 딱 먹기 좋은 온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뜨끈한 핫바를 말 그대로 허겁지겁 먹었다.
입안에 평화가 찾아왔으니, 제일 좋아하는 청양고추핫바(2,000원)를 바로 골랐다. 청양고추가 콕콕 박혀있는 게 보이지만, 맵지 않고 기름진 느끼함을 잡아낼 정도의 알싸한 맛이다. 냉면대신 핫바만 먹었더라면 전메뉴 털기가 가능했을 텐데, 디저트라서 2개만 먹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고소도로 휴게소보다는 시장에서 파는 핫바를 더 좋아한다.
먹어야 비로소 보인다고 했던가? 만화의 도시 부천답게 시장 벽면에 예전 만화부터 요즘 웹툰까지 전시되어 있다. 역곡상상시장은 다른 시장과 달리 무조건 왕복을 해야 한다. 한 번은 시장 물건을 보기 위해, 또 한 번은 벽면에 있는 만화를 보기위해서다.
햇메밀이 나오면 우래옥에 가서 평양냉면(16,000원)을 먹으려고 했다. 8개월냉면을 몰랐더라면 가격이 무지 사악해도 좋아하니깐 참고 갔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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