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역사덕후로서 남들과는 다른 여행을 떠나고 싶었나 보다. 지난 군산에 이어 이번에는 포항이다. 두 도시의 공통점은 항구도시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다. 군산은 히로쓰 가옥과 동국사라면, 포항은 여러 집들이 모여 거리가 됐다. 그동안 포항 구룡포는 과메기였는데, 이런 곳이 있었는지 이번에 처음 알게됐다.
포항으로의 첫 여행, 과메기 먹고, 고래고기 먹고, 문어 먹고, 물회로 입가심. 그저 먹부림여행만 생각했다. 과메기의 본고장인 구룡포로 선택한 후, 밥 먹고 소화 시킬겸 볼거리를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단순히 일본식 가옥이 아니라, 거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즉, 일본식 가옥으로 되어 있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역시 항구도시에는 어김없이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구나 했다. 먹부림에서 역사여행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포항역에서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까지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역에서 목적지까지 한번에 가는 좌석버스가 있지만, 배차시간이 엄청 길다. 운이 좋으면 바로 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107번을 타고 죽도시장에 내려 배차시간이 15분인 200번 좌석버스로 갈아타는게 훨씬 빠르다. 차가 있다면 필요없는 정보지만, #혼자여행 #역사여행 #걷기여행을 추구하기에 꼭 필요한 정보다.
구룡포는 동해 최대의 어업전진기지였다고 한다. 일제가 이곳을 가만히 둘 바보가 아니니,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권역의 어업을 관할하면서 일본인들의 유입이 늘어났다. 그 당시에는 병원, 백화상점, 요리점, 여관 등 거리 규모가 엄청났다. 그러나 광복 후, 화풀이로 집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고, 세월이 흐르면서 각종 개발로 인해 많은 집이 철거되고 훼손됐다고 한다. 그랬던 이곳이, 현재는 457미터 거리에 28동의 건물을 보수해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로 명했다. 역사적으로 남겨둬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으니깐. 이색적이고 독특한 거리는 맞는데, 그 속에 담긴 역사는 알고 봤으면 좋겠다.
가운데 놓여있는 돌계단 양옆으로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확실히 안으로 들어보니, 다름이 느껴진다.
교토에 갔을때, 여기와 비슷한 거리를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만화에서 본듯한 거리인 거 같아 신기해하면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같은 감정은 확실히 아니다. 조성된 거리이지만, 각 집마다 누군가 살고 있으니 조용히 다녀야 한다.
사람이 없을때 찍은 사진이 아니라, 정말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반갑게도 비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오후에 온다고 해서 가랑비정도 오겠지 했는데, 은근 세찬 비다. 혹시나 싶어 일정을 주로 실내로 잡았고, 실외는 여기 하나 뿐인데 야속하게도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그나저나 여명의 눈동자가 왜 거기서 나와? 설마, 혹시 했는데,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유희장을 하던 곳으로,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라고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에 가서 찍었구나 했는데, 그곳이 포항이었음을 이제야 알게됐다.
일본인가옥 거리는 여기까지다. 비 올때 사진 찍는 건, 넘 싫다. 고로 밖에 있지 말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야한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걸으니 운치는 있는데, 살짝 처량함도 느껴진다.
가옥 거리를 걸었으니, 이제는 집 구경을 할 차례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군산 히로쓰 가옥과 달리, 이곳은 매주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집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다. 관람료는 당근 무료다.
아담한 2층 집인데, 딱 봐도 우리 스타일은 아니다.
이걸 복도식이라고 해야 할까? 좁고 긴 마루가 있고, 그 옆으로 방들이 있다. 관람은 1층만 가능하고, 2층은 출입금지다. 저 마루를 보고 있으니, 우리 대청마루가 얼마나 좋은지 새삼 더더더 느껴진다.
원래는 부엌과 식당이 있던 공간이었는데, 외부에 있어 철거된 화장실을 이곳에 복원했다고 한다. 딱봐도 어떤 용도인지 알 거 같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자, 안방이 나왔다. 가운데 조상을 모시는 부츠단이 있고, 시계와 벽장, 고다츠 등 그당시 사용했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방을 지나자 또다른 방이 나왔다. 다다미를 깔아 놓아 낮에는 거실, 밤에는 침실로 하시모토의 딸들이 사용했던 방이라고 한다.
1929년 포항시 지도
1930년 구룡포지도
그저 대단하고 엄청나다. 참 꼼꼼하게도 들어왔구나 싶다. 군산에서는 쌀을, 포항에서는 수산물을 참 많이도 해쳐먹었겠구나 싶다.
원래는 집무실이었다는데, 반으로 나눠서 부엌과 객실로 복원했다. 부엌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구나 했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난방을 하는 우리와 달리 바깥 벽 쪽으로 나 있다.
비가 오니, 나가기 싫다. 이렇게 많이 올 줄 알았으면 출발하지 않았을텐데, 왔으니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알지만 잠시만 빗소리 좀 듣고 가야겠다.
가장 먼저 봤던 돌계단 앞으로 다시 왔다. 두번째 목적지인 구룡포 공원과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에 가려면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참 특이하구나 했는데, 역시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일본인들이 세운 돌계단으로 왼쪽 61개 오른쪽 59개 등 모두 120개의 돌기둥이 있다. 기둥마다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광복 후 일본인들이 떠난 이후, 구룡포 주민들은 시멘트로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리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 세웠다. 지금은 구룡포 공원에 있는 충혼각을 세우는데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당일치기로 떠난 포항, 비가 와서 살짝 주춤했지만 아직 가야할 곳이 많이 남아있다. 우선, 저 돌계단부터 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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