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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하지만, 막상 그 곳에 가는게 쉽지가 않네요. 역사 교과서 끝부분에 나오는 내용으로, 시험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았던지라 대충 알았던 그 시대의 아픔을... 직접 가셔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영화 변호인에 나왔던 고문보다 더한 고문이 이루어졌던 그 곳, 인권이라는 말 조차 할 수 없었던 곳, 다시 찾은 나라에서 없어져야 하건만 여전히 아마 지금도 어디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것만 같은 그 곳, 바로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사진은 소니 nex-3n으로 촬영했습니다.)

 

 

 

가는 방법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있습니다.

 

 

 

저는 독립문까지 보기위해서 4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독립문과 함께 서대문 독립공원을 먼저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걸으면 서대문형무소에 갈 수 있으니, 저처럼 4번 출구로 나오셔도 좋을거 같습니다.

 

 

 

서대문 독립공원 안내도입니다. 공원이 그리 큰편이 아니어서, 걷는데 큰 불편함은 없습니다.

 

 

 

독립문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독립문 뒷면이 보입니다. 저 길을 따라서 걸으면 됩니다. 저보다 먼저 가고 있는 저 남자 2명, 저랑 계속 코스가 겹치더군요. 서로 인증샷 찍고 그러기에, 남자끼리 참 잘 다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인이더군요. 일본인 중에 여기를 관광코스로 오는 분들을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했던 행적을 후손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역시 울 나라 대단해. 아니면 울 나라 나쁘다. 직접 물어보지 못해 알 수는 없었지만, 후자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래야 제 맘이 편할테니깐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기념 석조물입니다. 아쉽게 갑오개헉은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했죠. 그러나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혀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독립문을 완성했다고 하네요.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독립신문 발간과 독립협회를 창립한 서재필동상이 있습니다. 독립문을 세우는데 주력한 인물로, 국민의 성금을 모아서 세웠다고 합니다. 더불어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해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3·1운동 기념탑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야 하는데, 혼자라서 속으로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본 벚꽃은 반갑지가 않네요. 뭐, 벚꽃이 잘못한거 아닌데 말이죠.

 

 

 

서대문 독립공원을 지나서 직진하니,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그 곳의 현실을 직접 맞이하러 갑니다.

 

 

 

이 벽을 사이에 두고, 시대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분들을 생각하면 들어가기 전에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관람 동선안내도입니다.

 

 

 

이 날, 강원도 영월에서 중학생들이 왔더군요. 현장교육같던데, 아이들은 이 곳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단순한 나들이로만 생각하지 않길 바래야겠죠.

 

 

 

들어가는 곳과 나오는 곳이 다릅니다. 본격적으로 아픔의 현장에 들어갑니다.

 

 

 

성인은 3,000원, 학생은 1,500원입니다. 20명 이상이면 단체할인이 된다고 하네요. 인증샷 찍고 들어갑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http://www.sscmc.or.kr/newhistory/index_culture.asp 

 

 

 

어딜가나 기념사진이 중요하군요. 아이들과 같이 다닐까 걱정했는데, 겹치지 않기 위해 빨리 들어가야 겠네요.

 

 

 

서대문 형무소 역사전시관 1층입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의 역사가 사진과 유물 그리고 판넬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억압과 공포의 상징인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고 합니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민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민에 대한 억압과 처벌의 장소로 이용되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 순국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뤘던 곳입니다.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입니다.

 

 

 

2층에 위치한 민족저항실Ⅰ입니다. 1910년 강제병합과 1910~1945년에 걸친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민족저항실Ⅱ입니다. 3·1독립만세 운동이후 수감인원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3천여 명에 육박한 수감인원으로 일제는 서대문 형무소의 옥사를 대대적으로 넑혀나갔다고 합니다. 이 전시실의 모든 벽면은 독립운동가 수형기록표를 통해 이 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분들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민족저항실Ⅲ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원산 총파업, 간도공산당,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인 경성트로이카, 제2의 만세운동이었던 6·10 만세운동, 신간회, 수양동우회, 단파방송 청취사건, 조선어학회 사건, 성서조선에 대한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형장 가는길과 시신수습실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최근까지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역사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역사 공부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젠 직접 현장을 만나봐야겠죠. 고문의 현장인 지하로 내려갑니다.

