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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하기 위해서 아직 먹지 못한 작년 김치를 해결해야 한다. 양 조절이 안 되는 어무이인지라 먹어도 먹어도 김장을 할 때가 되면 전년도 김장김치가 엄청 많이 남게 된다. 시큼한 냄새에 배추인지 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은 녀석은 눈물을 머금고 과감히 버려야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녀석들은 김치찌개에 고등어 김치찜에 여러가지 음식으로 재탄생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냥 두고 먹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럼 계속 계속 김치를 묻기 위해 땅을 계속 파야 하고 세월이 좋아져 김치냉장고라는 기특한 녀석을 만나 땅을 팔 이유는 없어졌지만, 매년 새로운 냉장고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신상을 위해 구식은 사라져줘야만 한다.

해도 해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김치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바로 만두라는 멋진 녀석으로 재탄생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우선 김장이 먼저이니깐, 항아리에 남아 있는 김치를 넓고 큰 대야에 모셔둔다. 그리고 제발 조금만 하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또 엄청난 양의 김장을 준비하신다. 4식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올해도 어김없이 온 식구와 고모, 이모 등등 집안 행사가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냥 옆에서 잔 심부름만 하고 먹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만두도 TV보면서 자다가 먹으라고 부르면 일어나서 먹으면 되었다. 그냥 그렇게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후부터 신데렐라가 되었다. 아직 김장에 투입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그날은 제외였다. 그러나 김장 후 일주일이 지나면 서서히 그분의 장바구니에 두부와 당면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즉 우리집 만두 시즌이 찾아 온 것이다.

 

우리 집 만두의 속 재료는 우선 엄청난 김장김치다. 그리고 김치와 같은 비율의 돼지고기, 두부, 숙주, 파, 양파, 부추가 들어가고 마지막에 엄청난 양의 당면이 들어간다. 원래 이북식 만두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당면을 넣는다. 맛도 맛이지만, 당면이 수분을 먹는 역할을 하는 지라 김치에서 나오는 수분을 먹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김치에서 수분이 나올까 이유는 내가 손아귀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얼음장 보다 찬 김치를 쏭쏭쏭 완전 잘게 썰어야 한다. 칼질이 끝나면 가장 힘든 작업인 탈수를 해야 한다. 내 손아귀에 가능한 정도의 김치를 면 보자기에 넣고 모든 힘을 다 총동원해서 짠다. 이때 잘 짜면 만두소에 수분이 생기지 않지만, 손 힘이 약한 탓에 늘 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당면이 필요하다.

 

자, 가장 어렵고 힘든 김치 작업이 끝나면 두부를 짠다. 요즈음 만두용 두부도 나오던데, 예전에는 그냥 두부였다. 그래서 이 녀석도 물이 많다. 또 짠다. 이젠 손 감각이 없어질 무렵 큰 볼에 담긴 당면을 들고 그분이 온다.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 당면 썰어라." 이런 당면은 물이 없어 짤 필요는 없지만 이게 엄청 달라붙는다. 여기저기 튀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사이 당면 조각이 달라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어찌어찌 다 썰었다. 그럼 끝, 아니다. 간단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삶아 온 숙주와 양파 그리고 부추, 파를 썰어야 한다. 이쯤이야 이제는 식은죽 먹기다. 이젠 하나도 합쳐야 한다. 분명 김치가 들어있던 대야도 엄청나게 컸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라이(?)가 등장한다. 여기에 김치, 두부, 당면, 숙주, 부추, 양파, 파를 넣고 냉장고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던 돼지고기까지 합쳐지게 되면 누가 봐도 만두공장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엄청난 양의 만두소가 됐다.

 

여기에 계란, 참기름, 후주, 소금으로 간을 하고 서로 서로 친해지도록 잘 치대줘야 한다. "아니 아빠는 만두 안 좋아하는데, 딸랑 3식구가 먹자고 이렇게 많이 해야 돼"라고 말을 하지만 소 귀에 경읽기다. '너는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똑 같은 말을 하니'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니깐 말이다. 그런데 진짜 놀랍지만, 3식구가 다 먹는다. 찐만두, 만둣국 그리고 고소한 군만두로 말이다.

 

만두소 치대는 일은 엄마 담당이셨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내가 하게 됐지만, 옆에서 봤을 때 잼나 보여서 내가 하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썰고 짜고 다지고 치대는 일은 내 담당이다. 엄마의 일은 장보고, 삶고, 간 맞추고, 만두피 만들고 그리고 잔소리.^^;

이젠 만두소를 여러 개의 통에 나눠 남는다. 참기름 냄새가 없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그날 먹을 만큼만 덜어서 담지만 누가 봐도 만두공장 수준처럼 보인다. 작은 반찬통이 아니라 김장김치를 담을만한 큰 통이기 때문이다.

