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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가 아닌 종로 ㅋㅋㅋ

 

10시를 앞둔 홍대 주차장 골목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의 전말을 공개하고자 한다. 지인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홍대지하철 역으로 향해 걸어가던 중 왼쪽 종아리 부근에 시꺼먼 무언가가 다가와 부딪혔다. 첨에는 같이 가던 일행이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장난치지마'라고 말해주려고 뒤를 돌아서다 아직 다 돌지도 못했는데 옆으로 꺼먼 세단이 보였다.

 

사람 많은 홍대, 특히 주차장 골목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차보다는 사람 우선으로 차들이 알아서 피해간다. 좀 전에도 2대의 차가 잘 피해가기에, 이 차도 그럴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교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여백의 미가 하나도 없이 세단의 오른쪽 모서리 부분이 다가왔던 것이다. 분명히 스쳤다. 아니 분명히 부딪혔다. 누가 뭐래도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그런데 이 느낌은 뭐지? 분명히 차가 내 왼쪽 무릎 부위를 쳤는데, 왜이리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일까? 설마 벌써 마비증세가 온거야. 아 그래서 교통사고를 무섭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일행이 다가와 괜찮아 라고 물어봤다. 그래서 한발 한발 걸어보니 걸을 수 있기에 마비 증세는 아니구나 했다. 그저 당황하고 놀랐던 거 같다. 내 옆에 차가 바로 보였다는 사실에 말이다.

 

"이거 교통사고 맞죠. 나 사고 당한거죠"라고 말하고 있는데, 차는 내 옆을 지나쳐 갔다. 어~ 어~ 저거 뺑소니라고 말하려는 찰나 비상등을 켜고 차주가 내렸다. 그리고 다가와 "괜찮아요?"라고 물어봤다.

 

음 지금은 괜찮은거 같은데, 이거 그래도 교통사고잖아. 그리고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훨씬 크다고 하니깐, 지금은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하면 안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괜찮은거 같은데, 그래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럼 제가 명함을 드릴게요. 혹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주세요."

 

차 뒷문을 열어 명함을 꺼내 주기에 받았다. 그리고 그 차는 사라져 갔다. 그런데 차종이 BMW였다. 명함에는 식품관련 회사의 대리로 나와 있던데, BMW를 몰고 다니다니, 돈 좀 있는 집 아들인가 하면서 가는 차를 그저 바라만 봤다.

 

그런데 BMW를 보내고 난 후 홍대역까지 걸어오는데, 무릎과 새끼발가락에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역시 교통사고 여파는 늦게 온다고 하더니, 나 진짜 무슨 문제가 난게 아닐까 하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같이 걷던 일행에게 아프다고 하니, 내일 병원에 가라 그리고 정밀진단을 받고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냥 입원하라고 알려줬다.

 

딱히 그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입원해야 되냐고 물어보니, 입원을 해야 합의를 할 수 있고, BMW는 아마도 보험처리를 하려고 할테니 당연히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합의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일행에게 다시 물어보니, 2백정도 했다.

 

지하철 역까지 잘 걸어온 것만 봐도 딱히 심한 상태는 아닌거 같지만, 그래도 확 입원해 버릴까? 그리고 공짜 돈 좀 벌어볼까(합의금을 받을까)? 아주 짧은 시간 흔들렸다. 그러나 까칠하지만 터무니없는 행동은 하지 않은 인간인지라, 돈때문에 자해공갈범이 되기는 싫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자해공갈범은 아니지만, 아프지도 않은데 굳이 입원까지 해서 돈을 받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교통사고인지라, 내일 아침 일어나서 다리에 멍이 있거나, 뻐근하다거나, 잘 걸을 수 없게 되면 그때는 입원을 하려고 했다. 확실하게 아프니깐 말이다. 그리고 맞이한 다음날 아침, 교통사고가 났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어제 아침처럼 기지개 한번 거하게 해주고, 스트레칭으로 다리를 풀어주고 공복에 물 한잔 마시고 그렇게 아무일 없이 보냈다. 그리고 세수하다가 아참 나 어제 교통사고 당했는데, 그러면서 왼쪽 다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만져보고 눌러보고 멍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그리고 아팠던 새끼발가락도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 BMW가 완전 천천히 운전을 했던거 같다. 하긴 홍대 주차장 골목은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깐 말이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일행들은 모두다 증인이 되어 주기로 했고, 명함도 받았고 입원만 하면 되는데, 이런 후유중은 커녕 사고가 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으니 액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행 중 강력하게 입원을 원했던 분에게 아프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야 겠죠라고 문자를 보내니, 걍 넘어가심이라고 답변이 왔다. 그래 맞다. 액땜으로 여기기로 했으니, 가볍게 넘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BMW가 좀만 빨랐어도, 무릎 연골이 그냥 날라갔을텐데 내가 운이 좋긴 좋은가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사고로 인해 남녀가 만나고 서로 사랑을 하고 뭐 그런 로맨스같은 일들이 생기는데, 현실은 전혀 로맨스가 아니다. 차는 BMW이었지만, 차주의 비주얼은 흡사 힘 좀 쓰는 그룹에 넘버4같은 인상이었다. 자해공갈하다가 내가 되려 당할 수 있는 그런 인상이었다. 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암튼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과 너무 다름을 이번에는 액션까지 하면서 몸소 체험을 했다.

 

앞으로 닥쳐올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다른 고생으로 미리 대신함을 뜻하는 액땜, 그래 나는 이걸로 올해 액땜을 다 한거다. 이제는 진짜 좋은 일만 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BMW에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문자라도 보내줘야 하나? 그냥 둬도 괜찮은 건가? 이거 오지랖이겠지. 그 사람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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