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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_까칠양파버스관련 이미지를 찾다보니...(캐논 400D)

 

버스를 타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특히 기사와 고객과의 말다툼으로 버스운행에 차질이 생기게 되면, 제 3자인 다른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거 참 고만 좀 합시다"

"기사 양반, 그만 출발하죠"

"아가씨 또는 학생 또는 아줌마 또는 아저씨, 그만 좀 하시죠"

참을성이 없는 고객들이 짜증 섞인 투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원인이 어찌 됐던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일이 마무리 되기도 하지만, 이와 달리 고객과 기사 그리고 또 다른 고객까지 더 큰 싸움이 되기도 한다. 이때 나의 포지션은 참을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빨리 가자고 말도 못하는, 그저 완벽한 방관자다. '아 그만 좀 하고, 출발하지'라고 속으로만 말하는 그런 소극적인 인간이다.

 

이렇게 소극적이고 방관자였던 내가 주인공으로 우뚝 섰던 적이 있었다. 3년 전 열대야로 불쾌지수가 최고치를 갱신하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친구와 약속이 있었고 3정거장만 가면 되기에 아무 버스나 탔다.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인 듯)

 

신호등을 건너, 정차되어 있는 버스 중 앞 줄에 있던 버스에 올랐고, 내 앞에는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남자가 타자 '환승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 한 명이 그냥 오르고, 뒤이어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가 카드를 대기 전에 "2명이이요"라고 말을 했다.

 

버스 기사는 바로 계기판을 만졌고, 여자가 카드를 댔다. 그런데 "다인승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들리지 않았고, 바로 뒤에 내가 카드를 대자 "다인승입니다"라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즉 내 앞의 여자분이 카드를 잘 못 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소리는 "환승입니다"였는데, 다인승이라고 하니 첨에는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음성 소리와 함께 계기판을 보니 추가 요금이 나갔고, 1인도 아닌 2인의 비용이 자동적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놀란 나는, 당연히 기사에게 말을 하면 돈을 줄거라 생각했다.

 

"기사님, 저 환승인데, 지금 다인승이라고 나오네요?"

"환승이라고요, 아닌데, 틀리지 않았는데요"

"아뇨. 제 앞에 여성분이 2명으로 하셨는데, 제 카드가 2명으로 찍힌거에요"

 

이때, 그 2명의 여자는 앉을 자리를 찾는데 급급해 이런 사태를 못 보고 있었다. 다시 운전기사가 아니라고, 자기는 맞게 했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거라고, 앞에 여자 분이 다인승이고 나는 1인 요금이 나간 거라고 했다. 내가 지하철에서 버스 환승을 처음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기가 막혔다. 분명히 나는 다인승으로 들었고, 요금이 나간 것도 확인했기에 다시한번 기사에게 따졌다.

 

"기사님, 제가 지금 요 앞 지하철 역에서 환승을 하고 나온 거에요. 거기 기록 조회해보면, 제가 환승한게 맞는데, 그럼 버스가 환승이라고 나와야 하는데, 왜 요금이 처리된거죠?"

기사는 자꾸만 본인이 맞는다고, 내가 착오가 있는 거라고 하면서 우겼다. 이때 내 앞에 먼저 탔던 여자분이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지, 갑자기 자기가 제대로 안 찍힌거 같다면서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인정해 줬지만, 기사는 계속 자신의 실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에 탄 여자에게 다시 카드를 찍으라고 했다.

 

여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하는데, 순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아기씨, 그만 좀 하지", "버스가 천천히 가잖아" 아 맞다. 늘 방관자였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이다. 첨에 너무 기가 막히고 속이 상해, 간단한 컴플레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 길어지다 보니 버스 운행 속도는 현저히 줄어 들었고, 이로 인해 다른 승객들이 짜증이 났던 것이다.

 

순간 이천 몇 백원 때문에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었고, 잘못된 점을 바로 잡기 보다는 창피함에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돌려 받지도 못하고, 욕만 바가지로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런 나의 모습은 다른 고객들에게 이목을 끌기 딱 좋았고, 모두 다 나를 보고 있었다. 에어컨이 나오지만, 한여름 퇴근길 만원버스이니 짜증이 장난 아니었을 텐데, 여기에 버스까지 천천히 가고 있으니 누구의 잘못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버스 운행에 차질을 준 내가 죄인이 된 것이다.

