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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으로의 짧은 여행. 백년이 넘었다는 시장에 갔는데, 딱히 먹을게 없다. 아니 있었다. 순대국밥, 소머리국밥 그리고 팥죽이 있는데, 안 먹는 음식. 늦은 점심으로 뭐 먹을까 하다가, 택시기사분이 추천한 냉면 집으로 향했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니면 추천한 냉면대신 딴 걸 먹어서 그랬나? 얼음 동동 육수만 기억난다. 정읍 샘고을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노식당이다.

 


샘고을시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 저 샘고을시장 가는데, 맛집 있음 추천해주세요."

"거기는 딱히 먹을만한 곳이 없는데..."

"그럼 정읍터미널 근처는요?"

"거기는 더 없죠. 차라리 신도시나 시내로 나가면 많이 있는데, 거기 안간다고 하니, 냉면 어때요?" (냉면이 나오기 전에 순댓국과 소머리국밥이 먼저 나왔지만, 못 먹는다고 해서 차차선으로 냉면을 추천중.)

(계속해서 택시 기사왈) "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고, 거기는 뭐랄까? 한입 먹으면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죠."

"오호~ 제가 원하는 곳이네요. 그럼 비냉과 물냉 중 뭘 먹어야 하죠."

"저는 주로 비빔냉면을 먹어요."


굳이 정읍까지 와서 냉면일까 싶어, 우선 시장 구경부터 한 후에 괜찮은 곳을 발견하면 거기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정읍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인데, 먹거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팥죽이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 갔지만, 오후 3시까지만 한단다. 다른 곳으로 갈까 했지만, 동짓날에도 안 먹는 팥죽을 힘들게 정읍까지 와서 먹어야 하나 싶다. 어디가도 다 있을 거 같은 빈대떡도 없고, 칼국수도 없고, 나중에 안 사실로 짜장면이 있었다는데 그때는 몰랐다. 아무래도 기사분이 추천한 냉면을 먹어야 하나보다.



오후 4시가 지나면, 어느 식당이나 한산하다. 일노식당이 맘에 들었던 한가지는 종편은 종편인데, JTBC 사건반장을 보고 있다는 거. 대체적으로 채널0과 티비00을 보는 곳이 많은데, JTBC라니 완전 맘에 든다. 혼자 왔다고 하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주인장에게 뭐가 좋은지 물어봤다. 주인장 왈, 시원한 거 먹고 싶은 물냉을, 매운거 먹고 싶은 비냉을...



아까 분명히 택시기사분이 비냉을 추천했는데, 때아닌 초여름 날씨로 인해 더위를 먹었는지 시원한 거에 순간 맘이 동했다. 다른 테이블을 봐도, 다 비냉을 먹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더위로 인해 기억력에 사고력까지 떨어졌는지, 물냉을 주문했다. 



자가 제분기를 갖추고 있나 싶을만큼 나오는데 한참 걸렸다. 나중에 계산할때보니 주방을 슬쩍 봤는데, 제분기는 없었던 거 같다(확실하지 않음). 물냉면답게 살얼음 동동 육수가 눈에 퐉~ 차디찬 스댕그릇도 넘 맘에 든다. 잘라줄까요 물어보지 않고, 가위가 함께 나왔다. 냉면을 먹을때, 가위는 쓰잘데기 없는 존재라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커다란 배를 치우고 나니, 삶은 계란과 오이채, 무김치 그리고 양념장 등장. 앗~ 그런데 면을 보니,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아닌 칡냉면이다. 



서울에서도 잘 안 먹는 칡냉면을 정읍까지 와서 먹어야 하나?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칡냉면의 원조가 바로 전라북도 남원이란다.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지리산을 중심으로 칡냉면을 파는 식당이 밀집하기 시작했고, 지리산 관광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유명해졌다고 한다. 칡냉면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산내, 함양, 마천 등에서 채취한 칡을 이용하여 만들었단다. 남원은 아니지만, 같은 전북이니 정읍도 칡냉면이 유명한가보다. 



식초를 첨가하고 양념장을 잘 풀어 놓으니, 면보다는 칼칼하고 맛깔난 육수부터 눈길이 간다. 젓가락을 들어야 하는데, 차디찬 스댕그릇을 들고 벌컥벌컥 육수부터 마셨다. 짠맛이 강했지만, 시원하고 또 시원한 육수가 더위로 지친 내 몸을 깨워준다. 육수만 따로 텀블러에 담아 달라고 할만큼 좋았는데, 면은 모르겠다.  칡냉면이니 면에서 칡맛이 나야 하는데, 아주 희미하게 쌉싸래한 맛은 날뿐, 잘 모르겠다. 양념장을 풀지 않고 면부터 먹었더라면 좀 달라졌을 거 같은데, 저 상태로 면의 맛을 구별해내기는 어렵다. 


그나저나 기사분이 알려준 감칠맛을 느끼기에는 육수가 너무 얼음장 같다. 혹시 감칠맛이 육수가 아니라 양념장일까? 그런데 비냉대신 물냉을 먹고 있으니,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거 같다. 여기에 더하기, 테레비 앞에서 꼼짝 안하고 계신 어르신처럼 나도 눈은 티비에 고정한채, 먹고 있으니 이게 냉면인지, 국수인지 구별이 안된다. 냉면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건, 아무래도 새정부때문이다. 냉면맛을 느끼지 못하게 할만큼, 요즘 뉴스가 넘 맛있잖아요~



이날 사건반장 주제는 5.18 기념식이었다. 눈물나게 만들고, 뿌듯하게 만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느라, 냉면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뭐~ 그래도 괜찮다. 샘고을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모시왕송편이 질어도 괜찮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준다면야~ 이정도쯤이야 괜찮다. 


택시기사분이 추천해준 비빔냉면을 먹었더라면, 감칠맛을 충분히 느꼈을테지만, 시원한 물냉으로 갈증을 해소했으니 괜찮다.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엄청나게 물을 마셔대야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좀 짜게 먹으면 어때? 감칠맛을 느끼지 못했으면 어때?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 매운비빔냉면을 먹으면 되지. 요즘 내 까칠농도가 많이 옅어진 듯 싶다. 까칠양파에서 순한양파가 되면 개성이 사라질테니, 다시 까칠모드를 가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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