 

기본 작업은 끝났다. 밀가루 한 봉다리를 그대로 반죽해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만두피 밑 작업이 끝난다. 넓은 도마에 1미터는 족히 넘을 봉이 등장한다. 뜨끈한 방에 신문지를 펴고 그분은 만두피를, 나를 만들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가스렌지에는 벌써 찜통이 기차소리를 내면서 어서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놀라운 스피드로 민두피를 만들어 낸다. 그 속도에 맞춰 만두를 만들어야 하지만, 나의 속도는 항상 미치지 못한다. 해도 해도 자꾸만 만두피가 쌓인다. 만두를 엄청 사랑한다는 걸 알지만, 이건 너무 빠르잖아. 그러나 나의 투정은 속으로만 해야 한다. 10개정도 만들게 되면 그분은 손을 털고 일어나신다. 그리고 농땡이 피우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주방으로 간다.

 

허걱~ 그새 만두피가 또 늘었다. 대충 20개 정도 되는 거 같다. 자리를 비운 틈에 잠깐이라도 쉬려고 했는데, 꼼수를 부릴 수 없게 만들고 가셨다. 이때 옆에서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배고파 배고파 좀 빨리해"라고 얄밉게 말하는 팥쥐 같은 그 인물이 보였다.

 

아 진짜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 아들은 그냥 저렇게 가만히 누워있다가 먹기만 하면 되는데, 아 진짜 아들로 태어날걸. 이러면서 나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주방에 갔다 온 엄마는 몇 개가 부족하다면서 후다닥 3개를 만들고 내가 만들어 놓은 만두와 함께 또 사라지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만두를 같이 만들어 준다. 만두피를 오래 두면 마르기 때문에 그렇단다. 네네, 제가 손이 좀 느려요. 그렇게 남이 있던 20개의 만두피가 만두로 탄생되면 엄마는 주방으로 간다. 곧 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로 찐 뜨끈뜨끈한 찐만두와 간장을 갖고 들어오신다.

 

손을 씻고 들어 오니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분명 쟁반 한 가득 만두였는데, 잠시 화장실을 다녀 온 사이 엄청난 여백의 미를 가진 쟁반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백의 미를 즐길 틈도 없이 나도 동참했다. 양손에 만두 2개를 집고 간장도 찍지 않고 바로 입으로 직행한다. 뜨겁지만 참아야 한다. 틈을 보이면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거칠고 빠르게 호호 부르면서 한입 베어 문다. 고기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김치가 많아 아삭아삭하니 식감이 참 좋다. 여기에 숙주, 두부, 부추, 당면도 다 자기 역할을 하고 있어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너무 행복했다. 이 다음부터 절대 손을 씻지 않았다. 그냥 양념이 묻은 채로 먹었다. 그래야 손해를 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먹는 걸로 싸우면 안되지만, 질 수는 없으니깐 말이다.

 

내 주먹만한 크기의 만두가 어느새 다 떨어졌다. 먹는 동안 엄마는 벌써 만두피 생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방에서 또 익어가는 만두를 꺼내기 위해 우리집 만두공장이 펼쳐진다. 먹고 만들고 또 먹고 만들고, 깊어가는 겨울밤 3식구가 모여서 몇 십만 원 어치의 만두를 클리어했다.

 

고등학교때 동갑내기 사촌이 겨울방학때 잠시 놀려온 적이 있다가 우리집 연례행사를 보고 기절(?)했었다. 한 분은 만두피와 주방 담담, 한 사람은 멍 때리면서 만두 생산 담당, 나머지 한 사람은 먹기 담당이었는데, 정말 기계적으로 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 웃겼다고 했다. 사촌은 첨에 만두생산 라인에 있다가 터지고 못생기고 계속 실패를 하다가 끝내 나와 그분의 간곡한(?) 요청으로 먹기 담당으로 빠졌다. 먹기 담당은 역시나 먹기 전까지는 늘 누워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둘이 똑같이 TV보면서 누워있다.

 

우리집 만두 공장은 배불리 실컷 먹고 돌아오는 설날에 쓸 만두를 만들어 놔야 하는데, 사촌이 있던 그 해 겨울은 보관용을 만들 수 없었다. 사람이 하나 늘었다고 몇 시간 동안 공장을 운영했지만 모두다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설날을 며칠 앞두고 그냥 배추를 절어서 다시 만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해 겨울 신데렐라는 엄청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힘든만큼 뱃살은 엄청 나왔다고 한다.

 

이 연례행사가 이제는 사라졌다. 만두피와 주방을 담당한 분께서 초인적(?)인 힘을 잃으시는 바람에 냉동만두와 맛나다는 만두 맛집의 만두로 겨울밤을 보내고 있다. 질리도록 먹었던 만두였는데 이제는 엄마표 만두가 그리워지네. 올 겨울은 욕심내지 말고 조금만 해보자고 할까? 아무리 맛나다는 만두도 우리집 만두공장 만두보다 못하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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