 

앞으로 2정거장만 더 가면 내릴 수 있기에, 그냥 내리는 문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면서 참고 서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고 있던 모든 고객들이 다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방관자였던 나, 문제의 본질보다는 현재 내게 불편함을 준 그 자체만 보는 나, 괜히 내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던 나, 저 사람 왜 저래 라고 짜증만 냈던 나, 모든 '나'가 그 버스 안에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안쓰럽다, 도와줄게 라는 시선이 아닌, 너 땜에 차가 못 가잖아 라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주인공이 되어 보니, 속이 상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고, 원인은 중요하지 않고 무조건 내 잘못으로 생각한다는 게 너무 속이 상했다. 이렇게 바보처럼 있다가 그냥 내리면 욕을 욕대로 먹고, 돈은 돈대로 날려 홧병이 날 거 같았다. 그래서 내리는 문 옆에 보이는 버스기사 사진과 이름, 차량번호 등을 알려주는 명패가 보이기에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속으로는 내 이 사건을 인터넷에 올려, 어쩌고 저쩌고 하자라는 심보와 함께 너무 속이 상한 나머지, 친구에게라도 이 속상함을 알려주고 싶기에 찍었다. 다 찍고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기사가 날 불렀다. 솔직히 다음에 내리는데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기사가 부르는 사람이 나라는 걸 나보다 먼저 다른 고객들이 알아 버렸고,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알려진 얼굴 그냥 앞으로 나갔다. 버스기사는 다시한번 자신의 잘못의 아니라고 뭔가 착오가 있다고 했고, 나는 또 아까의 말을 반복하기 싫어 역에 가서 확인해 보면 되지 않냐고 난 환승이라고 다시 주장했다. 그리고 난 후 무수히 많은 동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환불을 해줄 테니 갖고 가라는 것이었다.

 

아니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돈을 구걸해서 받는 거처럼 완전 기분이 엉망이었다.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안 받고 '됐어요, 잘 먹고 잘 사시고요, 제가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도배를 해드릴게요'라는 말이 나올 뻔 했지만, 생각해 보니 돈을 안 받을 이유가 없었다. 얼굴까지 버스 안 승객들에게 다 팔렸는데, 뭐 그리 내가 잘났다고 돈까지 거부할까 싶어, 20개가 넘는 백원짜리 동전을 떨어지기 않게 조심조심 쓸어 담아 가방에 넣다. 그리고 바로 내렸다. 물론 카드를 찍고 내렸다.

 

 

카드사와 지하철역에 가서 그 날 관련 내용을 조회하고, 버스 본사에 가서 따지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가 "네 얼굴이 알려졌지만 버스 승객들이 날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찌됐던 돈까지 받았으니 잊으라"고 해서 기억의 저편으로 보냈다.

 

이 사건 이후로 버스기사와 승객에 대한 기사를 볼때마다, 자꾸만 이날의 기억이 생각난다. 만약 그때 기사가 환불해 주지 않았다면, 혼자가 아니 옆에 날 지원해주는 친구나 지인이 있었다면, 내가 말발도 좀 되고 힘도 있었다면, 나도 신문기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기사 속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인거 같다. 버스기사 사진을 찍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꼬박꼬박 "기사님"이라고 호칭을 했기 때문이다. 속상해서 거친 말이 나올 거 같았지만, 꾹 참고 "기사님, 그게 아니죠. 기사님, 전 환승이에요"라고 제대로 존칭을 했다. 존칭 때문이었는지, 버스 기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나 역시 조근조근 문제점만 지목을 했다. 솔직히 어이 없고, 화도 많이 나도, 부들부들 떨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보다 어른이기에 막말은 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글은 썼다가 다시 지우면 된다. 하지만 말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기에 한 마디 한 마디 더 조심해야 한다. 이 사건 이후로 다시 방관자로 돌아 왔지만, 지금은 터무니 없이 짜증부터 내지 않는다. 방관자이지만, 지각 있는 방관자다. 참 스무개가 넘은 동전의 행방은 그날 저녁 집에 모셔둔 돼지님에게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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