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때마다 가야지 했는데, 봄에 가고 가을에 다시 갔다. 여름만 놓쳤나 했는데, 작년 봄에 왔고, 올 가을에 다시 왔다. 지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왔으니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저 하늘만 봐도 멋진 가을, 철길에서 만나 가을은 베리굳, 수목원에서 만난 가을은 베리베리굳이다. 서울시 구로구 항동에 있는 항동철길과 푸른수목원이다.
지하철 7호선 천왕역 3번 출구로 나와 직진을 한다. 철길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직진을 해야 한다. 그렇게 쭉 걷다보면, 철길 교차로에서 볼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잘 찾아 온거다. 여기서 길을 건너서 저기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항동철길이 시작된다.
짠~ 주택가 옆 철길이라서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작은 살짝 미약하나, 끝은 창대할테니 걱정하지 마시라.
손잡은 커플사진이 대세라고 하던데, 혼자 왔으니 여기까지...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아, 왜냐하면 혼자서도 잘 노니깐.
살짝 코너를 돌아서 다시 쭉 가다보면 온전한 철길이 나타난다.
요렇게...
철길다운 철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철길의 낭만과 가을의 정취를 함께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밤송이가 잔뜩, 근데 속 빈 강정.
옆으로 푸른수목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지만, 이번에는 철길 끝까지 한번 가보기로 했다. 작년에 왔을때, 아파트 공사중이라 철길을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혹시 공사로 인해 철길을 없애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항동기차역, 저기서 인생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진짜 많은데, 나에게는 그저 배경일 뿐이다. 왜냐하면 철길을 메인으로 전체적인 풍경이 주인공이니깐.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철길처럼 보여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고즈넉한 사찰에 온 듯, 한적하고 고요하니 참 좋다.
그저 투박한 철길인데, 걷다보면 신기하게도 몸도 맘도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저 끝에 뭐가 있을까 빨리 가서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합지만, 여기만 오면 자동적으로 느리게 천천히 걷게 된다. 다른 곳에서는 경쟁을 해야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지만, 여기서만은 일등도 꼴찌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내키는대로 했으면 좋겠다.
나라서 아름답구나.
그래서 여기 왔잖아.
아이의 보폭에 맞춰 걷는 엄마와 아빠, 한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절대 짜증을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빨리 갈 필요가 없는 항동철길이니깐. 빨리 가다가는 선로에 걸려서 넘어질 수 있다.
기차가 다녔던 철길에 이제는 사람이 다닌다. 기계적이던 철길이 이제는 사람내음이 나는 철길로 재생이 됐다. 그 옆에 수목원이 있으니, 한동안 아니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을 거 같다. 4차산업혁명이 와도, 여기는 지금 그대로 살아 남았으면 좋겠다.
어느덧 끝이 보인다. 정말 천천히 느리게 걸었는데, 어느새 다왔다. 그래도 아직 남았으니, 마지막까지 무진장 느리게 천천히 걸어갔다.
시작할때 봤던 그 무언가가 다시 있다. 항동철길은 여기까지다. 아쉬움은 들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목원에 가야하고, 겨울에 다시 올테니깐.
철길 위로 비행기가~ 내년 코레일 사진 공모전에 출품해볼까나. 요거요거 무지 찍기 어려운데, 운이 좋았다.
철길이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철길은 시작됐다. 그런데 관리를 안한 탓인지 여기는 못가겠다. 풀독 오르기 딱 좋아 보인다.
푸른수목원으로 들어왔다. 아직은 녹음이 짙은 수목원인데, 곧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가겠지.
나만의 시크릿 가든이었음 좋겠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에 따라 꽃은 춤을 춘다.
들어오는 순간 공기 맛부터 달라진다. 돌이 많은 철길에 비해서는 걷기 좋은 길이다. 그래도 빨리 걸으면 안된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 맛있는 공기를 더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깐. 나무마다, 꽃마다 각각 이름이 쓰여져 있지만, 굳이 자세히 바라보지 않는다. 알면 더 좋겠지만, 여기서는 나무가 아니 숲을 봐야 한다. 마치 풍경화를 보는 거처럼.
마지막 잎새가 되려면,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억새는 바람이 불면 꺄르르 꺄르르 웃기 바쁘다.
정말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상 최악의 폭염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어느새 날이 선선해지고, 이내 나무는 물들어 간다. 그리고 곧 모든 잎이 떨어지면 눈이 내리겠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계절의 변화는 그저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벌써 몇번째 풍경화를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걸을때마다 풍경화가 계속 바뀌니, 작품을 셀 수가 없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 있다니, 무섭잖아.
푸른수목원의 또다른 장점은 널따란 저수지가 함께 있다는 거다. 지난번에 왔을때는 무성한 갈대로 인해 물이 보이지 않았는데, 가을 하늘을 온전히 품고 있는 맑고 깨끗한 물이었다니 놀랍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던데, 요즘 뜨고 있는 숲세권으로 딱 맞는 곳이 아닐까 싶다.
봄에 핀 장미를 가을에 만나니, 전성기때 모습은 아니지만, 여전히 장미는 장미답다.
항동철길로 시작해 푸른수목원으로 마무리, 늘 같은 패턴인데도 늘 대만족이다. 억새풀도 좋지만 요즘 대세인 핑크뮬리가 내년에는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꽃무릇도, 한곳에서 다 보고 싶어하는 이맘, 이기적이겠지. 그럼 핑크물리만이라도... 그런데 경주나 양주까지 가지 않아도, 핑크뮬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다음 가을 여행이자 나들이 주제는 핑크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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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 봄에 다시 만난 항동기찻길 & 푸른수목원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74)
2014/11/05 -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19] 항동 기찻길 & 푸른수목원 - 가을의 절정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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