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낳은 어머니 but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을 모신 사당 칠궁
영조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숙종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무수리 출신의 후궁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살뜰히 모셨던 영조(연잉군)는 숙빈 최씨가 죽자, 궁궐 후원에 사당을 지어 애도를 했다. 20년이 흐르고, 사당을 승격시켜 육상궁이란 묘호를 지어 올렸다. 1908년 숙빈 최씨와 비슷한 처지의 사당 다섯 곳을 제전을 간소하게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왕의 어머니이지만, 위패를 종묘에 안치할 수 없었던 일곱 명의 후궁을 모신 곳이자, 그녀들의 혼백을 달래기 위헤 세워 준 사당, 칠궁이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라는 책을 읽다가 칠궁의 존재를 알게 됐다. 왕의 어머니인데도 후궁이라서 종묘에 위패를 놓을 수 없다니, 뭔가 비정상스럽지만, 21세기에도 계엄이라는 비정상이 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장희빈의 아들이 숙종이 승하한 후, 경종이 됐지만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이복동생이었던 연잉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다.
숙종은 연잉군에게 미천한 무수리 출신이 아니라 명문 안동 김씨 집안 출신의 영빈 김씨에게 수양자로 보낸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를 수 없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숙빈 최씨는 죽기 전, 지병으로 인해 연잉군의 거처에서 같이 살게 된다. 그 7년은 모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거다.



건립 기록이 전해지지는 않으나 숙빈묘라는 이름으로 육상궁이 처음 건립된 영조 초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여기에 영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안내글이 과거형으로 끝나니, 지금은 어진이 없을 테고, 내부는 관람이 안된다. 냉천정은 영조가 어머니 제사를 위해 몸을 가다듬던 곳으로, 건물 뒤편에서 퐁퐁 솟아나는 냉천 찬물로 영조 이래 왕들이 갈증을 적셨다.

냉천에서 나오는 물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화강암의 장대석을 쌓아 만들어졌으며, 수심은 0.9m이다. 연못의 남쪽 면에는 자연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연못의 이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냉천은 냉천정 뒤편에 있는 우물로, 장대석에는 재위 3년째가 되던 1727년 3월 육상궁에 행차한 영조가 지은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육상궁은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다. 1725년(영조 1) 경복궁 북쪽인 현재의 자리에 영조는 숙빈묘를 세웠다. 1744년(영조 20)에 묘호를 올려 육상묘라 했고, 1753년(영조 29) 묘를 궁으로 승격해 육상궁으로 부르게 됐다.
연호궁은 추존 왕인 진종(효장세자)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사당이다. 정조가 즉위 후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고 정빈을 위해 사당을 세워 연호궁이라 했다. 1908년(고종 7)에 육상궁에 합사됐다.


이안청은 신주를 임시로 보관하던 곳으로, 육상궁과 연호궁의 앞쪽에 동서로 대칭되게 마주 보고 있다. 즉, 같은 사진을 좌우 반전시키지 않은 엄연히 다른 사진이다.



덕안궁은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의 사당이다. 순헌 귀비 엄씨는 1897년(광무 1)에 영친왕을 낳은 뒤 귀인으로 책봉됐고, 고종이 엄씨가 거처할 궁으로 경운궁(덕수궁) 안에 지어 경선궁이라 했다. 1911년 순헌 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난 뒤, 경선궁을 덕안궁으로 개칭했다. 1913년 태평로에 사당을 새로 지어 옮겨 모셨다가 1929년 육상궁으로 옮겼다.



저경궁은 추존 왕인 원종의 어머니 인빈 김씨의 사당이다. 인빈 김씨는 선조의 후궁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을 낳았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면서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했다. 1870년(고종 7) 유비박씨의 사당인 경우궁 안 별묘로 옮겨졌다가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대빈궁은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사당이다. 1701년(숙종 51)에 희빈 장씨가 사사된 후 장씨의 신위를 정동에 모셨다가 1722(경종 2)에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면서 경행방에 사당을 세웠다.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선희궁은 추존 왕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사당이다. 영조는 1764(영조 40)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사당을 의열묘라 했다. 정조는 1788년(정조 12)에 묘호를 선희궁으로 고쳤다.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경우궁은 순조의 어머니이며 정조의 후궁인 유비 박씨의 사당이다. 1822년(순조 22) 유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창경궁 도총부 안에 신주를 모시고 현사궁이라 했다. 1824뇬(순조 24)에는 별묘를 세워 경우궁이라 했다. 1886년(고종 23)에 인왕동으로 옮겨지었다가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재실은 제례를 준비하는 건물이다. 풍월헌과 송죽재라는 두 개의 현판이 동서로 걸려 있으며, 연결채로 이어진 뒤편에는 삼락당이 있다. 삼락당과 풍월헌은 1753(영조 29)에 영조가 육상궁에 예를 올렸다는 기록이 처음 보이므로 이 무렵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안내문에 나와있다.




그래서 뒤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오니 육상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중문이 나온다. 육상궁만 있었을 때는 풍월헌에서 제례를 준비하고, 이 길을 따라 육상궁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칠궁을 걷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듯한 건물이 계속 따라다닌다. 너의 이름은 청와대 영빈관이다. 참, 칠궁은 청와대 무장 공비 습격 사건 이후에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했다가, 30년도 훨씬 지난 2001년 말부터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됐다고 한다.

따로 출입문이 있고, 여기는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인 듯한데, 관계자 중 한 명이 문을 열어놓고 들어왔다. 혹시 여기로 나가도 되지 않을까? 밖으로 나와서 사진을 찍을 때까지 누구 하나 막지 않았다. 종묘에서도 그러하듯, 칠궁도 경건한 마음으로 다녔다. 참, 매년 3월 넷째 주 토요일에 칠궁제를 지낸다고 한다.
- 저자
- 이영춘
- 출판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출판일
- 2013.12.31




칠궁에 가지 않았더라면 주한 교황청 대사관의 존재를 몰랐을 거다. 4월 24일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며 조문할 기회조차 놓쳤을 거다. 방명록은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묵례만 하고 나왔지만, 조문객에게 나눠주는 포토카드는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어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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