 

 

 

이 곳은 서대문 형무소 보안과청사 지하실로,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독립운동가를 취조했던 공간입니다. 각 방은 취조실과 임시구금실, 독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악명 높은 지하고문실입니다. 손톱찌르기 고문이 있었는데,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었던 고문이라고 하네요. 상자고문은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해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벽관고문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입니다. 혼자서 고문실을 다니니, 무서워서 혼났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도 힘이 드는데,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변절자가 됐을거 같네요.

 

 

 

중앙사는 1923년 제 10, 11, 12 옥사와 연결하여 옥사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신축되었던 2층 건물입니다. 1층은 간수들의 사무공간으로 이용되었고, 간수들은 이 곳을 통해 옥사로 출입했다고 합니다. 2층은 전체 공간을 강당으로 꾸며 수감자들의 교회당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사진에 이상한 틀 모형이 보이시죠. 이건 가다 밥이라는 형무소식 식사(틀밥)라고 합니다. 개인별 형량과 노역의 강도에 따라 1~9등급으로 차등을 두어 배급하려고 저렇게 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등급별로 깊이가 다른 원통형의 틀에 밥을 찍어 배급했다는 합니다. 이 때문에 감옥의 밥을 일본어로 틀이라는 뜻의 가다를 붙여 '가다 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재소자들의 스케줄이 보이시나요. 휴식이 없네요.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일하고 그리고 자면 끝이네요.

 


 

10, 11, 12 옥사입니다. 이 곳은 1922년 2층으로 지어진 옥사로,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수감자가 급증하자 신축되었던 건물입니다. 천정에는 수감자들의 움직임을 잘 보이도록 복도를 밝게 하기 위한 채광창이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특히 12옥사에는 먹방이라는 독방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약 0.7평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내부는 24시간 내내 빛이 한줌도 들어오지 않아 마치 먹물처럼 깜깜하다 해서 '먹방'이라고 불렀다네요. 더불어 마룻바닥 끝부분에 구멍을 내어 용변을 밖으로 처리하게 하는 등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공간이라고 합니다. 타벽통보법을 아시나요? 감방 벽을 딱딱 두드려 미리 정해 놓은 암호로 수감자들 사이에 의사 소통을 하는 방법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수감되었을 때, 그 옆방에 먼저 수감되었던 김정련 선생이 타벽통보법을 알려주다가 외곽을 순찰 중이던 간수에게 들키자 김정련 선생이 똥통을 뒤집어엎고 소란을 피워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의 노역이 이루어진 공작사입니다. 옥사보다는 넓고 깨끗하네요. 그리고 사각연못은 일제강점기 재소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나전칠기 공장이 있던 장소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빨래터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옥사를 나오니 햇살이 참 좋네요. 옥사 안은 몸도 마음도 너무 추웠거든요.

 

 

 

통곡의 미루나무입니다.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었다고 합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해,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사형장은 촬영금지라고 해서 담지 못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긴 봤는데, 너무 이상했어요. 갑자기 몸이 아파왔거든요. 그래서 사형장을 급하게 나오니 시구문이 보였습니다. 시구문은 시신을 외부로 몰래 반출하기 위해 뚫어 놓은 비밀 통로라고 합니다. 200미터나 된다고 하네요. 현재 40미터 정도 복원했다고 합니다. 역시나 눈으로만 봤습니다. 아픈 현실 앞에서 저는 내 몸 아프다고 후다닥 보고 나왔네요.

 

 

 

격벽장입니다. 이 곳은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에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칸막이 벽(격벽)을 만들고, 각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해 운동을 시켰던 일종의 운동시설입니다. 참 가지가지 하네요.

 

 

 

여옥사는 형량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사형수를 수감했던 여구치감이라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가 수감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유관순 열사외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곳은 수감자들의 밥을 짓기 위해 만들어진 취사장입니다. 현재 사무실, 뮤지엄샵, 강의실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취사장과 건축물 부재를 보니 모든 관람이 끝이 났습니다.  몇개 빠진 부분도 있지만, 최대한 동선대로 다 담아봤습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군요. 영화나 드라마로만 봤던 서대문 형무소를 직접 가서 보니, 우리의 아픈 역사가 뼛속에 새겨지네요. 그리고 다시한번 다짐합니다. 아픈 우리의 역사지만,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될 우리가 갖고 갈 역사하는 사실을... 더불어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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